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이 먼저 도착한 소년이 있었다. 괴담처럼 무성한 소문을 달고 조용한 시골 학교를 웅성이게 했다. 선생이고 뭐고 없는 녀석이래, 욕지거리를 어찌나 해대는지, 학교에 불까지 질렀다던데...
내년에 감당 안 될 녀석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아이들 입을 타고 흘러 흘러 선생님들에게까지 들어왔다.
그래 봤자 중1인데.. 생각하다가도 학교에 불을 지른 건 꽤 심각한데.. 이 평화로운 학교에서 말로만 듣던 반항아를 드디어 만나는 건가, 지난 4년 동안 순수한 영혼들 덕분에 너무 편안하긴 했지.. 소문 하나만으로도 속이 시끄러웠다. 이미 내 머릿속엔 껌 좀 씹는다는 전형적인 반항아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침을 찍찍 뱉고 있었다.
입학식에서 그 녀석을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었다. 옆 선생님께서 조-기 있다고 하시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안 보여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찾았다 드디어. 어렵게 찾아낸 그 녀석은 아주 자그마한 키에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다. 반에서 제일 작은 소년이었고, 얼굴이 영화배우 유해진 님과 너무 닮아서 놀랐다 중1인데. 유해진 배우님 특유의 꾸밈없고 순박하면서 정감 가는데 어딘지 날카로운 눈매가 쏙 빼닮았다. 말씀 중인 교장선생님을 쳐다보는 건지 째려보는 건지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 여하튼 내가 상상했던 전형적인 반항아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 해에 나는 중3을 맡게 되어 그 녀석과는 어떠한 접점도 없어야 했지만, 작고 사랑스러운 학교의 특성상 니 반, 내 반이 없었다. 한 학년에 한 반씩, 몇 안 되는 아이들과 거의 가족과 같은 분위기로 지냈다. 여기 가도 그 녀석이 있고, 저기 가도 그 녀석이 있었으며 소문대로 욕을 잘했다. 친구들이 말을 걸 때마다 씨x 씨x 욕을 했다.
하루는 젊은 여선생님들 4명이서 경쾌하고 즐겁게 퇴근을 하던 길이었는데 그 녀석이 길목에 서 있었다. 퇴근길이라 기분도 좋고 자그마한 녀석이 혼자서 서 있는 모습이 귀엽게 보이기도 해서 다 같이 손을 흔들며 “J야~~ 안녕~~~”이라고 했더니 그 녀석이.. 그 녀석이.. 얼굴이 시뻘게 져서는 우리를 향해 중간 손가락을 올렸다.
요즈음 같으면 교권위원회가 열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웃음이 나왔다. 4명 선생님들이 동시에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그 녀석은 더 당황해서 입을 쌜쭉거렸다. 유해진 님을 닮은 자그마한 소년이 어른처럼 센 척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온 것이다.
그 녀석은 그랬다. 반항을 하긴 하는데 조금 이상했다. 말을 걸면 “뭐요” “뭐요” 하고는 슬그머니 사라졌다가 어느새 보면 다시 와 있었다. 친구들이 살갑게 다가가면 거친 욕을 내뱉고는 그 틈에 머물러 있었다.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거친 욕지거리가 이상하리만치 위협적이지 않았다. 모두가 그렇게 느꼈다.
혼자 휴게실에서 청소 상태를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커튼이었나를 정리하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불쑥 들어와서는 갑자기 자기 이야기를 내뱉기 시작했다. 무거운 가정사와 어릴 적 이야기를 툭툭 뱉어내는데 나는 당황하지 않은 척 마저 남은 커튼을 정리하고 녀석의 얼굴을 보았다. 담담하고 무심한 표정으로 뱉은 이야기가 내게는 육중한 무게로 내려앉았고,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애먼 데를 쳐다보고 있는 녀석에게 섣불리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힘들었겠구나..
별로요 -
지금은 어떠니.
괜찮아요 -
별로이고, 괜찮다고 말하는 녀석 안의 작은 소년이 가여웠다. 이럴 때마다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어리숙한 어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다른 학생들이 들어오자 녀석은 교실 밖으로 호다닥 뛰어나갔다. 그날 녀석은 욕을 섞지 않고 자기 이야기를 했다. 나는 한동안은 녀석이 욕을 하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녀석이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욕이라서 다행인 것이다.
나는 그때 기독봉사동아리를 맡고 있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점심시간에 모였다. 토요일에는 격주마다 근처 요양원으로 봉사활동을 갔다. 녀석은 동아리 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와서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갔다. 가끔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출근길이었다. 바쁘게 현관으로 들어서려는데 언제부터 있었는지 녀석이 주뼛거리며 서 있었다. 어느샌가부터 녀석이 욕하는 소리가 덜 들리는 것 같기도 했으니 아침부터 욕을 날리진 않겠지 생각하며 “J야~~ 안녕~~~”이라고 인사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녀석의 오른손이 교복 재킷 속주머니에 꽂혀 있었다. 그 손이 심히 수상하다는 생각이 스친 찰나.
쓱
가슴팍에서 손이 튀어나왔다. 중간 손가락 아니고 빨간 사과였다. 속주머니에서 사과를 꺼내더니 내게 던지듯 주고는 달아나 버렸다. 얼마나 만지작거렸는지 빨간 청송 사과가 따뜻하고 반들반들했다.
- 이 글은 아래 '물에 불린 미역을 보며 너를 생각해' 글에서 잠시 언급된 소년 J에 관한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