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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기

by 김동해

비가 온다고 했다. 오전 중에는 비가 없고, 12시가 넘어서 비 올 확률이 60%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출발이다. 원래는 지난번 도보여행을 끝냈던 산즈(三芝)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 구간을 건너뛰기로 한다. 산즈(三芝)에서 스먼(石門)까지의 구간에는 도보여행자들이 꼭 찍고 간다는 최북단에 위치한 푸꿰이지아오(富貴角) 등대가 있다. 그런데, 어느 블로그의 글에서 바로 이 등대에서 유랑개를 만났다는 것이다.

'어쩌지?'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솔직하게는, 털 달린 모든 동물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산즈(三芝)에서 스먼(石門)까지의 구간은 누군가 동행이 있을 때 걷기로 하고 혼자 걷게 된 오늘은 피해 가기로 한다. 그래서 오늘은 스먼(石門)의 스먼똥(石門洞)이 출발점이 되었다.

버스로 스먼똥(石門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바다를 보는 것에 혹해서, 스먼똥(石門洞)을 흘긋 보고는 바다로 빨려들 듯이 걸어갔다. 나와 반대 방향으로 와서 자전거를 타고 이곳에 도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먼똥(石門洞) 앞에서 사진도 찍고, 올라가기도 한다.

스먼똥(石門洞)은 천연 아치형 해식동으로, 스먼(石門)에서 빼어난 경관으로 손꼽힌다. 바닷물이 오랜 세월 동안 거대한 바위를 쳐서 침식해서 형성된 것으로, 동굴 입구 앞에 서면, 인물과 바다를 한 구도 속에 넣은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나도 바다 구경을 마치면 스먼똥(石門洞)에 올라가 높은 곳에서 바다 풍경을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다에 끌려 너무 멀리까지 걸어가 버렸다. 저 위에 올라가 보자고 그 길을 돌아가는 것이 영 귀찮게 느껴졌다. 빠트려놓은 산즈(三芝)에서 스먼(石門) 구간을 걸을 때, 어차피 스먼똥(石門洞)이 도착점이 될 거니까, 올라가서 볼 기회는 또 있을 것이다.


2번 도로를 쭉 따라 걷다가, 긴 빨간 다리를 하나 만난다. 이 교각은 너무 긴데, 차량은 너무 빨리 지나다니고, 사람이 걸어 다닐 만한 공간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하지?'

서서 지켜보니, 오토바이는 질주해 달리는 차량들과 경쟁하듯이 빠른 속도로 몇 대 지나가긴 했다. 하지만, 나같이 간덩이가 적은 사람은 걸어서 통과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교각 아랫길로 가면, 길이 나올지 어떨지도 모르면서, 일단 2번 도로를 벗어났다.

'갔다가 길이 없으면 돌아오지 뭐.'

차량이 없던 시골길은 한 커다란 절까지 이어지더니, 그게 끝이 아니고, 절 정문을 지나 다시 쭉 올라가니 다행히도 2번 도로로 이어졌다. 이 길을 택한 덕분에 화장실도 들릴 수 있었다. 이 절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꽤 유명한 절이였던지, 절 입구에 공용화장실이 있었다.

절에 들어가 볼 생각은 없고, 절 앞에 앉아 목도 좀 축이고 쉬어가기로 한다. 어, 물병이 없다. 어제 막 만란이 예쁜 물병이라고 이거 한국에서 샀냐고 탐냈었는데.

'시내버스에서 잃어버렸나? 밴드를 붙이려고 잠깐 쉬었을 때 잃어버렸나?'

나는 물건을 좀체 잊어버리지 않는데, 요사이 물건이 자꾸 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내가 애지중지할수록 더. 어디쯤 떨어트렸을지 약간은 짐작이 가지만, 그 길을 다시 돌아가는 귀찮음을 극복할 수 없어서 잃어버리기로 한다.

'아, 내 핑크빛 보온병!'


