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소년 May 06. 2024

에필로그 : 다 마신 커피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마지막으로 마디 하나를 지었다. 계획대로 10권이었다. 다만, 계획했던 10권은 아니었다. 원래는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불확실한 벽’,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  김훈의 ‘남한산성’,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내가 아는 나는 누구인가’,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사피엔스’, 이언 스튜언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대칭의 역사)’, 샤론 버치 맥그레인의 ‘불멸의 이론’이었다. 이들 10권으로 마디 하나를 채우려고 했다.      

 


그러나 이들 중 마디에 채워진 것은 4권 김훈의 ‘남한산성’,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시와 불확실한 벽’뿐이다. 나머진 계획에 없던 책들이다. 활동하고 있는 독서토론회에서 선정되어 읽었던 책 3권이 자리를 대신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토드 로즈의 ‘집단착각’,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입니다’이다. 또한‘사피엔스’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예기치 않게 순간적으로 엉뚱한 실마리가 떠올라 쓰게 된 책들이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일에는 항상 변수가 있을, 그래서 불가피하게 수정해야 할 가능성 또한 내포되어 있다.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유연해져야 한다. 표지에서 내용으로 터널을 뚫은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어느 표지는 얇았지만, 금강석처럼 단단한 암석이었다. 한 가지 아이디어라는 도구론 뚫리지 않았다. 또 어떤 표지는 활석처럼 너무 연해서 뚫다 무너지기도 했다. 설령 뚫었다 해도, 내용에 닿아 연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내용은 다른 암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표지를 뚫을 때 썼던 도구를 사용할 수 없다. 다른 도구를 찾을 수 없을 땐,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 내 능력 밖이었다.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다른 책들이 한계라는 변경의 수문장이 되어 그들의 자리를 채웠다.     



 여전히 아쉽다. 너무 성급하게 덤빈 탓에 통일된 무엇을 구성할 수 없었다. 표지에 관한 생각이 설익은 탓이다. 성급하고 설익었기에 자신의 한계를 볼 수 없었다. 한계를 몰랐던 결과는 중구난방의 구성이다. 다음엔 좀 더 통일된 구성안에서 표지와 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자연과학 분야의 책으로 이야기를 하지 못한 것 또한 무척 아쉽다. 이언 스튜언스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대칭의 역사)’로 방정식, 샤론 버치 맥그레인의 ‘불멸의 이론’으로 ‘베이즈 정리’를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떻게 들려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것도 나의 한계다. 생각의 깊이를 좀 더 깊게 하고, 글쓰기의 지평을 더 넓혀야 가능할 것 같다. 부단히 노력해야 할 일이다.     

 

 커피는 다 마셨다. 하얀 잔 안쪽으로 갈색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 마디를 마쳤고, 이 글을 포함한 13편의 글이 갈색의 흔적이라 믿는다.      



<다른 표지에 관해, 더 발전된 글로 뵙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