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받아 반짝이는 상고대
입사 동기인 동갑내기 친구들은 사내 산악회 동아리에 가입하였다.
과장님이 산악회 회장님이신데, 항상 웃는 얼굴에 짧은 머리가 인상적이시다.
동기들과 같이 산악회에 들었으니 기대하는 게 많았다.
산행일정이 뜨기를 틈틈이 체크한다.
이번에는 설악산 한계령을 가신다고 하니 뭔가 가슴이 두근거린다.
들뜬 동기들은 서로 의기투합하여 같이 나선다.
산행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던 동기들은 살짝 긴장하긴 했어도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무박으로 잡힌 일정이라 버스 안에서 대충 자고 몇 번의 몸쏠림이 있고 나서 눈을 뜨니 한계령이다.
새벽 4시 찬바람이 몸을 후벼 파는 듯이 춥다.
한계령은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리고, 강풍이 몰아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설악산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남신 제우스를 연상케 하는 웅장한 바위와 눈 덮인 숲이 어우러진 한계령의 겨울 풍경은 마치 동양화 속 장면처럼 현실의 것이 아닌 것처럼 신비롭다.
과장님은 회원들을 정리시키며 밥을 준비하신다.
버너는 보기에도 엄청 오래된 골동품 같았는데, 신기하게도 불이 잘 붙었다.
코펠은 그동안 산을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보여주듯이 낡아 있었다.
과장님은 그동안 산에 다니면서 자신을 먹여 살린 코펠이라고 자랑을 하셨다.
동기들은 과장님의 코펠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밤새워 내려왔으니 출출할 만도 하지”
과장님은 따뜻한 물과 준비한 식사를 꺼내시고 직원들부터 챙기셨다.
“앞으로 산에 많이 다닐 사우들은 겨울에는 삶은 메추리 알을 꼭 챙기면 좋다. 메추리 알은 고단백으로 추울 때 먹으면 든든하고 추위도 덜 느끼기 되니 아주 좋은 간식이다”
하면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주었다.
주로 겨울 산행을 즐기시는 과장님은 산에 대한 지식이 전문가 못지않았다.
왠지 믿음이 간다.
동기들은 그런 과장님과 생애 첫 산행을 하게 된 걸 무척 다행이라 생각했다.
산행에 서투른 신입들까지 살뜰하게 챙기시던 과장님의 추억이 한계령 곳곳에 새겨졌다.
직장에서도 인자하신 과장님은 산에서도 여전히 인자하신 리더였다.
산에 오래 다니려면 건강을 잘 챙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인지 과장님은 정말 다부지고 튼튼해 보이신다.
시력도 어찌나 좋은지 웬만한 건 다 보인다고 하신다.
“내가 눈을 관리하는 방법은 매일 집에 들어가면 하루 종일 피곤했던 눈을 차가운 물로 헹궈낸다. 그렇게 하면 눈이 맑아진다”라고 하면서 시력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시력이 좋았는데도 그 말씀이 인상 깊게 남았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도 과장님이 챙겨주신 아침 덕분에 한결 몸이 따뜻해진 듯했다.
한계령의 새벽은 예상할 수도 없는 추위였기에 동기들은 과장님의 따뜻한 보살핌이 좋았다.
앞으로도 과장님이 가신다면 어디든 따라가자고 생각했다.
이른 새벽의 한계령은 한 치 앞도 안 보였지만, 과장님이 계셨기에 안심하고 등반을 할 수 있었다.
출발하자마자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져 체력 소모가 극심했지만, 능선에 오르면서 설악산의 가장 장엄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등산로는 길이 좁고 바위가 많아 더욱 거칠고 자연 그대로의 느낌이 강했다.
손끝에 닿은 차갑고 거친 바위의 촉감을 마음에 새기며 올라갔다.
손이 시리다고 장갑을 끼라고 하셨지만 그 느낌이 좋아 장갑을 낄 수가 없었다.
20대의 젊은 객기라고 해야 하나 우린 추위도 무섭지 않았고 그저 한계령에 매료되어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직장동료들과 오르게 된 곳이 환상적인 자태로 눈을 사로잡는 한계령인 것은 천운이다.
처음 경험한 것이 좋으면 잊지 못하는 것이 세상만사 듯이 우리가 산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듯이 얼얼하게 부딪혔지만 그 바람조차도 마냥 좋아서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생활이 힘들지라도 한계령의 바람만큼 매서울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왠지 모를 힘이 났다.
정상 부근에서는 나무마다 상고대(서리꽃)가 피어, 온통 새하얀 겨울왕국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한계령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설악산의 장대한 능선과 드넓은 하늘이 이어져 가슴이 탁 트이게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슴프레 밝아오는 빛을 받으며 눈앞에 펼쳐진 거대한 동양화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바위 사이사이에 내려앉은 흰 눈은 햇살에 반짝이고 몽환적인 풍경에 벅차오르는 감동을 누를 길이 없다.
안평대군이 꿈에 도원에서 본 광경을 안견에게 말하여 그리게 되었다는 '몽유도원도'가 보이는 듯했다.
눈 덮인 몽유도원도가 이런 풍경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계령의 거친 바람을 맞으며, 잠시 머무른 휴게소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본다. 그 바람 속에는 눈 내린 까칠까칠한 바위의 정경이 주는 낭만이 있었고, 왠지 설악산의 품에 안겨 있는 듯한 포근했던 그날의 감동을 잊지 못하리라
서툴었던 직장생활, 경험이 없던 등산
과장님은 사회 초년생이었던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산악회 #과장님
#한계령 #겨울산행
#등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