시간은 점심시간을 넘어섰고, 태양은 너무 뜨거워졌다. 에어컨 바람이 필요하다. 하이라이프(Hi-Life) 스먼하이지아오石門海角(하이라이프)점에 들러 잠시 쉬기로 한다. 하이라이프는 대만의 4대 편의점 중에 하나다. 대만은 세븐일레븐(7-Eleven), 하이라이프(Hi-Life), 패밀리마트(FamilyMart), 오케이마트(OkMart)의 네 편의점이 장악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단연 1등인데, 점유율 2, 3, 4위의 편의점 개수를 다 합쳐도 1등 세븐일레븐을 능가하지 못한다.

이 편의점은 고도가 좀 높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커브길에 자리하고 있는데, 들어와 보니 상당히 예쁘다. 도로 쪽으로 널찍한 쇼윈도를 내고, 쇼윈도에 선반형 테이블을 설치해서 손님이 앉으면 차량이 지나다니는 앞이 탁 트인 도로를 볼 수 있다. 그 뒤로 재질감이 예쁜, 아일랜드 식탁 높이의 넓은 테이블을 두고, 삥 돌아가며 다리가 높은 의자를 뒀다. 나지막한 선반형 테이블과 높은 테이블은 층감이 생겨서, 같은 평면 위에 있지만, 공간이 입체감이 있다.

'오, 마치 카페 같잖아!'

나는 20원짜리 물 한 병을 사 마시며, 마치 커피숖에 와 앉는 즐거움을 누린다. 너무 쾌적해서 나가고 싶지 않은 정도다.

사실, 이 편의점은 더 환상적일 수도 있었다. 쇼윈도를 반대편으로 내면, 환상의 바다 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안 그래놨다. 그러면 다들 들어왔다가 안 나갈 수 있어서?

'너무 쾌적하지만, 이제 그만 가볼까?'

들어올 때는 너무 힘들어서 못 봤는데, 나갈 때 보니, 문 앞에도 예쁜 인테리어를 해뒀다. 편의점 이름이 바다 끝(海角)인 것을 이용해서, 하늘가(天涯)와 바다 끝(海角)은 22.8km밖에 안돼요, 멀지 않아요라는 말장난을 하얀 벽에 귀엽게 써놨다. 티엔야하이지아오(天涯海角)라는 성어가 있는데, '하늘가와 바다 끝'이라는 뜻으로 '아득히 멀고 구석진 곳', '서로 간에 멀리 떨어짐'을 의미한다. '이번 생에는 당신과 함께 하겠어요, 아무리 먼 곳이라도 끝까지 따라가겠어요.(這輩子我跟定你了,即使是天涯海角,我也要跟到底。)' 할 때 쓴다. 그러니, 티엔야하이지아오(天涯海角)의 네 글자는, 사람들에게 저절로 낭만적인 상상을 하게 만든다.


편의점을 나와 오래지 않아, 티아오쓰(跳石)라는 버스 정류장을 지난다. 내가 오늘 걸어온 길에는 나처럼 걷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차량조차도 뜸했단 말이지. 그런데, 이 정류장에는 제법 많은 젊은이들이 언제 왔던지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는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내가 오늘 걸어온 길의 풍경과 이곳을 비교하면, 여기는 하나도 특별할 게 없는, 그냥 바다가 보이는 정류장일 뿐이다.

'이 애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오다가 더 멋진 바다를 못 봤나? 왜 여기서 요란스럽게 사진을 찍어대고 있지?'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데, 이 버스정류장 건물이 일제시대의 느낌이 나서, 젊은이들이 와서 사진을 찍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단다. 소셜미디어에서 유행을 타서 너도나도 찾아와 인증샷 찍는 것을 중국어로는 따카(打卡)라고 하는데, 여기가 바로 따카(打卡) 성지였던 것이다.

나는 이 버스 정류장 건물이 예쁘다고 생각 못했는데, 남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흠, 아름답다. 그래서, 인증샷 핫플레이스가 되었나 보다.


