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피골에서 부는 짐승소리 같은 바람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

by 그리여

오대산은 예로부터 원시림이 잘 보존된 산으로 알려졌다는데 전나무, 소나무, 신갈나무, 단풍나무 등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고, 산림 보호가 잘 이루어져서 깨끗한 자연을 자랑하고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오대산의 숲은 불교와도 연관이 깊어서, 신비롭고 고요한 분위기가 가득했고 정기(精氣)가 좋기로 유명한 산이라고도 한다.


새해 초가 되면 기를 받으려는 무속인들이 며칠 머물면서 기도를 하고 친목을 도모한다.

신기가 충만한 사람은 눈빛이 다른 듯이 보이기도 했다.

신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은 빗자루에 물을 묻혀 씻기는 씻김굿을 하기도 한다.

소리가 오싹한 느낌이 들어서 자리를 얼른 피한다.

아무튼 묘한 분위기에 그들 옆에 가기가 두렵다.

그들은 동피골에서 기도를 하고 과일이나 사탕 같은 것을 두고 내려오는데 그것을 가져다 먹는 사람들도 있다.

왠지 께름칙하여 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싱싱한 과일들이 즐비한 것을 보다 보면 이 겨울에 추운 것도 아랑곳 않고 칼바람이 부는 계곡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면서 그 과일이 신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보기도 했다.


동피골은 깊고도 아름다운 계곡이다. 그곳에서 바람이 우렁차게 휘이잉 몰아치듯 불면 괴물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거인이 휘파람을 불면 이런 소리가 나려나 생각하게 되는 매력이 있는 소리로 귓가를 때리고 그 소리가 내내 잊히지 않는다.

계곡 깊은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이끌리듯이 가다 보면 바위와 나무에 앉은 하얀 눈과 계곡사이에서 흐르는 물소리. 그 위로 두껍게 덮여있는 얼음.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에 홀려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계곡 깊이 들어가다가 잠시 쉬려고 바위에 앉아 있으면 저 멀리서 소지로의 오카리나 연주곡 '춤주는 용'의 청아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언젠가 친구가 오카리나를 들고 와서 직접 연주를 하였는데 눈을 감고 차가운 바람을 느끼고 오카리나 연주곡 '대황하'의 독특한 멜로디를 듣노라면 맑은 소리가 계곡을 휘감아 돌고 바람조차도 멈추고 연주를 감상하듯 고요해지면서 오카리나의 소리만이 허공을 가르고 오롯이 귓가에 스며들면 이 세상의 시간이 멈춘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어느 해였던가 신년초 산장 근처에서 야영을 하고 있는데 새벽 일찍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계곡의 바람은 오늘도 고함을 지르며 산속 깊이 울려 퍼지는 차가운 이 새벽에 누가 소리를 지르나! 하고 궁금해하니까 산장지기가 신년 초에 항상 차가운 물에 냉수욕을 하러 오는 가족이 있는데 그들이 지르는 소리라고 한다.

침낭 속에 있어도 추운데 대단한 사람들이네! 하고 오싹함에 몸을 부르르 떤다.


그 산장에는 어릴 적에 부모님을 여의고 혼자 살면서 오대산을 즐겨 찾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산장지기의 맘에 들어 그곳 산장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눈이 맑고 언변이 좋아서 등산객들이 좋아했다.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사람은 없지만 오대산을 가면 항상 있는 사람이었다.

친구들은 오대산을 가면 그가 있는 산장에 머물면서 이야기 벗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가 이곳에 머문 것은 오대산의 인연이 이곳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산장지기 또한 과묵한 사람인지라 그리 말수가 없었는데 그와 어울리며 같이 지내는 걸 보면 정말 보이지 않는 어떤 인연이 이끌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머무는 곳이 없이 떠돌던 그는 산장에서 산행도 하고 가끔 사람들을 인도하는 가이드도 하고 산장을 돌보기도 하면서 가족처럼 잘 지내고 있었다.


어려서 가족을 잃고 어찌하다 보니 여기 산장에 머물게 되었다. 그런 그가 무언가를 찾으러 한 달에 한번 정도는 서울에 간다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왜 가냐고 물어보지 않으니 그는 여기가 편한다고 했다.

누구나 말 못 할 비밀을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그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비밀을 누군가는 또 알아주었으면 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대산은 그의 외로움을 아는 듯 그에게 관대하였고, 그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어울리며 정이 차곡차곡 탑처럼 쌓여 이곳을 더욱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가는 등산객들 중에는 그에게 매료되어 계속 찾아오는 이도 있다고 했다.

사연이 있지만 사람들은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그와 어울렸다.

가끔 누군가 찾아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산장지기는 그의 누님인 거 같다고 했고 한번 찾아온 이후로는 오지 않았고 그의 외로움은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가 말하지 않았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고 그저 짐작만 할 뿐이라고 했다.


그를 좋아하던 한 아리따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집안에서 반대를 할 게 뻔한데도 끈질기게 구애하여 그를 기어이 속세로 내려오게 했다.

그런 그를 달가워하지 않던 그녀의 부모님은 어떻게든 그를 설득하여 돌려보내려 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왼쪽 팔다리가 마비가 되었다.

용하다는 한약방을 가서 침을 맞고 겨우 나아지기는 했지만 상처받은 마음은 어떻게 치료가 안 되었는지 그는 방황하다가 오대산을 더는 찾아오지 않았고, 산장지기는 마음을 졸이며 그를 기다렸으나 돌아온 건 그의 비보(悲報)였고 그는 혼자 외로이 삶을 버렸다.

몇몇 지인들과 그의 유해를 수습하였고 그가 즐겨 찾고 좋아했던 동피골 깊은 계곡에서 그를 애도하였다.

그를 품었던 오대산에 또 하나의 삶이 묻힌다.


오대산은 많은 인연을 만들어 주었지만 그의 삶은 잡아주지 못했고 오대산이 좋아서 머물렀던 그의 흔적은 바람과 함께 날려가 버렸다.

산이 좋아 산에서 살던 사람이었는데 산을 떠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사시사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에서 한적하고 원시적인 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지 않았을까

오대산은 그를 품어 주었지만 세상은 그를 외면하였다.



#오대산 #인연

#염원 #기도

#동피골

#바람

keyword
이전 08화세상 참 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