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횟수 : 26화
감독 : 安健
여주 : 통야오(童瑤, tóngyáo)
남주 : 천샤오(陳曉, chénxiǎo)
분류 : 도시가정윤리극(都市家庭倫理劇)
이 드라마는 豆瓣閱讀(https://read.douban.com )에 연재된 소설 <샤오르즈(小日子, xiǎorìzi)>를 원작으로 한다. 샤오르즈(小日子)는 '단출한 살림살이'를 뜻하는데, 대체로 젊은 부부의 결혼 생활을 표현할 때 쓴다. 젊은 부부의 샤오르즈란 경제적으로 그렇게 풍족하지는 않지만, 평범하고 평온하고 심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드라마는 신세대의 젊은 부부가 양가 부모의 간섭으로 충돌하고 갈등을 겪으면서 전략적 이혼을 선택하고, 이혼 후에 또 다른 성질의 문제들과 부딪히면서 점점 성숙한 부부로 거듭나며, 결국은 행복을 쟁취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부부는 왜 호텔에서 사랑을 나눠야 했나?
드라마는 부부인 남주와 여주가 회사에 출근해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호텔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화끈하게 시작한다. 이어서, 시어머니가 호텔 영수증을 발견하고, 그것도 한 장이 아니고 수십 장인 것을 발견하고, 며느리가 바람이 나서 호텔을 들락거린다고 생각하고는 며느리의 직장을 찾아가 호텔 영수증을 흔들어대며 며느리를 나무라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이 부부가 호텔에서 사랑을 나눌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살고 있는 집이 아주 협소한데, 직장을 다니는 젊은 부부를 도와 딸아이를 돌보기 위해 함께 사는 시어머니에게 안방을 내주고, 부부는 베란다 쪽 공간에 방을 만들어서 2층 침대를 놓고 위아래로 나눠 자는 생활을 6년째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하여 부부금슬이 좋은 그들은 한두 시간에 800위안(한국돈 십오만 원가량)을 기꺼이 써가며 호텔방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젊은 부부가 편안히 사랑을 나누지 못하는 공간적 협소함은, 부부가 사랑을 나눌 공간이 없다는 물리적인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이 부부가 시부모의 간섭과 통제 속에서 자기만의 가정을 꾸려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측면을 대신 표현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전략 이혼은 성공할 수 있을까?
여주는 서로가 미워하고 혐오하기 전에, 지금 그대로 남편을 사랑하기 위해 전략적 이혼을 선택한다. '사랑해서 이혼한다'인 것이다.
결혼은 두 가족의 연결인지라 부부는 양가 부모의 간섭과 통제에서 숨이 막혀가던 참이다. 중국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간섭은 좀 무시무시하다. 이게 한 자녀 정책의 실시로 하나만 낳아 모든 희망을 걸고 자신의 삶을 희생하기 때문인데.... '다 너를 위해서'라는 명의로 당신들이 계획한 대로 살도록 요구하는데, 자식의 입장에서는 따르지 않으려니 지금껏 키워준 부모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은 도덕적 죄책감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내적 갈등을 겪는 것이다.
여주는 이혼을 통해 남남의 신분을 회복하면 양가 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둘은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부부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하고 전략적 이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남남이 되자,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단단할 것 같았던 부부 관계는 이들 사이에 다른 이성들이 등장하자 서로를 의심하는 등 쉽게 관계의 동요를 겪게 된다.
이혼 전 이 부부가 겪는 충돌과 갈등은 쌍방 가정 배경의 차이에서 오는 관념의 충돌이기도 하고, 젊은 신세대 부부와 구닥다리 시부모와의 세대 충돌이기도 하고, 한 아이 정책을 실시했던 중국의 부모가 자식에 대한 통제권이 과해서 생기는 문제이기도 했다면, 이혼 후에는 부부가 법적으로 묶여 있지 않을 때, 이 관계가 얼마나 연약해지는지를 보여준다.
가운데 낀 남자는 어째야 하나?
부모와 아내 사이에 낀 남자를 우리나라에서는 샌드위치라고 표현하는데, 중국에서는 지아씬빙깐(夾心餅乾jiāxīn bǐng gān)이라고 한다. 지아씬빙깐(夾心餅乾)은 중간에 크림 등을 바르고 두 장의 쿠키로 맞붙여 놓은 쿠기를 말하는데, 영어로 Sandwich cookie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알겠지만 딱 샌드위치 형이다.
남주는 한편으로는 아내가 고지식한 시부모의 간섭을 참아내면서 겪는 울분을 달래줘야 하고, 한편으로는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전형적인 샌드위치 처지에 놓여 있다.
둘이 결혼을 할 때 여주 부모님들이 신혼집을 장만하는데 돈을 보탠다고 했지만, 남주의 부모님들은 가정에서의 아들의 패권을 지켜주려고 어렵게 돈을 끌어모아 신혼집을 살 때 첫 지급액을 마련해 준다. (첫 지급액을 首付라고 하는데, 집값의 30~40%에 해당한다. 나머지는 살면서 할부로 갚으면 된다.)
하지만, 경제적 지원은 가정생활에 대한 간섭의 권리를 암묵적으로 가진다는 뜻이기도 해서, 부부가 독립적 가정생활을 꾸려나가는데 걸림돌이 된다. 이 부부가 좁은 공간에서 시부모와 함께 살며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큰 집으로 이사하려고 집을 팔려고 했을 때 시아버지의 반응이 그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내 돈으로 사준 집이다. 내 허락 없이는 팔 수 없다.".
이렇게 해서 큰 집으로 이사해서 지금의 갈등을 해결해 보려는 시도를 저지당하자, 다음 방법으로 '전략적 이혼'을 선택한다.
드라마는 시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갈등을 해결하고 다시 재결합하는 것으로 해피앤딩을 맞지만, 이게 현실의 삶이었더라면 해피앤딩이 될 수 있었을까? 부모님들은 쉽게 바뀌지 않으니, 젊은 부부가 해결하고 싶었던 양가 부모님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희망은, 아내의 희생이나 부모를 거스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정말이지 희망사항으로만 보인다.
드라마 속의 부부는 양가 부모의 간섭만 사라지면 그냥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한국의 많은 부부들도 이 처지가 아닌가 싶다. 우리 집으로 시집온 며느리들의 처지도 이렇겠고.
이 드라마를 보면서 나 자신을 좀 반성했다. 나는 시집 안 간 시누이인데, 내가 그동안 두 며느리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지는 않았나 하고. 나는 앞으로 두 올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말을 아끼는 시누이가 되기로 결심했다. 두 올케는 속으로 외치고 있었을지 모른다. "우리 그냥, 우리끼리 살게 냅둬 주세요!"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