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폭풍우 속 피난길
제12 화
찌는듯한 무더위가 몇 날 며칠 계속되었다.
풀숲에서 찌르륵 찌르륵 풀벌레 소리가 합창을 하듯 요란하다.
쨍쨍 내리쬐는 태양 아래 이글거리며 올라오는 열기로 거리는 온통 후끈거린다.
목덜미를 타고 줄줄 흘러내리는 땀이 온몸을 적신다.
부채를 들고 쉴 새 없이 부쳐대지만 시원한 바람보다 훅훅 더운 바람이 얼굴에 와닿는다.
숨이 턱턱 차오르는 한낮의 열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모든 것을 녹아내린다.
동네 사람들이 너무 더워서인지 손에 부채 하나씩 들고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앉아 얘기 장단이
한창이다.
강둑길을 따라 호박 넝쿨이 길게 뻗어 노란 꽃과 호박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아이들은 그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꿉놀이가 한창이다.
강줄기 따라 이따금씩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영호는 어디서 났는지 아이스케키통을 둘러메고 소리를 친다.
"아이스케키"
"시원한 아이스케키 사세요."
워낙 날씨가 더워서인지 아이스케키는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영호는 신이 났다.
햇빛에 그을려 구릿빛이 된 얼굴에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활짝 웃었다.
희경은 그제야 오빠가 무얼 하고 다녔는지 짐작이 갔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오빠를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웠다.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도 열심히 살 거야'
'착하게 살아야지'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을 하였다.
희경아버지는 열심히 일을 다녔다.
그 덕에 집안 형편도 조금씩 나아져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듯 평온하였다.
가족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 덕에 생활도 조금씩 윤택해져 갔다.
비가 오는 날이면,
부침개도 부쳐먹고,
계란도 삶아 먹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도 삶아 먹었다.
파슬거리는 감자를 먹을 때면 감자분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것이 꿀맛이다.
방금 쪄낸 따끈따끈한 고구마는 포근포근한 것이 마치 밤을 먹는 기분이 든다.
거기다 어머니가 손수 만든 겉절이를 처억 걸쳐 먹으면 행복이 저절로 밀려온다.
희경아버지는 퇴근길에 같이 일하는 청년 한 명을 데리고 집에 왔다.
그 청년은 한고향 사람이라 했다.
가족들에게 소개를 하였다.
희숙의 짝으로 맺어주고 싶어서 데리고 온 것이다.
키도 훤칠하고,
체격도 좋고,
인물도 잘생겼다.
희경은 그 청년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요모조모를 살폈다.
왠지 모르게 그 청년이 맘에 들었다.
언니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희숙의 뒤를 졸졸 따라오는 남자들은 있어도 딱히 사귀는 사람은 없었던 터라 희경아버지는
그 청년을 사윗감으로 점찍었다.
그 청년은 시골에서 홀홀 단신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저녁을 먹고 희숙이 올 때까지 모두들 기다렸다.
희숙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두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그 청년은 희숙을 보자마자 좋아서 입을 헤벌쭉 웃어 보였다.
희숙도 허여멀건한 그 청년을 보고 맘에 들었는지 얼굴이 발개지고 미소를 감출 줄 몰랐다.
한참을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였다.
둘은 서로 첫눈에 반했는지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그날로 다락방을 내어주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결혼식은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하기로 하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올라오시게 하였다.
둘은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언약을 하였다.
부부의 연을 맺고 맹세하였다.
집에서 가까운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고 징표로 남겼다.
그 청년은 김남규였다.
셋째 아들이란다.
가족들은 모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둘을 축하해 주었다.
새 가족을 맞이한 희경이네는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희경은 형부를 잘 따랐다.
희경아버지와 남규는 매일 같이 일을 다녔다.
형편이 어려워서 당분간 희경의 집에서 같이 살기로 하였다.
남규는 집 뒤에 있는 들판에 나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희경을 사진 속에 담았다.
찰칵!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까만 먹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었다.
굵은 빗줄기가 한바탕 쏟아졌다.
그러더니 계속 오락가락 오락가락하였다.
사람들은 밖에 널어놓은 빨래를 걷느라 분주하였다.
때는 장마철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렸다.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수없이 반복하였다.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고 나면 어느샌가 햇빛이 쨍쨍 내리쬐었다.
사람들은 "호랑이가 장가갔나 보다"라고 했다.
그런 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사람들은 갈피를 못 잡고 헤매었다.
장대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물은 삽시간에 불어나기 시작하더니 강물도 넘실넘실 차오르고 지대가 낮은 곳은 길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강물을 바라보며 강둑이 무너질까 불안 불안하였다.
모두들 나와서 수군거렸다.
수문을 여느 니 마느니 의견이 분분하였다.
그 사이 빗줄기는 더 굵어져 물을 쏟아붓는 것처럼 내렸다.
삽시간에 온 동네를 물바다로 만들었다.
물이 어느새 방안까지 들어와 바닥에 찰랑거렸다.
하늘은 불이 번쩍번쩍 번개가 치면서 우르릉 쿵쾅 요란하였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희경이 가족은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다 피난을 가기로 결정하였다.
물이 더 차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며 서두르기 시작했다.
옷가지만 대충 챙겨서 마을을 빠져나갔다.
동네가 온통 물바다라 윗동네 둑길로 올라갔다.
희경이 고모네로 가기로 하고 둑길 따라 걸어갔다.
길은 발을 딛는 대로 푹푹 빠져 들어가서 걷기도 힘들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대는 폭풍우 속으로 피난 행렬이 이어졌다.
쓰고 있던 비닐우산은 찢어지고 부러져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그냥 쏟아지는 빗줄기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다.
진흙탕길은 끝이 안 보였다.
가는 내내 불안하였다.
희경이 가족들은 한 시간이 넘게 폭풍우 속을 지나가야 했다.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었다.
빗줄기는 더 요란해졌다.
이대로 가다가는 오도 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뒤돌아 보고, 옆도 살펴가면서 소리를 내어 괜찮은지 확인하며 걷고 또 걸었다.
모두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었다.
희경이 고모네 집에 다다랐을 때 그토록 퍼붓던 빗줄기가 거짓말처럼 그쳤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