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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소년 Feb 26. 2024

6. 컬러 1- 초록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무라카미 하루키)

 사진작가 브라이언 피터슨은 그의 책, ‘사진의 모든 것’에서 말한다.      


'하지만 꼭 한 가지 밝히고 넘어가야 할 것은 컬러, 즉 색상은 실제로 노골적이라는 사실이다.'     

 

 ‘노골적’은 ‘숨김없이 모두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미다. 이 명사에는 차가운 이성이 아닌 들끓는 감정이 보인다. 컬러는 노골적이어서, 컬러에는 감정이 짙게 배어있다. 그리고 그것을 속이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빌딩 사이 이면도로에서 골목으로 꺾는다. 어른 한 명이 지나갈 수 있는 좁고 어두운 골목이다. 걸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약간의 변화를 느낀다. 풍경이 달린 비걱거리는 나무 문을 열면, 비로소 골목 밖 세상과 다른 이질적인 공간이 열린다. 1970년대 음악다방 또는 일제 강점기 경성의 어느 카페 같은, 지극히 과거 회귀적인 커피한약방. 이곳은 드립커피가 베이스다. 필터 커피. 하얀 도기 잔에 검은 커피가 담겨있다. 들어온 문을 열고 나가, 건너편 건물 2층으로 간다. 올라가는 계단도 나무라 비걱거린다. 문을 열면 커다란 자개장이 정면에서 날 맞이한다. 중앙에 있는 1인용 자리에 앉는다. 테이블이 약간 삐걱거려 자칫 커피를 흘릴 수 있다. 카페 주변은 현대식 고층 건물이 즐비하다. 세련된 카페들도 계속 생기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현대의 세련미에 관심이 없다. 고전적이지만 화려하진 않다. 오히려 검소하다. 이곳은 치열한 생존 경쟁에 무심한듯하다 도심에서 무위 같은 섬이다. 그래서 아늑하고 위안이 된다.     

 


 커피를 마신다.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도시 때문이다. 영원히 못 할 숙제 같다. 다시 생각한다. 소설 속 도시를.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는,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는 그래서 불확실한 형상인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도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에 도시는 이름도 없다. 이런 도시를 열여섯 살의 소녀와 열일곱 살의 소년이 만들었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데이트할 때마다 도시에 관해 이야기했다. 점점 도시는 구체화되었다. 그녀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그는 그녀가 이야기한 도시를 세세히 기록했다. 현실에 뿌리내린 다른 이들에겐 도시는 상상 속 허상이지만, 그들에겐 손으로 만져지는 실체였다.      


 주위를 둘러본다. 사람들로 붐볐다. 다들 일행이 있다. 무거울 수도, 가벼울 수도 있는 대화가 약간 어둑한 공간을 밀어내고 있다. 나 홀로 말이 없다. 이런 나에게 다들 관심이 없다. MBTI가 I인 나에게 이런 분위기는 안정감을 준다. 이런 고독에 평온함을 느낀다. 그래서 난 카페에 간다. 소설 속 도시가 이런 카페일지도 모른다. 소년과 소녀는 고독했다. 주변에 친구는 없었다. 그들은 고독했지만 외롭진 않았다. 백일장에서 서로가 만났을 때, 그는 용기를 내 다가갔고, 그녀는 그를 받아들였다. 서로가 같은 존재임을 알았기에. 그를 만나기 전, 그녀는 도시를 상상하고 설계하고 있었다. 오염되지 않은 그녀의 고독을 지켜내기 위해. 그리고 그를 만나 더욱 구체화되었다. 어느새 도시는 그들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만나지 몇 개월 후, 그녀는 갑자기 사라졌다. 그는 그녀를 너무도 그리워했다. 더 이상 다른 사랑을 할 수 없을 만큼. 그리워 그리워하다 마흔다섯 살에 우연히 도시에 들어갔다. 사라지기 전, 그녀가 자신은 그림자이고 본체는 도시에 있다는 열여섯 살의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알지 못했다.


