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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해 Nov 05. 2024

不關我的事[bùguānwǒdeshì]

    대만 젊은이들은 '뿌꽌워더쓰(不關我的事)'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이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내 알 바 아니야', '나랑 뭔 상관이래' 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내가 대만에서 세 들어 사는 셰어 하우스에는 공공구역을 청소하는 담당자가 있는데, 월세의 반만큼을 할인받는 조건으로 부엌, 거실, 2개의 화장실을 1주일에 한 번씩 청소하게 되어있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대만으로 돌아왔더니, 뤠이가 청소 담당을 맡고 있다. 팡동(房東, 집주인)이 하는 말이, 인도 아가씨 펑뤠이가 긴급히 인도로 돌아가는 바람에, 그다음으로 청소 일을 맡길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뤠이가 자진해서 한다기에 일단 맡겼다는 것이다. 

    나는 뤠이의 청소 상태가 못마땅해 죽겠는 것이다. 화장실 변기는 누레서 앉기도 싫고, 더러운 부엌에서 요리하기 싫어 날마다 밖에 나가 사 먹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뤠이는 한주가 가고 또 한 주가 가도 아예 청소를  안 하는 것이다. 

    팡동(房東)에게 뤠이가 청소를 안 한다고, 더러워 죽겠다고 불평했다. 나 혼자만 불평하면 팡동(房東)이 귀담아듣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국인인 내가 대만 사람들보다 깔끔의 기준이 높아서 불평이 많은 것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좀 심하게 깔끔을 떤다는 인상을 가지고 있다.)  룸메이트 웨이안에게 뤠이의 청소 상태가 참아지는지 물어봤다. 자기도 더러워 죽겠다고 느낀단다. 

    "그러면 왜, 팡동(房東)한테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아?"

    "뿌꽌워더쓰(不關我的事)." 웨이안은 가볍게 '내 알 바 아니야.'라고 답한다. 

    "어떻게 너랑 상관없어? 네가 생활하는 공간이 더러운 거잖아."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어떤 시도도 안 하고, ‘뿌관워더쓰(不關我的事)'하고 방관하는 태도에 기가 막혔다. 과학 연구를 하고 있어서 상당 논리적이고 합리적일 것 같은 웨이안마저 '뿌관워더쓰(不關我的事)'를 내뱉었을 때, 나는 작정하고 따져 물었다. 

    "대만 젊은 애들의 '뿌관워더쓰(不關我的事)'의 태도가 대만이 오랫동안 계엄시기를 지낸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 안 해?"

    "왜 그렇다는 건데?"

    "너희 부모님들은 거의 반평생을 계엄령 속에서 살아오셨잖아? 그래서 정치에 대해 뭔 말을 못 하도록 생활 속에서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지.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지금 젊은 세대들은 계엄 후의 현대를 살아가면서도, 마치 계엄 시기에 살고 있는 부모 세대처럼 부당한 뭔가를 봐도 개선하려고 나서질 않는 것 같단 말이지. 내 말에 동의해?"

    "응, 좀 그런 것 같네. "

    "그러면 안 된다고. 자기의 권리를 찾는 데는 나서야 한다고. 그러니, 팡동(房東)한테 불평을 전해. 우리 좀 깨끗하게 살게."

    내가 이렇게 부추겼지만, 그녀는 팡동(房東)에게 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뿌관워더쓰(不關我的事)'의 태도는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니니까. 

    

    대만은 1949년부터 1987년까지 무려 38년간 계엄령이 내려진 국가다. 전 세계적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계엄령이 내려진 나라는 없다. 오랫동안 계엄령의 엄격한 공포 분위기에서 살다 보니 계엄령이 해제되고도 계엄시기의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는 젊은이들이  '뿌관워더스(不關我的事)'를 입에 달고 사는 게 바로 계엄 시대의 탓이라고 보는데,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내 주장에 힘을 보태줄 신문 기사일부를 옮겨본다. 

    

    <계엄령 해제는 하루아침에 사회에 즉각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이명총(李明璁) 씨는 "법제의 변화만으로는 사회 전체의 진정한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기 위해서는 문화·교육의 축적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계엄령 해제 이후에 시작된다. 계엄 시대에 성장한 어른들은 계엄 당시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단절해야 다음 세대의 계엄 해제 시민을 교육할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대만 사회가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을 격리하고' ,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나누는 등 계엄적 사고를 유지하고 있음을 관찰했다. 대만은 계엄령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 민주, 평등을 실현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참고 

* 신문기사 전체 보기 : 台灣解嚴30年:平民生活的記憶  https://www.bbc.com/zhongwen/trad/chinese-news-40593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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