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흐름을 바꾸려는 모정

인연의 끝자락을 쫓는 사람

by 그리여

노추산 등반을 하다 보면 그 옛날 만났던 안타까운 인연이 생각난다.

그는 어찌 되었을까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절망에 가득 찼던 황망한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강원도 정선의 간이역. 구절리역에서 내려 철도가 끊긴 곳에서 한참을 가면 구절리의 작은 동네에 한적한 마을에 허름한 집이 있다. 친구들과 기타 치며 감성놀음을 하다가 이른 새벽에 노추산으로 향한다.

잔가지가 너저분하게 늘어진 길을 따라가노라니 메마른 땅에서 풀풀 날리는 먼지처럼 텁텁하게 숨이 차 오르고 발이 무거워진다.

그날 그들을 처음 만났다.


덕수(가명)와 정희(가명)는 그곳이 거의 고향이나 다름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서울에서 일을 하고 주말이면 언제나 구절리로 내려왔고 그녀는 어느 알려지지 않은 작은 암자에서 심부름을 하며 지내는 말수가 적은 조용한 아이였다. 덕수와 정희는 인적이 드문 작은 시골 마을에 살면서 서로를 챙겼고, 둘의 우정은 자라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노추산은 강원도 정선군에 위치하며,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역사적·불교적 의미가 있는 산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시대부터 불교적 성지로 여겨진 곳으로, 신라와 고려 시대에 수도하는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한다.

특히, 인근 지역에는 수행을 위한 암자나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노추산에는 수령이 수백 년 된 금강송 군락지가 있다. 이 금강송 숲은 국내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며, 신성한 기운이 서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부터 이 지역은 수행자들이 명상을 하거나 기를 충전하는 곳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자연 그대로의 거침이 있는 산을 오르고 계속되는 오르막에 지칠 때쯤에 덕수는 산 중턱에서 지친 모습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린다. 법흥사라는 절이 있고 금강송 숲이 감싸고 있는데 금강송이 뿜어내는 기운이 상당히 강하다고 한다.


정희는 어릴 때 부모가 버리고 간 아이를 절에서 거두어 키웠다고 한다. 덕수는 오늘도 정희를 찾아 산을 하염없이 오른다. 겨우 암자에 도착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없었다.

비구니 스님이 말씀하시길 다른 곳으로 도를 닦으러 떠난 큰스님을 따라갔다고 한다.

이제 겨우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디로 간 것인가

덕수는 이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아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희는 중상이다 그래서 자기 길을 가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정희가 왜 중상이에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비구니 스님은 별다른 동요가 없는 얼굴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나 또한 운명의 이끌림으로 출가하여 지금까지 내 길을 가고 있다. 정희도 분명 잘할 거야”

그렇게 말하는 비구니 스님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얼굴엔 알 수 없는 광채가 나는 고귀한 느낌의 고운 얼굴이었다.


‘노추산에서 만난 인연은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고 한다’라고 덕수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고 꾹 삼켰다.

정희의 부모님은 어떠한 사정으로 정희를 여기에 버렸지만 말 못 한 사연이 있다고 했다.

운명이 정희를 이곳으로 보냈다면, 정희는 중으로써 자신의 일생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덕수가 오로지 정희를 위해서 서울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도 그녀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며 돈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한 것인데, 정희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물어도 어디로 갔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덕수는 너덜길을 걸으며 노추산을 원망하고 정희의 행선지를 알려주지 않는 비구니 스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산은 기가 좋아서 운명의 어긋남에 삶이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정희의 부모님도 그렇게 정희를 이곳에 맡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덕수는 이제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황망한 마음에 하염없이 걸었다.

노추산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끝없이 이어져서 때로는 거칠고 잔가지가 얼굴에 부딪히도록 좁아지는 길을 내어준다. 힘든 마음을 어쩌면 잠시나마 잊기를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덕수의 뒷모습을 보던 비구니 스님이 눈물을 훔친다.

미안하구나 정희는 나의 딸이다 엄마의 기구한 운명을 닮았는지 여기로 보내졌더구나 어느 절에선가 그런 정희의 운명을 빠꿀 수 있는 도력이 높으신 분이 있다고 해서 보냈단다.

언젠가 네가 정희를 잊지 않고 찾아온다면 반드시 다시 만나게 해 줄게

노추산은 한번 맺은 인연은 다시 이어준다고 한다지


덕수는 인연의 끝을 알 수 없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무기력하여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정희를 그리워한다.


후에 다시 만난 비구니 스님이 그 이야기를 덤덤히 해 주셨고, 그날의 공허한 눈빛과 차분하지만 떨리던 목소리가 오래도록 잊히지 않았다.


덕수에게 알려주려 했지만 그 후로 그를 만나지 못했다.

노추산은 그들을 다시 이곳으로 불러들여 품어 줄까 인연을 다시 만나게 해 준다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언젠가는 그 둘이 함께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산을 내려왔다.


인연이 가진 무게와 감당하기 힘든 현실과 마주한 부정 하고픈 운명. 무엇이 더 무거운 것인가

과연 그런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복잡한 생각이 든다.

산에서 만난 사람들! 그중에서도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은 마음을 무겁게 한다.

노추산에서 그들이 다시 만나고 비구니 스님이 그들의 앞날을 축복해 주는 그런 그림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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