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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Jun 26. 2024

응 가스라이팅이야


"오늘도 잘 될 거야. 김XX 파이팅!"


 자기 이름을 외치며 하루를 시작하는 직원이 있다. 덕분에 건조하고 딱딱한 사무실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다. 하루 종일 미소를 달고 사는 직원도 있다. 오전에 힘든 일을 겪어도 오후에 다시 웃을 정도다. 정말 신기하다. '대체 어떤 환경에서 성장해야 이 정도까지 밝을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태어나야 가능할  같다.


 미소 짓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 과하면 의구심이 생긴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억지로 웃는 거 아니야?'

실물보다 훨씬 더 예쁘고 멋진 얼굴이 SNS에 노출되는 '평균 올려치기'의 시대. 거짓 웃음도 가능하지 않을까.


 갑자기 마음 한편에서 진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디서 지적질이야! 누구보다 애써 밝은 척하던 녀석이'

맞다. 그랬었지. 지난날의 나야말로 웃는 척, 밝은 척, 긍정적인 척. 그야말로 척! 척! 박사였다.




 20대 중반,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던 시기. 그런 자신감을 반영이라도 하듯 당시 유행하던 책은 '꿈꾸는 다락방'이었다.  

'노력보다 중요한 꿈꾸는 것이다.'

캬! 얼마나 멋진 말인가. '좋아! 나도 잘 될 거야!' 책을 읽으며 꿈을 꾸었다. 대기업 취업 후 사내 강사로 성공하겠다는 꿈 말이다. 하지만 무한 긍정꿈의 유효기간생각보다 짧았다.


 취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즈음, 미국발 금융위기(서브 프라임 모기지)가 펑! 터졌다.

'아, 신이시여! 친구들이 취업할 땐 조용하다가 하필 지금.. 정말 왜 이러십니까!'


 바늘구멍이 된 취업시장. 꿈도 바늘구멍만큼 작아졌다. 통장 잔고가 0에 수렴해 가면서 꿈은 잠잘 때만 꾸는 것이 되었다. '빨리 취업해야 목구멍에 풀칠이라도 겠다' 느꼈던 순간, 책 속 명언은 '꿈보다 피똥 싸는 노력'으로 바뀌었다. 수험서 한 권을 구입하려고 '꿈꾸는 다락방'을 다른 책과 같이 중고서점에 파는 지경에 이르렀을 땐 꿈까지 팔아먹은 기분이었다.


돈 없을 때 꿈이나 무한 긍정만 쫒으면 피똥 싼다....

 백수 생활이 계속되자 친구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햇살아! 너 괜찮아?"

"응, 뭐 괜찮아. 열심히 하고 있으니  되겠지. 하하하"

마음에 쌓인 힘든 감정을 무시하고 너털웃음 짓는 일. 당시엔 이것마저 긍정이라 믿었다.




 시간이 흘러. 처절했던 생활을 청산하고 인간다운 생활할 권리를 되찾았. 껍데기는 방긋, 속은 우울한 긍정 공식은 유지한 채 말이다.


 공직에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직장 동료가 말했다.

"햇살씨, 신규 직원 '나부자' 씨 알아요?"

"아니요? 왜요?"

"입사 첫날 벤츠를 타고 등장해서 사람들이 '우와' 하고 놀랐는데, 인물도 좋고 성격까지 밝데요."

"와! 대단한 친구가 들어왔네요. 하하하"

아무렇지 않은 척, 웃음을 지었지만 속 마음은 이랬다.

'웃기고 있네! 멋진 차에 외모까지 준수하면 어둡게 사는 게 더 어렵지!'


 집에 돌아와 찬물을 벌컥 벌컬 들이켰다.

'가난한 집 출생, 한 부모 가정'

'고스펙 취업 시장으로 꿈 접고 강제 공무원행'

'땡전 한 푼 없어 잠시 누나집 기거'

나부자 씨에 비해 초라한 내 조건을 생각하니 더욱 열이 올랐다. 눈앞에 보이는 물병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유전 긍정! 무전 부정!'




 오랜 시간 그런 척만 했지 긍정적으로 살지 못했다. 부정적이었나? 그건 아니다. 지나치게 우울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긍정도, 부정도 아닌 난감함. '그럼 대체 뭐?' 뭐랄까. 힘든 삶에 잘 버텨 온 것도 긍정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는 게 뭔가 억울했다. 어쩌면 누군가 알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더 밝은 척 했던 것 같다.  

 

 해답을 찾지 못해 고민하던 내게 부처님이 말했다.

"햇살아! 왜 보여 주려고 안달이 난 거니? '다 잘 될 거야'라고 막연한 긍정을 주입하지 마. 그건 가스라이팅 당하는 거야. 이미 당했다고? 쯧쯧.. 불쌍한 중생!"


정확히 다음처럼 말씀하셨다.

'실망, 분노, 질투, 두려움 같은 삶의 부정성을 제거하는 것으로 긍정성을 드러내라'

  (백영옥, 힘과 쉼 p97, 2023)

 

'이거다.' 싶었다.

인생엔 봄부터 맞이하는 삶도 있고, 겨울부터 시작하는 삶도 있다. 봄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엔 웃음이, 겨울을 맞이하는 사람의 마음엔 울음이 먼저 싹튼다. 고로 겨울부터 경험한 사람에겐 웃는  아니라 '울지 않는 법'이 필요하다. 삶의 부정성을 제거하라는 부처님의 메시지는 나처럼 겨울을 먼저 난 사람들을 위한 '울지 않 긍정법'인 셈이다.




 아픈 감정어떻게 해소될까. 기다려야 한다. 길고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면 봄은 찾아온다. 오랜시간 겨울을 겪은 사람에게 봄은 무엇을 안겨 줄까. 따뜻한 빛의 만끽? 본질이 아니다. 어둠에서 새로운 빛을 보게 한다. '힘들었지만 값진 경험이었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처럼.

  

 대학 시절, 지갑이 텅 비었는지 몰랐던 날. 학교에서 집까지 3시간 걸었던 적이 있다. 막차 버스를 타야 하는 시간이라 돈 빌릴 친구도 없었고, 10시가 넘어야 귀가하는 가족들에게 연락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집까지 걸어야 다. 가만히 서 있어도 더웠던 여름. 흐르는 땀으로 옷이 흥건히 젖었다. 서글펐던 마음. 한밤중에도 쉬지 않는 매미 울음소리가  야속하게 들렸다.


 그날 걸었던 거리만큼이나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빛을 알아차렸다. 걸으면서 보았다. 벤치에 소주 한 병 놓아두고 '걱정 마. 아무 일 없어. 곧 집에 갈게'라고 통화하던 가장, 늦은 시간까지 노점상에서 과일 팔던 허리 굽은 할머니와 어린 손녀의 모습을. '어려운 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그날 밤 건져 낸 별 같은 마음이었다.


'어둠에서도 빛을 보는 선명한 힘'


나는 이것을 '조용한 긍정'으로 호명하고 있다.




 만약  삶에 많은 비가 내리고 있다면? 밝은 해를 본 사람처럼 꼭 웃을 필요는 없다. 좀 울어도 괜찮다. 세상엔 '그런 척'하는 시끄러운 긍정만 있는 게 아니라 천천히 드러나는 조용한 긍정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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