오늘 길의 초반은 정말이지 완전히 바다를 끼고 걸었다. 인도도 널직 널찍해서 걷기 좋았다. 진산(金山)이 가까워질 때쯤, 종지아오완(中角灣)을 지나고 나서부터는 인도가 없고 갓길은 좁다. 그렇다고 걷는데 위험하다 싶은 정도는 아니다. 오토바이 한 대가 나와 좀 떨어져서 가도 좋겠구먼, 나를 위협하듯이 스쳐 지나갔다. 대만에서는 오토바이를 지처(機車)라고 하는데, 이 단어가 ‘정말 같이 지내기 힘든 사람’을 비유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자전거도 안 그러고, 자가용이나 버스도 안 그러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자들은 불친절하다. 그러니까 지처(機車)라고 하지.


스먼(石門)을 지나 다음 도시 진산(金山)으로 들어선다. 도심 입구에 역동성 넘치는 검은색 조각품이 설치되어 있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읽었는데, 이건 아마도 주밍(朱銘)의 예술품일 거란다. 왜냐면, 이 마을 가까운 곳에 주밍(朱銘) 미술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의 조각 작품을 사진으로 몇 보았는데, 상당한 덩어리감과 역동성이 느껴졌다. 아마도 이 블로거의 말이 맞을 것이다.

주밍(朱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만의 조각가다. 주밍미술관은 내가 걷고 있는 2번 해안도로에 면해 있는 것이 아니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들어간 골짜기에 있다. 혼자 산길을 걸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패스했지만, 나중에 조각가 주밍(朱銘)의 이야기를 조금 알고 나자 그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밍(朱銘)은 11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는데, 주밍(朱銘)의 부모님이 그를 낳았을 때, 두 분의 나이가 합쳐서 92를 넘었기 때문에 그의 어려서 별명이 지어우얼(九二)이었단다. 주밍(朱銘)의 집안은 매우 가난했는데, 어느 정도로 가난했냐면 산파를 부를 돈이 없어 11명의 아이를 아버지가 다 받아냈단다. 아버지가 일하러 갈 때 쓰는 풀 베는 칼로 아이들 탯줄을 끊어야 했지만, 한 아이도 죽지 않고 건강하게 다 잘 자랐단다.

주밍(朱銘)은 초등학교를 마치고는 사찰 수리하는 목수밑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게 그를 조각가의 길로 접어들게 한 출발점이었다. 그 기술로 돈벌이를 하려고 사업장을 차리고 주문을 받았는데, 돈만 손해 보고 말았단다. 그래서 상업적인 길을 포기하고 예술가적 길을 가기로 작정하고, 스승을 찾아 나섰단다. 당시 대만에 해외에서 돌아온 유명한 조각가가 있었는데, 그를 찾아가기로 맘을 먹는다. 주밍(朱銘)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라서, 아무도 선뜻 황선생에게 소개해주지 않아서, 직접 황선생의 주소를 알아내서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단다. 운이 좋았던지, 황선생이 직접 문을 열어주었고, 그렇게 황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주밍은 스승인 황선생이 계략한 전시회를 열게 되면서 하루아침에 이름을 날리는 조각가가 되었다. 황선생이 계획한 전시회를 왜 '계략'이라고 하냐면, 원래는 황선생이 자기의 작품을 전시하겠다고 약속하고 모든 일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자기 제자를 등극시키기 위해, 일부러 자기 작품은 기일에 맞춰 준비가 안될 것 같다며 제자 주밍(朱銘)을 추천했서 성사된 전시회기 때문이다. 원래는 5일 간만 전시회가 잡혀있었지만, 반응이 너무 좋아서 1년간이나 전시회를 가졌단다.

뉴욕의 문을 두드린 것도 아무 계획 없이 뉴욕에 도착해서 시작한 거였는데, 큰 성공을 거둔다. 그때부터는 지금껏 하던 주제와 달리 '인간 시리즈'를 조각한다. 온갖 인간 군상을 조각한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자기가 목숨을 다하기 전에, 자기 조각품들에게 제 자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땅을 사고, 미술관 건물도 스스로 설계해서, 주밍미술관을 만든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인물들이 어디에 놓여야 가장 편안해하는지 내가 가장 잘 아니까, 그들의 집을 만들어 주려고 미술관을 만들었습니다'라고 했다.

대만을 떠나기 전에, 부지런을 발휘하여 주밍의 작품을 구경하러 가면 좋을텐데.


진산(金山) 라오지에(老街, old street)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2024년 10월 2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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