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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Feb 08. 2024

재폭설시분(在暴雪時分, 2024)

폭설 때쯤

방송 횟수: 30회

감독 : 黃天仁、俞波

남주:우레이(吳磊, wúlěi)

여주:짜오진마이(趙今麥, zhàojīnmài)


노출 없이 섹시한

  감독이 장면을 너무 섹시하게 찍을 줄 안다. 키스신도 아니고 베드신도 아닌데,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말로 설명하자면 정말 하찮은 장면인데, 어느 키스신이나 베드신보다 더 섹시하게 찍어낸다. 이 감독이 전에는 어떤 드라마를 찍었나 한번 찾아봤다. 나는 게을러서 이런 거 별로 캐내는 사람이 아닌데.... '오, 대단한데!' 싶어서 전에는 어떤 작품을 찍었나 찾아보고 싶어졌다.

 俞波 감독은 눈과 관련된 장면을 전문적으로 담당한 것 같고, 내가 말하고 싶은 섹시한 장면은 黃天仁 감독의 공로가 아닌가 싶다. 그의 전작 중에 <삼분야(三分野, 2023)>가 있다. <삼분야(三分野)>에서 감독은 키스장면을 영화 <색, 계>의 유명한 정사 장면마냥 욕정이 뒤룩 묻어나게 찍어냈었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감독의 그 능력이 더 진화한 듯. 지난번 드라마에서는 키스신이었지만, 이번 드라마에서는 완전 평범한 장면을 야하게 찍어냈다. 보여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관객이 스스로 머릿속에 환상을 만들어내면 그게 더 야할 수 있다는 걸 알아서, 직접 보여주지 않고 상상하게끔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시범 삼아 한 장면만 이야기해 보겠다. 

  남주와 여주는 아직 사귀는 사이가 아니다. 둘은 폭설 중에 우연히 만나 얼굴만 알아진 관계다. 물론 남주는 첫눈에 여주에게 반하긴 했다. 남주가 여주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장면인데, 남주가 여주가 들어가도록 팔을 뻗어 문을 밀어 열어주다가 시계를 찬 손이 여주의 귀를 촥하고 스치게 된다. 나는 이 장면이 여주와 남주가 전기가 통하도록 신체적 접촉을 하는 장면인 줄 알았다. 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장면을 보고는 '와우!'하고 감탄한다. 여주는 집으로 돌아와 귀가 따끔한 것을 느낀다. 거울에 비춰보니 귀가 빨갛게 부었다. 핀으로 긴 머리카락을 고정시켜서 귀가 드러나게 하고, 약을 바른다. "아"하고 따가워하며. 

  이 장면, 완전 첫날밤의 정사를 연상케 하지 않나? 남주가 문을 열어주기 위해 팔을 쭉 뻗다가 여주의 귀에 빨갛게 생채기를 내고 마는 장면은 그 행위의 상징을 담았을 것이 분명하다. 관객이 이 장면에서 야함을 느끼는 것은, 감독이 분명 그걸 의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 원작에 이 장면이 있는지 어떤지 확인하면 다시 덧붙이겠다. 소설에 이 장면이 있다면 이건 소설가의 의도이고, 감독은 그걸 너무 잘 찍은 것뿐이겠고. 소설 원작을 읽기 전에 감히 주장하는데, 이거 분명 감독의 표현력일 것이다.)


원작 소설이 있다

  이 드라마 원작 소설이 있다. 원작 소설이 있는 드라마는 보통 스토리가 단단하다. 거기에 제법 잘 찍는 감독이 찍었다 하면, 이건 뭐 대박을 예정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재폭설시분(在暴雪時分)>은 터넷 소설인데, 여작가 墨寶非寶의 작품이다. 

  방금, 墨寶非寶의 작품 목록을 보고, 위에서 했던 말을 뒤집어야겠다 싶다. 노출 없이 섹시한 장면들이 사실은 감독이 아니라, 작가의 능력일 수도 있겠다. 이 작가가 인터넷 로맨스 소설도 썼지만, 드라마 각본 작업도 많이 했는데, 작업한 드라마 각본이 다 쟁쟁하다. 한국에 잘 알려졌을 만한 몇 편만 나열해 보면, <보보경심(步步惊心)>、<마이 선샤인(何以笙箫默)>、<친애적 열애적(亲爱的,热爱的)>、<주생여고(周生如故)>、<일생일세(一生一世)>등이 있다. 한 사람이 어쩜 이렇게 많은 히트작을 작업했는지! 능력, 완전 부럽다! 


