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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소년 Nov 29. 2024

2-4 불턱

20코스(하도~김녕) 3

 쓸쓸한 초록의 사구를 넘으면 포구와 연결된 작은 길이 나온다. 바닷물이 포구로 드나드는 물길을 차단한 짧은 길로, 평소에는 바닷물을 포구에 가두었다. 그러나 오늘처럼 날이 거칠어 파도가 높으면 바닷물은 이 길을 넘어 갇힌 바닷물과 만나 길을 지웠다. 발이 젖는 것을 감수하고 건너야 할지 난감했다. 다행히 잠시 파도가 물러나 길이 보였다. 이때다 싶어 바로 뛰어서 건넜다. 뒤를 돌아보니 그새 길은 잠겼다. 운이 좋았다.    

<사구와 포구룰 연결한 길 / 파도에 잠기려 하고 있다>

 건너면 바로 ‘불턱’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불턱’은 제주도 방언으로 해녀들이 추운 겨울에 물질을 마치고 불을 지펴 몸을 데우는 장소였다. 더 정확히는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갈 준비를 하는 곳이고, 둥글게 돌담을 에워싼 형태로 가운데 불을 피워 몸을 덥혔다. 이곳에서 물질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오갔고, 이 때문에 탈의 공간을 넘어서 해녀들을 결속시키는 정신적 공간이기도 했다. 차가운 바닷물에서 물질을 마치고 불턱으로 들어오는 그녀들을 생각하며 나를 되돌아봤다. 그녀들은 엄습해 오는 한기에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리고 벗어날 수 없는 물질의 숙명으로부터 조여 오는 갑갑함도 한기만큼 그녀들을 힘들게 했을지 모른다. 입사 후 휴일 없는 24시간 맞교대를 처음 경험하곤, 이런 근무를 30년 가까이해야 한다는 갑갑함에 숨이 막힌 나날이 많았다. 매일매일 회사에 있는 느낌이었고, 나머지 생이 맞교대에 저당 잡혀 옴짝달싹 못 하고 죽어간다는 암울한 생각을 했었다. 점점 나이는 들어가고, 어쩌지 못하고 해온 물질에서 그녀들은 힘겨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서 불을 쬐며 삶의 고단함에 짧은 한숨도 쉬었을 것이다. 나도 어쩌지 못하고 25년이 흘렀다. 그사이 맞교대는 사라졌다. 한 달 스케줄에 따라 근무하는 교번으로 운영되는 부서로 옮겼다. 요즘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다. 특히 막차(지하철)에 가까운 차에서 내려 4시간 정도 사업소에서 자고 다음 날 5시 첫차를 타고 운행할 때가 그렇다. 피곤이 쉬이 풀리지 않는다. 첫차를 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대부분은 일용직 노동자들이고 이들이 우르르 내린 역 주변을 보면 건설 현장들이 많다. 5시 첫차를 타기 위해 이들이 일어난 시간을 생각해 보면 절로 삶의 고단함이 전해져 온다. 그들의 고단함에 피곤으로 찌든 나의 고단함이 얹힌 새벽 첫차는 어둠을 지우며 벗어날 길 없는 운명 같은 선로 위를 달렸다. ‘불턱’에서 불의 온기로 삶의 고단함을 녹였듯, 차에서 내려 다음 차를 타기 위해 여러 동료 직원과 함께 잠시 쉬는 휴게실에서 고단함을 잠시 잊었다. 이곳에서 누구는 모자라는 잠을 보충하고, 누구는 다른 이와 운행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개인적인 일들을 서로 나눴다. 이런 면에서 휴게실이 우리에게는 ‘불턱’이었다.     

<좌, 중앙 : 제주밭담 테마공원에 조성된 불턱 / 우 : 행원 포구에 있는 불턱 안내판>

 행원 포구 해안 도로에 중간스탬프가 있다. 스탬프를 찍고 옆을 보니 안내석이 있어 읽었다. 뜻밖에도 광해군과 관련된 글이었다. 이곳이 광해군이 제주도로 귀향 올 때 내렸던 첫 기착지였다. 올레에서 ‘광해군’이라는 단어를 마주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이 귀향 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몰랐다. 더 정확히는 관심이 없었다. 안내석을 읽으니 오랫동안 강화도에 안치되었다가 제주도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 4년 정도 있다 독살로 인해 생을 마감했다.

개인적으로는 비운의 왕이라고 생각한다. 연산군처럼 말도 안 되는 폭정으로 쫓겨난 것이 아니다. 당시를 생각하면 정치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지 않을까 한다. 백성의 입장과 사대부의 입장이다. 백성에게는 자신들의 삶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이 정치였다. 그러나 사대부들에게 정치는 권력 획득이고, 이는 생과 사를 가르는 투쟁이었다. 그리고 광해군은 사대부들이 벌인 권력투쟁에 제물이 되어 쫓겨났다. 안내석도 비슷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달리 성실하고 과단성 있게 정치를 펼쳤으나 당쟁의 와중에 희생된 임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의 정치는 어떤가? 상황을 연산군과 광해군으로 좁혀보면 연산군에 더욱 가깝지 않을까? 여전히 바람은 거칠고 파도는 높다.    

