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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May 21. 2024

아적아륵태(我的阿勒泰, 2024)

방영 횟수 : 8회

감독 : 滕叢叢

여주 : 마이리(馬伊琍, Mǎ yīlì), 조이란(周依然,  Zhōu yīrán)

남주 : 위스(於適, Yū shì) 


    중국 당대 작가 리쥐안(李娟, Lǐjuān)의 동명 산문집에서 목축민의 결혼을 다룬 장을 드라마화한 것이란다. 이 드라마가 수필이 원작인 것을 알고, 이 책을 사볼까 하고 검색하던 중에 작가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오, 작가랑 여주가 상당 닮았다!'

    이 이야기는 수필을 원작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가 이주엔(李娟)의 진짜 경험담이겠는데, 그래서 감독이 일부러 작가와 비슷하게 생긴 인물을 여주로 삼은 것 같다고나 할까.  


    이 드라마는 8회로 상당히 짧다. 하지만 매 회가 영화처럼 아름다운 질감으로 찍혔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북쪽에 위치한 아러타이(阿勒泰)의 광활한 초원과 자작나무 숲을 정말 아름답게 찍어냈다. 이 드라마는 2024년 제7회 칸 드라마페스티벌 경쟁부문 최고 장편극 부문 후보에 올랐으며, 이건 중화권 드라마로는 처음이란다. 그러니 품질이 어떤지 알만하지?


    중국어 보통화(不通話)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이 드라마가 참 아름답긴 한데 보기 좀 힘든 것이, 좀 과장하자면, 보통화보다 위구르어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를 이해하자면 위구르어가 나올 때는 자막을 읽어야 하는데, 듣는 속도보다 자막 읽는 시간이 더 걸리는 법이라서 멈춤 해가며 자막을 읽었어야 했는데, 다음 내용이 보고 싶은 나는 완벽하게 이해 못 하고 대충 줄거리만 이어지는 수준에서 영상을 그냥 넘겨버렸다. 


여주 리원쇼우(李文秀, Lǐwénxiù)와 남주 빠타이(巴太, Bātài)의 단순한 사랑 

    여주와 남주가 처음 안면식을 트는 장면은 아주 귀엽다. 여주가 작은 개울을 건너기 위해 나무 등걸을 걸쳐 다리를 만들어 놓은 곳을 지나가게 된다. 여주는 어째 이 나무 등걸 다리가 너무 부실해 보여서, 빙 둘러가더라도 시내 폭이 좁아 홀짝 뛰어넘으면 되는 길을 찾을 참인데, 개울 건너에서 말과 함께 있던 남주의 시선이 그녀를 충동질했다. 그녀는 상대에게 '잘 봐, 이깐 거 나도 건널 수 있어.' 하는 태도로 씩씩하게 나무등걸 다리를 반쯤 건넜다. 여주가 중간쯤 다다랐을 때, 남주가 "훠이!" 하면서 놀라게 하는데, 그 바람에 여주가 다리에서 미끈 개울로 떨어져 옷을 폭싹 적시고 만다. 건너에서 남주는 그 꼴을 보고 풋풋 웃는다.


    아러타이(阿勒泰) 초원에서는 '너를 보았다'라는 말이 바로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란다. 넓은 초원에서는 사방 어디를 봐도 정말 사람 그림자 하나 없다. 그러니 눈앞에 누군가 나타나면, 그냥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서 '너를 보았다'가 '너를 사랑한다'의 뜻이 되지 않았나 싶다. 

    여주가 남주가 말을 타고 초원의 저 수평선 끝에서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아러타이(阿勒泰) 초원의 '너를 보았다'라는 말의 뜻을 관객에게 내레이션으로 들려준다. 

    나는 초원의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너를 사랑해' 대신에, '너를 보았어'라고 말해보고 싶을 지경으로 마음에 든다. 뭐, 상대가 알아듣건 말건.