새로운 요소

  이 드라마에는 관객을 유혹하는, 다른 드라마와 다른, 새로운 요소가 둘 있다. 

  그 하나는 드라마의 전반부가 '눈으로 가득한 핀란드'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냥 겨울이 아니고, 눈이 많이 오는 핀란드의 겨울이 배경이다. 남주와 여주는 폭설이 쏟아붓던 날 만난다.

  또 다른 하나는 '당구'다. 남주는 스누커(snooker) 선수이고, 여주는 나인볼(nineball) 선수다. 나는 당구라고는 4구와 포켓볼 밖에 모르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스누커와 나인볼이 있는 것을 배운다. 스누커는 21개의 볼을, 나인볼은 9개의 볼을, 6개의 포켓에 처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스누커는 볼마다 1점부터 7점까지 점수가 있는데 점수로 승부를 가리고, 나인볼은 마지막 9번 볼을 넣은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참아내야 할 요소

  최근 몇 년 동안의 중국드라마가 너무 '중국 최고'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데, 이 드라마는 그 요소가 그나마 적은 편에 속한다. (아직 14화까지밖에 방영되지 않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중국 최고' 장면을 하나 예로 들면 이런 거다. 여주가 핀란드에서 열린 나인볼 세계권 대회에 참여한다. 마지막 결승전에서 1, 2위를 가리는 상대 경쟁자도 중국선수다. 


경쟁자 : 조금만 먹어. 있다 경기에서 배가 아프거나하면 경기에 집중할 수 없으니까.(我給你個小建議哦。小吃一點。一會兒胃不舒服會不打好的)

여주 : 고마워요 선배. 있다가 한수 가르쳐주세요.(謝謝前輩。等一下多指教了。)

경쟁자 : 아마 앞으로는 너한테 한수 가르쳐달라고 해야 할지도. 어때, 긴장돼?(也許以後也要你指教我呢。怎麽樣?緊張嗎?)

여주 : 괜찮아요. 어쨌든, 적어도 우승은 중국 거니까요. (還好。不管怎麽樣吧,至少冠軍是中國的。)

경쟁자 : 진짜 멋지다. 마음가짐이 정말 좋아. 그럼, 나 먼저 경기장 들어갈게. (真棒。心態可真好。那我先去賽場了。)

여주 : 저도 곧 가요. (我馬上。)


  '적어도 우승은 중국 거니까요' 이런 장면들이 바로 참아내야 할 요소다. 이 정도면 '중국 찬양' 요소가 아주 애교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참아내야 할 요소는 중국 공산당이 국민을 교육하겠다고 작정하고 드라마에 집어넣는 어떤 가치관들이 있는데, 그걸 참아내야 한다. 이 드라마에서는 당구 스승과 제자 간의, 당구 심판과 선수 간의 '공경'을 너무 과하게 담았다. 이걸 중국문화가 이런가 보다 하고 보면 그냥 봐지지만, 나는 이게 믿어지지 않아서 참아가며 본다. 

  옛날 옛적에 유교가 까짓것 성행했을 때나 존재했을 법한 정도의 '공경'을, 드라마는 마치 '지금 중국이 이래'하는 듯이 보여주는데, 나는 영 의심이 든다. 

  중국은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시기 동안 학생이 교수를 권위주의 반동분자라고 대중 앞에 세워 비판을 시켰던 역사가 있단 말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예의범절이며 도의며 이런 것들은 문화혁명 전에나 있었다. 중국 공산당 스스로도 '10년 동안의 난리(十年動亂)'라고 평가한 '문화대혁명'을 겪은 지금의 중국은 우리가 역사책에서 배운 과거의 그 중국이 아니다. 


  그렇더라도 달달한 드라마가 보고 싶다면 완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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