 도시는 그들을 위한 안식처였지만, 유토피아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종교적 공동체에 더 가까웠다.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자급자족 공동체였다. 금욕적이고 검소한 생활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그 위로 고독의 평온이 도시에 내려앉아 있다. 고요했다. 그래서일까? 겉표지는 초록색(책에서는 진녹색이라 하지만, 녹색은 2003년 10월 이후 초록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으로 물들어 있다. 초록색은 평화, 안전, 안식, 휴식 등의 의미가 스며있다. 초록색이 가진 의미는 도시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또한 초록색은 가장 안정적인 색이다. 380~780nm의 파장 범위를 갖는 가시광선에서 초록색의 파장은 520~570nm이다. 중간 정도의 파장이어서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눈을 적게 자극하여 눈의 피로를 풀어준다. 눈에 편안함을 주며 진정시킨다. 이런 이유로 눈을 보호하고 치료하기 위해 그가 쓴 선글라스 색이 초록이다. 그가 도시로 들어갈 때, 눈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보는 도시의 색은 초록이다. 분위기와 그의 선글라스를 통해 도시는 초록으로 칠해진다. 도시의 분위기는 가벼우면서 무겁다. 도시에 내려앉은 분위기가 고요라는 단 하나여서 가볍다. 그러나 고요가 자아낼 수 있는 모든 분위기를 흡수해 버려 무겁다.     


 

 이런 눈으로, 그는 도시의 도서관에서 일했다. 그는 꿈을 읽었다. 그녀는 그가 읽을 꿈의 알을 내줬다. 도서관의 사서처럼. 꿈의 알은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낳고 간 알 같다.... 손에 들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래쪽 절반이 위쪽에 비해 더 불록한 것을 알 수 있다.' p47     

 

 꿈의 알을 왼쪽으로 세워놓으면, 표지에 있는 사발 모양의 검은 공간이 된다. 즉 표지 중앙의 사발 모양은 꿈의 알인 것이다. 그 안에 색들이 있다.     

 

 '나는 진녹색 안경을 벗고 오래된 꿈의 표면에 양손을 얹는다. 손바닥으로 그것을 감싼다. 오 분쯤 그러고 있으면 오래된 꿈이 깊은 잠에서 차츰 깨어나 표면이 엷게 빛나기 시작한다. 양 손바닥에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온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들이 꿈을 잣기 시작한다.... 그들에게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가냘퍼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다.' p48~49      

 

 꿈의 알에서 꿈을 불러오는 방법이다. 표지의 검은 공간 안에 토성의 고리 같은 여러 색상의 줄무늬가 그려져 있다. 꿈의 내용이다. 겉표지를 걷어내면 속표지가 있다. 하얀 바탕에 엷은 색상이 그러데이션으로 그어져 있다. 불명확한 꿈의 속성을 보여준다. 꿈은 억제되거나 좌절된 감정의 표현이다. 감정의 표현은 꿈속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지극히 비이성적이다.      


 “그래요. 사람이 품은 갖가지 종류의 감정이죠.... 그리고 꿈, 사랑. 이 도시에서 그런 감정은 무용한 것, 오히려 해로운 것이죠. 이른바 역병의 씨앗 같은 겁니다.” p178     

 

 그가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 그가 버린 그의 그림자(그림자는 도시에서 탈출하여 2부 현실 세계의 그가 된다)가 꿈에 관해 한 이야기이다. 표지는 감정을 컬러로 표현했다. 컬러는 브라이언 피터슨의 말처럼 ‘노골적’이다. 감정에 노골적이라는 명사처럼 잘 어울리는 단어는 없다. 컬러는 감정을 투영시키고 있다. 우울은 파랑, 정열은 빨강처럼.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본다. 흔들리는 커피에 비친 머리 위 전등이 울렁인다. 일그러진다. 책을 꺼내 표지를 다시 본다. 도시를 표현한 초록색, 사발 모양의 꿈의 알 그리고 컬러로 표현된 꿈의 내용을. 이들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여기에는 도시를 유지하는 중요한 작동원리가 숨어 있다. 도시는 평온을 의미하는 초록으로 물들어 있다. 평온을 깨는 다양한 컬러의 감정은 도시를 위협한다. 그래서 그러한 감정을 꿈에 가뒀다. 가뒀다고 꿈속에 있는 감정의 위협이 사라지진 않는다. 위협은 유보되었을 뿐이다. 감정은 해소되어야 사라진다. 해소를 위해 꿈을 읽는 이가 필요하다. 그는 따뜻한 온기로 알의 표면을 데운다. 마치 “난 준비되었어. 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공감을 표하는 온기다. 이런 공감의 온기에 꿈은 깨어난다. 그가 꿈의 감정을 읽어줌으로써, 정확히는 들어줌으로써 감정을 해소해 사라지게 한다. 그러면서 도시는 평온을 유지한다. 즉,  금욕적이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도시를 붕괴시킬 수 있는 감정으로부터 도시를 보호한다. 꿈을 읽는 이는.     

