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에 담긴 다양한 의미

by 앤니


굳이라는 단어는 오묘한 매력이 있다. 말썽꾸러기 아이같은 모습도, 조금은 고집이 센 어떤 사람의 모습도, 그럼에도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버리는 사람의 모습도 담고 있는 언어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몇 아이는 "선생님, 굳이 이걸 해야돼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나는 "응 굳이 해야 돼~ 굳이 하자."라는 말을 자주 답변으로 들려주곤 한다. 인상을 찡그리고 하기 싫은 소리를 내뱉으면서도 쓰기를 마쳐내는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왔다. 부정적인 의미가 가득 느껴졌기 때문이다.


안해도 되는 것을 굳이 해야할 때나 그것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그런 방법을 쓰는 건지 의구심이 들 때, 혹은 내가 그 말을 듣는 입장일 때(특히 그럴 때는 나의 생각이 부정당한 것 같은 느낌에 실망감과 서운함이 커진다.) '굳이'라는 단어에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거나 마땅치 않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았다. 공부를 하기 싫어해서 다른 친구들의 수업마저도 방해하고 사기를 저하시키는 말썽장이 아이의 '굳이'. 별로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었다. 늘 고민이 생긴다. 어떻게 이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가질까? 숙제를 제대로 해오고 수업을 원만히 따라올까? 내가 현명하게 아이의 말에 받아칠 수 있었다면 좋을텐데, 아직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대답에 아쉬움이 뒤따른다.


그래도 내가 "굳이 굳이 하는 거야. 해야 하는 거야, 해 보는 거야."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안에서의 긍정적인 면과, 다양하고 오묘한 매력을 발견해 나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집에서 공부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시간과 돈과 수고로움이 더 듦에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할 지도 모르는 이런 저런 것들(노트북, 책 두 권, 영어 회화 책, 아이패드, 노트와 펜 한자루, 충전기, 파우치, 텀블러, ...)을 가방에 가득 담아 집밖으로 나선다. 오늘 같이 비오는 날, 출근까지 두시간이 채 안남은 시간에도 느릿느릿 옷을 입고 출발한다. 이미 연말 분위기를 입고 있는 카페에서는 듣기 좋은 캐롤이나 재즈풍의 팝송 음악이 나온다. 하지만 굳이 굳이 이어폰을 끼고서는 아이패드로 따로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다. 노트북으로는 글을 쓰고.






요즘 내가 빠진 가수 '김수영'의 노래를 듣는다. 싱어게인3에 나온 가수인데 사실 원래부터 알던 가수였다. 데뷔앨범의 'no title', '언젠가 알겠지' 그리고 '그댄 모르죠'라는 노래를 한때 자주 들었다. 노래가 내 취향이고 목소리가 멋져서 이름을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가수의 신곡이 언제 나올지 오매불망 기다리는 타입은 아니었던지라 그렇게 어쩌다 한 번 찾아 들었었다. 싱어게인을 보다가 이 가수 목소리가 그 가수랑 비슷하네 하고 생각했다. 찾아보니 같은 가수였다. 단지 내가 이미 알고 좋아해본 적 있단 이유로, 그 가수를 첫라운드에서 마주치고 이름을 알게 되어버렸단 이유로 나는 김수영씨 노래에 빠져나올 수 없이 홀린 것 같다. 그게 뭐라고 운명이라 느껴지고, 같은 곡을 몇 번씩 듣게 됐는지. 반가운 마음과 그동안 이렇게 많은 노래를 내셨는데도 찾아듣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합쳐져서 더 큰 애정이 폭발하는 중인가보다. 나는 오래전부터 이 가수를 알고 있었고 좋아했다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응큼한 구석도 있다. 그러려면 가수에 대해 더 잘 알아야하고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고를 수 있는 노래 2~3가지 정도는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열심히 찾아듣는 중이다. 사실 열심히 해야지라는 마음 없이도 틈만 나면 나는 김수영 씨의 노래를 들으려고 하지만 말이다. 이 꾸안꾸 가수, 나의 취향을 제대로 적중해버려서 큰일이다. 절대 <제일 좋아하는 곡>을 2~3가지로 좁힐 수가 없다. 황당하다.


이런 날씨에는- 이런 기분에는- 이런 시간에는- 이런 시기에는- 이 노래를 들으면 더욱 좋겠다일 뿐. 이 노래는 어떤 친구가 떠올라서 추천해주고 싶은 마음만 들 뿐. 저 노래는 아끼고 싶으니까(나만 알면 망하지만.. 나만 알고 싶은, 나만의 소중한 취향이 담긴, 누군가에게 소개했을 때 반응이 미미하면 마치 내가 상처입을 것 같은 마음에) 섣불리 추천하고 싶지 않은 좀생이같은 마음만 들 뿐이다.






굳이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한다는 건 그만큼 애정을 쏟는다는 증거요,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결과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냈을 때 그저 부정적인 감정이 남아있는가?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오히려 부정은 긍정으로 해소가 되었던 편이다.


어렸을 적엔 지금보다 편식이 심했다. 채소, 버섯을 싫어하던 아이. 특히 오이소박이와 오이지, 버섯볶음, 콩, 토마토는 내가 싫어하던 음식 탑 5였다. 하지만 위의 음식은 우리 몸에 도움이 되면 됐지, 해를 끼치지 않는다. 어느샌가부터 자연스럽게 그 음식들을 먹게 되고, 때론 찾아서 요리해 먹는다.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연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굳이 챙겨 먹어야 우리 건강에 이로워진다는 사실을 머리뿐만 아니라 몸도 알고 있다. 노동, 재미없는 분야의 공부는 누구나 즐겨서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기 싫은 일에도 도전하는 경험,실패해도 어려운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에 맞서봤다는 도전의식, 해냈을 때의 성취감. 그 과정들을 겪는 동안 쌓아진 수행능력 등은 채소가 주는 건강함과 비슷한 것들이다. 굳이 했다면, 굳은 경험들은 나를 굳세게 만들어준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어버리는 마법같은 단어.


아직도 하기싫은 일은 피해버리고 싶은 나지만 분명 열렬하게 반대로 행했을 때의 기억이 많이 존재한다. 인간은 기억과 경험, 기대로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기억과 경험을 둑처럼 쌓아서 넘치는 기대를 수용해야지.





노트북, 책 두 권, 따뜻한 카페라테 필승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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