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소년 Feb 19. 2024

5. 눈동자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by 유발 하라리)

 비가 내린다. 따뜻한 커피잔을 양손으로 잡는다. 사이렌이 그려진 하얀 잔을 타고 온기가 온몸에 퍼진다. 온기 때문인지, 새벽 근무의 피곤이 몸속에서 꽃처럼 피고 있다. 유발 하라리의 책을 꺼낸다. 표지를 본다. 한가운데에 원형의 사진이 있다. 눈 같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눈동자다. 눈동자는 동공과 홍채로 이루어져 있다. 사진은 검은 동공과 동공을 둘러싼 폭발하는 형상의 홍채다.      


 

 왜 눈동자일까? 눈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눈의 핵심 기능은 보는 것이다. 보기 위해서는 빛, 가시광선이 필요하다. 이 가시광선을 받아들이는 곳이 바로 동공과 홍채다. 동공은 빛이 들어오는 창구이고, 홍채는 빛의 세기에 따라 그 크기를 조절한다. 이 둘로 이루어진 것이 눈동자다. 눈동자가 없다면 우리는 볼 수 없다. 즉 눈동자는 눈의 핵심이면서 ‘본다는 행위’를 의미한다.


 생각을 가다듬으려 창밖을 본다. 무채색의 우산들 속에서 빨간 우산 하나가 지나간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순간순간의 장면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눈동자에서 대뇌 피질로 전달된다. 그러나 무채색의 우산은 해마에 저장되었다 바로 사라진다. 기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빨간 우산은 다르다. 이것은 하나의 이벤트다. 무채색 속의 이벤트. 그래서 나의 눈은 빨간 우산을 쫓았다. 그리고 해마에 저장되어 대뇌 피질로 넘어가, 장기기억으로 남는다. 필요할 때 빨간 우산은 기억에서 재인 또는 회상이라는 형식으로 불려 나올 것이다. 험난한 과정을 거치지만, ‘본다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기억의 기점이다. 그러나 이건 개체 차원의 이야기이다. 종의 차원으로 확대하면, ‘본다는 행위’는 기록된 역사의 시작점이다. 보아야 기록할 수 있고, 그것이 쌓여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카페인이 스민 커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 빈속의 위에서 화학 분해되고 있다. 그 과정이 쓰리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보단 현재를 이야기한다. 지금 마신 커피의 분해 과정처럼 인간의 문명을 분해하고 의문을 제시한다. 제시된 의문이 쓰라리다. 그는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실은 수많은 가닥의 실로 직조된다. 이 책은 우리가 지구 차원에서 당면한 곤경의 다양한 면들을 다루려고 한다.’ p10     

 

 ‘당면한 곤경’이 눈에 띈다. ‘당면한 곤경’에서 ‘당면한’은 시간상 현재를 의미한다. 그러나 ‘곤경’은 과거까지 포괄한다. 곤경은 과거의 어떤 일들이 쌓이고 쌓여 어느 시점에 나타난 어려움이다. 여기에 ‘당면한’이라는 관형어가 붙어 현재에 나타난 어려움이 된다. 그래서 ‘당면한 곤경’은 꽤 두꺼운 시간적 두께를 가지고 있다. 어느 시점의 과거에서 현재까지. 이런 의미에서‘당면한 곤경의 다양한 면들’은 21세기에 문제가 되어버린, 인간이 쌓아온 문명의 이면들이다. 저자는 이것을 책에 담았다.      


  ‘본다는 행위’는 무척 찰나적이다. 찰나적이기에 눈동자에 포착된 대상은 현재가 되자마자, 바로 과거가 된다. 과거는 어느 순간엔 현재였기에, 과거는 지나간 현재다. 그래서 책은 눈동자가 본 지나간 현재와 지금의 현재에 집중한다. 눈동자는 미래를 담지 못하기에, 책은 미래를 다루지 않는다. 이것은 원서의 제목인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에서 잘 드러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Lessons이다. Lesson은 제언이 아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교훈이다. 교훈, 과거의 일을 반성하여 현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책의 목적인 ‘당면한 곤경’과 본문의 내용에 무척 부합된 단어이고, 과거와 현재라는 눈동자의 시간적 성질과 닮았다. 그래서 표지에 적힌 부제는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부제는 저자가 아닌 번역자나 출판사에서 지은 것 같다. 원서에는 없다)이다. ‘미래’가 아닌 ‘오늘’이다.


 책은 표지의 눈동자로 인해 또 다른 독특함을 얻는다. 책 자체가 인지과정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게 한다. 사전에서 인지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일련의 정신 과정. 지각, 기억, 상상, 개념, 판단, 추리를 포함하여 무엇을 안다는 것을 나타내는 포괄적인 용어로 쓴다.’ (네이버 표준국어대사전)     

 

 눈동자로 받아들인 정보는 장기기억을 위해 해마를 거쳐 대뇌 피질에 저장된다. 대뇌 피질은 책으로, 정보는 책에 실린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책에서 내용은 역사의 수많은 사건 중에서 저자가 선택한 21가지이다) 그래서 한 권의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은 정보가 대뇌 피질에 장기기억으로 저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까지가 ‘자극을 받아들이고, 저장’하는 인식 과정이다. 그리고 독자가 책을 사서 읽는다면, 그것이 바로 인식의 마지막 과정인 정보의 인출이다. 이렇게 책의 출간과 독서라는 일련의 과정을 인식 과정으로 비유할 수 있는 이유는 표지에 인식 과정의 출발점인 눈동자가 있기 때문이다.      

 

 카페인은 혈관을 타고 뇌 속으로 스며든다. 카페인은 폭탄이 되어 뇌의 여기저기에서 폭발하며 뇌를 활성화시킨다. 각성이다. 이 단어를 유발 하라리는 원했는지 모른다. 그는 21장, 명상에서 ‘자기 관찰을 통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 알고리즘이 우리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 방법으로 명상을 언급한다. 명상은 개인적인 차원의 해결책이다. 그에게 집단적인 해결책은 허상이다. 왜냐하면 집단(예를 들면 공동체, 문명, 민족, 종교 등등)으로 형성된 모든 것은 이야기일 뿐이고, 이야기는 허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단에서 해결책을 바랄 수 없다. 오직 허구적이지 않은 나, 개인(개인이 허구가 아니라 살아있는 실체임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고통을 제시하고 있다)만이 살아 숨 쉬는 실체이기 때문에, 이제 자신이 누구인지 진정으로 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현재를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이래서 저자는 교훈인 Lesson을 썼다). 현재가 변하면 미래도 변한다. 이를 위해 깨어있어야 한다. 각성이다. 명상은 커피에도 있었다.      


 커피는 식었다. 다 마신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식은 커피의 차가움을 느낀다. 21장 명상의 부제를 본다. ‘오직 관찰하라’, 마지막 장에서도 눈동자를 본다.


                <월요일에 업로드합니다>

#21세기를위한21가지제언 #유발하라리 #눈동자 #서평

이전 04화 4. 아폴로와 다프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