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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결혼 하지 마세요

by 태국사는 한국아빠 Apr 09. 2025

꼬박 2년을 만났다. 영혼의 단짝이라도 만났냐는듯이 처음 만난 날부터 함께 했고 중간중간 함께 할 수없을 때가 오면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 꼭 돌아오겠다고 일 년만 기다려 달라고 손수건을 다 적시며 비행기를 탔었는데 2주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다시 그녀에게 왔다. 이후 우린 결혼을 했고 6년째 여전히 꼭 붙어 다닌다.


나는 운이 좋다. 그 힘들다는(?) 국제결혼을 쉽게 했다. 이상하리만치 많은 주위의 국제 커플들도 한몫한 것 같다. 중국, 일본, 대만, 미국,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 저마다의 사연이 왜 없었을까? 굳이 디테일을 물어보지 않아도 쉽지 않은 결정에 쉽지 않은 여정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한국 사람끼리 결혼하는 것도 쉽지 않은 요즘이니 말이다.


두 개의 세계

태국에서의 일상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맛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보이는 열대 나무들의 싱그러운 모습을 바라본다. 그녀는 여전히 태국식 아침을 선호하고, 나는 가끔 한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두 문화의 중간 지점을 찾아가고 있다.

가끔 그녀의 가족들과 함께 사원에 간다. 처음에는 그들의 빠른 태국어 대화를 따라가지 못해 외로웠지만, 지금은 어설픈 태국어로 농담을 던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장모님은 내가 태국 음식을 잘 먹는다며 웃으시고, 할머니는 장을 보고 가시는 길에 들러 뭐라도 주고 가신다. 말이 완벽히 통하지 않아도 가족이 되는 데는 문제가 없다.



사랑은 국경을 넘는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표현이 포함하는 범주가 넓지만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아닐까? 만나보고 사귀어보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언어가 통한다면 이해는 더 쉬워질 것이고, 언어적 소통이 부족하더라도 넘지 못할 벽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태국에서 만난 많은 다문화 가정들과 내 주변의 국제결혼 커플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은 때로는 작은 웃음거리를 만들기도 하고, 더 넓은 세계와 다양한 관점을 가족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한국과 태국의 문화를 단순히 섞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다. 송크란 축제에 참여하면서도 설날에는 떡국을 끓이고, 태국 음식과 한국 음식을 번갈아 먹으며, 두 나라의 언어를 섞어 우리만의 은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렇게 특별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여기 태국에서는 '국제결혼'은 그저 '결혼'일뿐,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특별한 카테고리로 분류되지 않는다. 태국의 혼혈 아이들은 밝은 표정으로 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어울린다. 태국 사회에서 혼혈은 오히려 특별한 매력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백인과 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룩킁'(혼혈)은 광고계와 연예계에서 인기가 높고, 그들의 이국적인 외모는 미의 기준으로 자리 잡기도 했으니 말이다.

적어도 혼혈이라는 이유로 교실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영어(한국어, 중국어)와 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능력은 큰 경쟁력이 되어준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풍요로움'이 될 수 있다.


웃음으로 이어가는 일상

우리의 일상은 종종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웃음으로 가득하다. 그녀는 아직도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내가 조급해하면 "짜이옌옌(진정해)"라고 말한다. 반면 나는 그녀의 느긋함에 가끔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그 여유로움이 내 삶에 가져다준 평온함에 감사한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배우며 종종 재미있는 실수를 한다. 특히나 태국어의 성조는 그게 그거 같아 열심히 발음해도 틀리는 경우가 많은데 내 입에서 엉뚱한 대답이 나왔을 때 그녀는 유독 좋아한다. 

이런 작은 실수와 웃음이 우리의 관계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변화하는 시대, 가벼워지는 인식

통계청 자료를 보면 한국의 결혼율과 출산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인구 감소라는 현실 앞에서 다문화 가정의 증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이것을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라볼 때가 아닐까?

한국에 갈 때마다 느끼는 변화도 있다. 젊은 세대들은 점점 더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아이돌 그룹에도 다양한 국적의 멤버들이 함께하고, 글로벌한 감각이 오히려 장점으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다문화 축제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다양한 나라의 음식과 음악, 문화를 즐기며 어울렸다. 그곳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전 오히려 다문화 가정 친구들이 부러워요. 두 개의 문화를 모두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아마도 10년, 20년 후에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 세대에서는 '국제결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저 '결혼'이라는 단어만 쓰면 되니 말이다.


그녀는 그녀일 뿐

그녀의 웃는 모습, 재치 있는 유머 감각, 따뜻한 배려심, 그리고 가끔은 고집스러운 태도까지. 그녀가 태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그녀이기에 사랑했다. 만약 그녀가 다른 나라 사람이었다 해도, 아마 똑같이 사랑했을 것이다.

우리의 결혼식은 태국 방식과 한국식을 절충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두 문화가 충돌하기보다는 어우러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사랑은 모든 경계를 허물 수 있다는 것을.

방콕의 번잡한 거리에서, 치앙마이의 조용한 사원에서, 푸켓의 아름다운 해변에서... 우리는 함께 걸으며 서로의 세계를 배워간다. 가끔은 문화적 차이로 인한 오해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대화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나는 태국 사람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한 사람이 태국 사람이었을 뿐이다.


국제결혼, 그 이름에 대하여

나는 매일 아침 그녀의 옆에서 눈을 뜨며 감사함을 느낀다. 다른 문화, 다른 언어,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과 삶을 공유한다는 것은 때로는 도전이지만, 그만큼 즐거운 모험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사진첩에는 한국과 태국, 그리고 우리가 함께 여행한 나라들의 사진이 가득하다. 서로 다른 풍경들이지만, 모든 사진 속에는 우리의 웃는 얼굴이 있다. 국적은 달라도 웃음의 언어는 같으니까.

국제결혼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특별하거나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를.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의 결합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때까지 우리는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며, 새로운 우리만의 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적을 초월한,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두 사람의 약속.

결국, 나는 운이 좋았다. 그녀를 만났고, 그녀가 나를 선택해 주었으니까. 국제결혼이라는 틀보다는, 우리의 사랑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매일 웃음으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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