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햇살처럼 Jun 19. 2024

비혼주의지만 결혼은 하고 싶어

 서른다섯,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되었다. 신입 사원이라 출근 첫날부터 주목을 많이 받았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서른다섯입니다."

"좀 늦게 들어오셨네요."


 여기까지는 일상적인 대화.

"결혼은 했어요?"

"아니요."


 그때 차라리 '예'라고 대답해야 했다. 결혼을 안 했다는 대답이 관심 아닌 관심을 이끌어 낼 줄 알았다면 말이다.




 어느 일요일 새벽, 업무 차 부서 A 과장님과 단 둘이 있던 차량 안. 과장님이 물었다.

"왜 아직 결혼 안 했어요? 허심탄회하게 말해 봐요."

잠시 망설였지만 '허심탄회'라는 말을 믿고 대답했다.

"형편이 조금 어려워 결혼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이 대답을 시작으로 나는 궁상맞은 지난 이야기를 꺼냈다. 지난(難)했던 내 삶 과장님이 따뜻한 격려의 말을 건넸다.

"경제적으로 힘들면 자신감을 잃기 쉬워요. 너무 의기소침하지 말아요."


 1개월 후 동기 모임. 동기 B가 말했다.


"햇살아, 너 쥐뿔도 없어서 힘들다며?

'내가 지금 들은 거지?'싶었다.

"무슨 소리야?"

"너희 과장님이 우리 부서에 와서 너의  이야기로 일장 연설을 하시던데?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데 집에 돈이 없어 너무 안타깝다고!"  


 충격이었다. A과장도, B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타인의 아픔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결국 B와 심하게 다투었고, 나는 모임을 떠났다.  


 가난한 사람의 옷은 무겁다. 우산 없이 걷는 날이 많고 100미터 뒤에서 시작하니 자주 뛰어다녀야 한다. 비도 맞고 땀도 흘리니 옷이 무거운 거다. 보통 사람은 어려운 사람의 옷이 무겁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삶을 가볍게 말해도 될 이유가 되진 않는.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해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어른이라면 말이다.     



 

 그날 이후, 결혼을 유도하는 어른들의 질문에 장난스레 응수한다.


"햇살씨 결혼 안 해요?"

"집 살 돈이 없어요!"

"대출하면 되지. 좀 힘들 수 있어도 어떻게든 다 살아지더라."

"네. 뭐 굶어 죽진 않겠죠. 하하"

 속 마음은 이랬.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대출금을 언제 다 갚죠? 이자만으로 내 월급은 순식간에 삭제될 것 같은데요. '


 나이가 들어가니 추측성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다.

"눈이 높은 것 아니야?"  

"그런가요? 안과 가서 눈 검사부터 받아야겠어요. 눈을 낮출 수 있게. 하하"

차라리 눈이 높을 있으면 좋겠다. 서른다섯 살 기준으로 통장엔 마이너스 이오십만 원에, 집도, 차도 없었다. 눈이 높을 수가 있을까.

"에이! 그래도 예쁜 사람 좋아하잖아?"

이런 질문은 반칙이다. 세상에 예쁜 여자나 잘 생긴 남자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내면이 어떤지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왜 결혼 안 해요? 혼자 즐기려고?"

"네, 즐기니까 너무 재밌어요. 하하"

 혼자면 좋은 측면도 있다. 소소하게 먹고 싶은 것 먹고, 사고 싶은 것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평생 혼자면 별로 일 것 같다. 감기만 걸려도 혼자면 서글프다. 나이 먹을수록 '혼자 있는 방에서 갑자기 쓰러지면 어쩌지?'라는 두려움도 생긴다.




 요즘은 결혼을 선택이라고 하지만 나는 결혼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고시원,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서른다섯에 겨우 백수 신세를 면했다. 이제야 두 다리 쭉 뻗고 지낼 수 있는 작은 아파트도 마련했다. (베란다아직도 은행지분이다.) 지난 내 삶을 모르는 사람들은 말한다.