여주 엄마 장펑시아(張鳳俠, Zhāngfèngxiá) 의 죽은 남편 잊고 살아내기 

    여주의 엄마는 한족(漢族)인데, 어쩌다 아러타이(阿勒泰)에서 작은 상점을 열었다. 사실, 어쩌다 온 것은 아니고, 그녀가 남편을 만난 곳이 아러타이(阿勒泰)라는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자 그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남편이 느껴지는 이곳에 와서 날마다 술을 마시며 슬픔을 이겨내는 중인 것이다. 


    그녀의 집에는 철제 통이 하나 굴러다니는데, 치매에 걸린 여주의 할머니는 이게 비스킷통인가 하고 딸이 없을 때면 이걸 먹겠다고 열려고 한다. 여주의 엄마는 초원에서 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갈 때도 이 통을 안고 갔다. 초원 가운데서 딸과 말다툼을 하다가 이 통이 굴러 떨어져서 강으로 흘러들어 가 다시는 못 찾고 마는데. 그때서야 이 통 속에 뭐가 든 것인지 알게 된다. 딸에게는 지금껏 세제라고 말해왔다.

    "엄마 그냥 흘러가게 냅둬. 세제야 다시 사면 되잖아." 강물 속으로 흘러가버린 철제통을 찾겠다고 물 속으로 뛰어드는 엄마를 말리며 하는 말이다.

    "네 아빠야! 이걸 어떡하면 좋아! 원래는 우리가 처음 만난 **에 묻으려고 했는데. 그래야 네 아빠가 보고 싶으면 와서 보지. 이제 강으로 흘러가버렸으니 어디 가서 네 아빠를 그리워하겠어."

    어떤 물건들이 뜻하지 않게 내 손을 떠나면서 지금까지 붙잡고 있었던 집착도 같이 사라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지? 여주는 남편의 뼛가루가 든 철제 통을 강물에 떨어뜨린 후로 남편을 그리워하며 슬픔에 빠진 삶에서 헤어 나온다. 


남주 아빠의 변화 받아들이기

    남주의 아빠는 아러타이(阿勒泰) 초원의 전형적인 유목민이다. 그는 이 사회의 변화가 못마땅하다. 정신적인 면으로의 변화나 물질적인 면으로의 변화나, 모두. 

    변화를 구체적으로 하나 언급하면 이런 거다. 유목민으로 살다 보면 밤에 늑대를 만나기도 하기 때문에 총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비하는 것이 필요한데, 국가는 개인이 총을 가지지 못하게 하면서 유목민에게 총을 자진 반납하라고 한다. 

    총을 가지고 있으면 불법이 되기 때문에, 아들은 아버지에게 총을 제출하라고 설득하는 귀여운 장면이 있다.

    "제출했어." 아버지가 답한다.

    "아버진, 한 자루 남겼잖아요." 아들이 질책한다.

    "몇 자루 내라는 소리는 없었어." 

    하하, 아버지가 유머가 있으시지?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려고 하고 유목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결국 남주의 아버지도 남주가 스스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아버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남기고 반 정도의 양을 팔아버리게 된다. 그것으로 남주의 아빠는 세월의 변화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만 하는 인물의 대표를 묘사한다. 


여주가 제안하는 또 다른 삶의 방식

    여주는 도시에서는 좀 빠릿바릿하지 못한 축이다. 하지만, 초원에는 잘 적응했다. 직장에서 잘리고 엄마를 찾아 초원으로 올 당시에만 해도 곧 다시 도시로 떠나 글을 쓸 것이라는 계획을 잡았다. 하지만, 초원 생활을 하면서 유목민들의 순박함에 마음이 짠해지고, 유목민 남주를 만나면서 초원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도시의 빡빡한 방식만 사는 방식이 아니라고 은근히 보여준다. 


    도시처럼 약아빠지지 않은 초원의 삶이 나는 좀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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