  

 '그 위화감을 대체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굳이 말하자면, 마음이 의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멋대로 나아가려 한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난생처음 봄날 들판에 나온 어린 토끼처럼, 내 마음이 내 의지에 반해 설명할 길 없고 예측도 불가능한 무제한의 약동을 갈구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 방약무인하고 본능적인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었다.' p746     

 

 그래서일까? 3부에서 그는 마음과 의식 사이의 이질감을 느낀다. 그는 이것을 위압감이라 불렀다. 마음은 세상에 처음 나온 어린 토끼처럼 뛰어다닌다. 약동하고 있다. 약동하는 마음속에서 감정은 발아된다. 이것을 의식이 제어 또는 통제할 수 없다. 그러기에 그의 내면으로 들어온 옐로 서브마린 소년이 이제 도시를 떠날 때라고 알려준다. 그가 계속 존재하면 오히려 도시는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도시를 보호하는 존재가 아닌 것이다.


 특이한 것은 문체다. 그녀와 관련된 것을 묘사하거나 서술할 땐 항상 현재형 시제를 쓴다.      


'“걱정 마요”라고 너는 테이블 맞은편에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p75

     

 그 외 모든 것은 과거형 시제로 묘사되고 서술된다. 과거로 흘러가는 물결 속에서 이에 휩쓸리지 않고 현재를 유지하는 이유, 그녀를 열여섯 살에 영원히 머물게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런 이유로 열여섯 살의 그녀는 영원성을 얻었다. 그녀가 일하는 도시의 도서관에는 이름이 없다. 대신 번호가 매겨져 있다. 바로 16이다. 그녀의 나이다. 그녀는 영원히 열여섯이다. 그녀의 영원성으로 도시 또한 영속된다. 영속에서 시간은 의미가 없다. 도시의 중앙광장에 시계가 하나 있다. 그것에는 시침, 분침 그리고 초침이 없다. 시간은 존재하지만, 삶을 구속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시간의 중력에서 벗어난 영속성의 도시는 하나의 상징이 된다. 시선이 외부세계가 아닌 내면으로 향한 이들, 그래서 고독한 이들을 위한 도시가 된다. 이젠 그와 그녀를 위한 개별적인 도시가 아니라, 그들과 비슷한 이들을 위한 보편적인 도시가 된 것이다. 그래서 열여섯 살의 자폐증 소년, 옐로 서브마린 소년은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고야스 씨 무덤에서 독백하듯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숨어서 들은 소년은 바로 그에게 도시로 가는 방법을 물었다. 그는 방법을 모른다고 했다. 결국 소년은 그만의 방식으로 도시로 들어갔다. 도시로 가는 방법은 단 하나, 간절함이다. 간절함은 열쇠지만 그 모양은 다양하다. 개인마다 다르다. 그래서 알 수가 없다. 누구도 가르쳐줄 수 없다. 그래도 제한된 그들이지만, 그들을 위해 도시는 열려있다. 소년이 도시로 들어가고 그가 나오면서, 도시의 벽은 소년에게 맞게 변형된다고 한다. 들어온 누구라도 그에 맞춰 변형될 것이다. 도시의 벽은. 그래서 도시의 벽은 불확실한 것이다.     

 

 커피가 없다. 잔 바닥에 말라버린 커피의 흐린 흔적만 있다. 마음이 울렁인다. 지금 나가야 할 시간이다.      

     

<다음 이야기는 컬러 2에서 / 월요일에 업로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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