'결혼 못할 그런 사람은 아닌데.'

'빨리 해라. 더 늦으면 결혼하기 더 힘들다.'


 겉만 보면 무난하게 일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해 보이니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결혼이 급하다고 걱정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결혼이 과제처럼 느껴진다.

'이제 겨우 숨 돌렸는데 결혼은 또 어떻게 해 낼 것인가?...'


 A과장이나 B동기처럼 어쩌다 내 과거를 아는 사람은 동정 아닌 동정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제발 좀 그러지 마시라. 나는 철없던 시절 외에는 내 삶을 부끄럽게 여긴 적이 없다. 가난하면 그냥 불편하다. 그게 전부다.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불편하게 사니 힘들고 속상한 많았다. 그럴 땐 친한 동생이 해 준 말을 떠 올린다.           

"계급장 떼고 생각해야죠. 같은 조건을 두고 형처럼 살아 보라고 하면 힘들어 할 사람 많을 거예요."   

그래! 부모찬스, 타고난 외모 같은 계급장은 전부 떼야한다. 비교를 하려면 같은 조건을 두고 하는 게 맞다.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니 이젠 마음이 꽤 단단해졌다. 내 삶을 존중해 주는 사람에겐 감사함을 표하지만 동정하는 척하는 위선자에겐 '지랄하고 자빠졌네'를 외친다. 마음속으로.


함부로 말하는 자에겐 세종도 욕을 했다. 비록 드라마였지만..




 남들은 서른쯤이었겠지만 나는 마흔쯤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결혼해? 말어?'

남들 하는 거 전부 해보고 죽자는 신념으로 '결혼하자' 마음먹던 때도 있었다. 결혼 대한 내 조건은 분명하다. 돈이나 직업? 그런 거? 아니다. 그런 걸 따지기엔 나도 딱히 내세울 게 없다.

 

 지하철을 탔다가 어느 중년 부부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퇴근 시간이라 지하철 안은 매우 복잡했다. 부부는 한 손은 손잡이 하나를 나눠 쥐었고, 다른 손은 서로의 허리를 감싼 채 서 있었다. 지하철이 덜컹 흔들릴 때마다 같이 잡고 있던 손잡이가 흔들려 휘청했지만 허리를 잡고 있던 서로의 손으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옅은 미소로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보였다.


 '손잡이 하나 나눠 가질  아는 마음 ' 

지하철 일화를 통해 한 줄로 정리해 둔 나의 결혼 조건이다. 글을 쓰면서 약간 오글거림을 느끼고 있으니 역시 이상일뿐이다. 현실은? 결혼에도 엄청난 스펙이 요구되는 시대다.

'에라이! 때려 치아뿌라!'

역시 답답할 땐 아버지의 명언(?)을 떠 올리는 게 최고다.


 지금은 꿈을 우선시한다. 결혼에만 목메기엔 마냥 흘러가는 젊음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꿈꾸는 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잡초처럼 버텨 왔던 인생 스토리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주식에 비유하면 뭐랄까 잠재적인 우량주 정도? 하하.


 그럼 결혼을 포기했느냐? 그건 아니다.

엄마 생전에 내 사주를 본 적이 있다.

"햇살아 너는 아주 늦게 결혼할 팔자래."

다 늙어 결혼한다는 말이 듣기 싫어 엄마에게 컥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 30대 초, 인생이 잘 풀리지 않아 재미로 봤던 인터넷 운세의 결과.

'청년 시절은 애정운, 결혼운이 좋지 않으며 중년 이후에 좋을 것이다.'

이거 뭐야 진짜. 엄마 말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그때도 심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중년의 초입(初入)에 있는 지금, 사주가 맞다면 결혼할 때가 다가 오고 있지 않을까.


누군가 물을지 모른다.

"결혼 안 해?"

지금의 내 대답은?


'(잠정적) 비혼주의지만 (나중에라도) 결혼은 하고 싶어.'


뭐 못하면 말고!

이전 15화 아프니까 꼰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