< 좌 : 행원 포구에 있는 광해군 안내석. 하단에 '광해군'이라 하지 않고 '광해 임금'이라는 표현에서 이곳의 우호적인 평가를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 우 : 중간스탬프>

 중간스탬프를 찍고 점심을 먹으려고 주의를 두리번거리다 큰 보드에 있는 메뉴 하나에 눈길이 갔다. 돌문어 김밥. 듣지 못한 김밥이라 이것으로 정했다. 분명 보드 뒤에 있는 곳이 가게인 것 같은데, ‘해나디아장’이라는 카페였다. 카페에서 김밥을 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해서 카페 주변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런 나를 카페 여주인이 보았는지 카페 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무엇을 찾냐고 물었고, 돌문어 김밥집을 찾는다고 했다. 그녀는 여기라고 했다. 카페에서 김밥을? 고정관념이었다. 고정관념이 가게를 앞에 두고 못 보게 한 것이었다. 그녀는 바다에서 잡은 돌문어로 김밥을 만든다고 했다. 나는 돌문어 김밥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문어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조금 있다 남편이 나와서 커피를 준비했다. 바람은 여전히 거셌다. 카페에 들어올 때 바람 때문에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그녀는 세화는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제야 해상과 내륙에 있는 많은 풍력발전기와 걷는 내내 내가 몸으로 겪은 바람을 이해했다. 20코스의 와펜도 세화의 바람을 형상화한 것이다.       

<'해난디아장' 카페와 카페 안에서 본 풍경>

 이곳의 매력은 넓은 창으로 보는 바로 앞의 바다 풍경이다. 풍경이 잘 보이는 곳에 앉았다. ‘해난디아장’이란 카페 이름이 독특했다. 찾아보니 제주도 방언이었다. ‘해난디’는 ‘햇빛이 난다’이고, ‘아장’은 ‘앉아’라는 의미로, ‘해난디아장’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아’라고 할 수 있다. 바다로 향한 슬라이딩 도어의 창으로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으니, 카페 이름이 해 은 날의 풍경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녁이면 일몰도 멋있을 것 같았다. ‘해난디’ 할 것 같은 테이블에 ‘아장’, 문어 모양의 치즈가 얹어있는 김밥과 커피로 짧은 여유를 즐겼다.     

< 좌 : 돌문김밥과 커피 / 카페를 나오며 찍은 행원 포구 풍경. 높은 파도에서 바람의 세기를 느낄 수 있다>

 ‘해난디아장’의 마을 길은 월정리 해변으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초원길로 변하여 제주밭담 테마공원에 이른다. 월정리 해변에 이르는 길 안으로 젊은 여성 두 명이 들어왔다. 그녀들로 인해 흐려 무거운 느낌의 길이 달라졌다. 어느 카페에서 나왔고 올레길을 걷는 이들은 아니었다. 여행을 온 이들이었다. 차려입은 옷차림이었다. 그녀들은 내 앞을 저만치 걸었고 풍경이 좋은 곳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이런 날씨도 그녀들에겐 좋은 배경이었다. 까르르 생기발랄했다. 밝았다. 그 밝음이 공간의 무거움을 조금 가볍게 했다. 그리고 나도 미소 짓게 했다. 때론 공간에 누가 있는가에 따라 공간이 지닌 느낌은 달라진다. 화창한 날이라도 우울한 이가 공간에 있으면 공간은 빛을 발하지 못한다. 흐린 날이라도 그녀들과 같은 발랄함이 있다면 흐림은 줄어들거나 밝아진다. 같은 옷이라고 입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는 것과 같다. 나라는 존재는 이 길에 어떤 느낌을 더할까? 분명 경쾌함은 아닐 것이다. 다만 더 어둡지 않길 바랄 뿐이다.     

< 좌 : 마을길에서 만난 그녀들 / 우: 월정리 해변을 향해 걷는 그녀들 / 사진이 그녀들의 밝음을 담지 못하고 있다>

 월정리 해변에서 그녀들은 앞질렀다. 파란 하늘이 조금씩 드러나긴 했지만, 바다는 여전히 성나있었다. 포구의 방파제 끝에 있는 사랑의 상징인 하트모양의 구조물에 닿아 부수려는 듯, 파도는 방파제에 부딪쳐 거친 포말을 일으켰다. 바람둥이인 바다의 신이 어떤 여인에게 또 이끌렸으나 자신의 사랑으로 만들지 못해 저렇게 하트를 사정없이 부수려 하는 건 아닌지 잠시 어이없는 생각을 해보았다.     

<월정리 해변 풍경 >

 월정리 포구부터 제주밭담까지는 초원길이다. 흐리고 바람도 불고 파도는 높고. 이런 날씨 탓일 수도 있지만, 이 길은 처연하면서도 초연한 느낌이었다. 흐린 날이 공간을 짙게 물들여 무엇도 벗어날 수 없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초원이기에 해풍을 막아주는 것은 없었다. 바람이 불면 풀은 사정없이 흔들렸다. 바람이 부는 대로 힘없이 누웠다. 처연함은 여기서 새어 나왔다. 벗어날 수 없는 곳에서 어쩔 수 없이 흔들리는 숙명으로부터. 그럼에도 뿌리 뽑히지 않고 끝내 살아낸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들은 바람에 뿌리 뽑혀 날아가 사라진다. 풀은 흔들리면서 존재를 지속한다. 흔들림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이 마음이 초연함이었다. 자연스럽게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풀이 눕는다 /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 풀은 눕고 / 드디어 울었다 /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 발목까지 /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초원길을 걷는 내내 불턱에서 불을 쬐며 삶의 고단함을 녹이고 있던 해녀들이 떠올랐다. 처연하면서 초연했을 그녀들이었다 (2024. 10. 20)


<초원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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