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유의 지문: AI 시대, 여전히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AI는 흉내 내지만, 인간은 자신을 써 내려간다

by 류한석

결과물로서의 글 vs. 과정으로서의 쓰기


우리는 종종 '글'이라는 결과물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쓰기의 진정한 가치는 타이핑이 완료된 후의 결과물이 아니라, 흰 화면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단어를 고르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 AI는 이 과정을 생략하고 곧장 '결과물'로 점프한다. 이것이 바로 AI의 글과 인간의 글이 갈라서는 결정적 분기점이다.

AI의 글쓰기: 이것은 '생성(generation)'에 가깝다. 기존 데이터의 패턴을 학습하여 확률적으로 가장 적절한 단어들을 배열하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망설임도, 고뇌도, 자기 의심도 없다.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의 재조합 과정이다.

인간의 글쓰기: 이것은 '발굴(excavation)'에 가깝다. 내면의 혼란스러운 생각과 감정의 지층을 파고 들어가, 불분명했던 무언가를 언어라는 도구로 캐내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게 되고, 흩어져 있던 아이디어들을 연결하며 새로운 통찰에 이른다. 쓰기는 단지 생각을 기록하는 행위가 아니라, 생각 그 자체를 만들어가는 행위다.


AI는 사용자의 생각을 대신 써주지 못한다. 단지 사용자가 '했을 법한 생각'처럼 보이는 텍스트를 조합해 줄 뿐이다. 진정한 통찰은 효율적인 생성이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값진 발굴의 과정에서만 얻어진다.


사유의 지문, AI가 복제할 수 없는 한 사람의 흔적


모든 인간에게 고유한 지문이 있듯, 모든 깊이 있는 글에는 '사유의 지문(Fingerprint of Thought)'이 남는다. 이것은 저자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기 위해 다른 수많은 단어를 버렸는지,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했는지, 어떤 경험을 통해 그 문장에 도달했는지가 무의식적으로 새겨진 흔적이다.


독자가 진정으로 감동하는 것은 정보의 양이나 논리의 정교함이 아니다. 우리는 텍스트 너머에 있는 한 인간의 고뇌, 진심,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시선, 즉 그의 '사유의 지문'과 만날 때 마음이 움직인다. AI는 수많은 지문을 흉내 내어 평균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결코 한 사람의 고유한 지문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물론, 사용자의 프롬프트 요청에 따라 특정 인물의 문체나 스타일을 흉내 낼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AI 시대에 글쓰기의 가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재발견된다. 나의 글과 말은 세상에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사유했는지를 증명하는 유일무이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쓰기-사고'를 위한 구체적 실천법


그렇다면 AI라는 유능한 비서를 두고, 어떻게 '쓰기'를 통해 더 깊은 사유에 이를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AI에 완전히 의존하거나 아예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나의 사유를 심화시키는 도구'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다음은 이를 위한 '쓰기-사고(Writing-as-Thinking, 사고 과정으로서의 글쓰기)' 방법이다.


1.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닌, ‘생각하기 위한 글’을 쓴다.

우리는 대부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 글을 쓴다. 그러나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다. 복잡하게 얽힌 머릿속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기 생각을 명확히 마주하게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혹은 내 안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써 내려가는 글은 AI가 끼어들 수 없는 가장 내밀한 사유의 과정이다. 오늘부터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생각 노트’를 써보자. 이때의 글쓰기는 결과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생각의 도구다.


2. '제로 드래프트(Zero Draft)' 원칙을 지킨다.

AI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글을 요청하기 전에, 반드시 자기 생각을 먼저 써본다. 주제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 미완의 문장, 논리적 비약이 가득한 거친 생각의 파편이라도 좋다. 이 '제로 드래프트'는 외부 정보에 오염되지 않은, 자신의 순수한 '사유의 지문'이 담긴 원석이다. 제로 드래프트이기에 형편없어도 상관없다. 아니, 오히려 형편없으면 좋다. 이 과정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스스로 파악하게 된다.


제로 드래프트는 글쓰기나 프로젝트 기획 등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초기 단계의 아주 거친 초안을 뜻한다. 즉, 정식 초안(First Draft) 이전의 '생각을 쏟아내는 단계'라고 이해하면 된다.


3. 완벽함이 아닌 ‘나다움’을 드러낸다.

AI는 문법적으로 거의 완벽하고 논리적으로 빈틈없는 글을 지향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종종 완벽함이 아니라 사소한 결, 즉 ‘인간미’다. 자신의 글에 개인적인 경험, 솔직한 감정, 심지어는 약점까지도 담아보자. 멋진 문장보다 중요한 것은 진솔한 이야기다. 정형화된 지식 전달이 아닌, 오직 자신만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인다. 서투름과 불완전함이 바로 글을 특별하게 만드는 ‘사유의 지문’이다.


4. AI에게 ‘최악의 비평가’ 역할을 맡긴다.

내 글의 약점을 가장 효과적으로 찾는 방법은 똑똑한 비평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AI는 감정이 없기에, 세상에서 가장 냉철하고 직설적인 비평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

내 주장의 반론 제기 요청: AI에게 “냉정한 시각으로 내 글에 대한 모든 반론을 제기해 줘”라고 요청함으로써, 반론들을 검토하며 내 논리의 허점을 보강할 수 있다. AI에게 그냥 “내 글을 평가해 줘”라고 물어보면, 아부만 할 뿐이다. 올바른 역할 부여와 활용이 중요하다.

독자의 예상 질문 생성: “이 글의 독자들이 제기할 만한 비판적인 질문 5가지를 만들어줘”라는 식으로, 예상 질문에 미리 답변을 준비하면서 글의 설득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


이처럼 AI를 사용자의 논리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공격하는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으로 삼는 순간, AI는 인간의 사유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드는 최고의 훈련 도구가 된다.


나의 존재를 쓰는 시간


AI는 텍스트를 생성할 수 있지만, '저자'가 될 수는 없다. 저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글을 쓰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이름과 인생을 걸고 세상에 하나의 관점을 내놓는 책임감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결국 AI는 ‘무엇’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는 있지만, ‘왜’ 써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주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실패를 딛고 일어서며 써 내려간 한 줄의 다짐, 세상을 향한 나만의 작은 외침. 이러한 글들은 정보를 전달하기 이전에, 쓰는 행위 그 자체로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


결국 AI 시대의 글쓰기는 '무엇을 쓸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나는 왜 쓰는가'라는 실존적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우리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고,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쓰며, 잊지 않기 위해 쓴다.


그리고 무엇보다, 쓰는 과정을 통해 더 나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쓴다.


쓰기는 AI에 대체될 수 있는 기능이 아니라,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고유한 행위다. 기술의 파도가 거셀수록, 우리는 우리 내면의 가장 깊은 곳으로 닻을 내려야 한다. AI의 소음 속에서 잠시 벗어나, ‘사유의 지문’을 종이 위에, 화면 위에 남겨보는 시간.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창조적이고 인간적인 과제일 것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텅 빈 화면 위 커서의 깜박임이 주는 고독과 창작의 희열을 대신할 수는 없다. 기계는 문장을 만들지만, 인간은 글을 쓰며 자신의 세계를 만든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자신의 커서 앞으로 돌아가자. 그 고독한 깜박임이야말로, 기술의 파도 속에서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장 인간적인 사유의 시작점이니 말이다.

keyword
이전 06화지적 프레임워크: AI 시대, 독서가 중요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