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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Mar 27. 2024

사람 공부 제대로 했지 말입니다

 마트에 가면 '살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물건이 있다. 묶음과자다. 다이어트에 실패하게 만드는 주범들이 고소하고, 달콤하고, 매콤하게 유혹하며 모여 있다. 조건반사적으로 집어 드는 경우가 많지만 싫어하는 과자가 섞여 있으면 제자리에 돌려놓기도 한다.


 묶음과자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이 한 데 모여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군대다. 마음에 안 드는 과자는 구입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군대는 선택권이 없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모를 사람과 싫든 좋든 함께 해야 한다. 누군가 군대에 다시 가고 싫은 이유를 묻는다면? '강제로 어울려짐'이라 답하고 싶다. 남들 보다 늦은 나이에 끌려갔서러움 만큼이나 군대는 관계 맺음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 A 이병    


 "재수에 삼수까지 했는데 대학 입시에 떨어져 여자 친구한테 차이고, 군대까지 끌려 왔어요. 이건 하늘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해요"


 이제 막 입대한 A 이병의 고민이었다.

'야 인마! 뭔 하늘이 벌을 내려. 다른 건 몰라도 군대는 때가 되면 그냥 끌려 오는 거야'

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A와 달리 나는 병사의 생활을 감독하고 상급자를 보좌해야 하는 장교였다.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나도 삼수하고 산전수전 다 겪었어. 죽을 것 같이 힘든 순간도 어떻게든 살아지더라. 지금 겪고 있는 아픔이 나중엔 삶에 큰 밑거름이 될 거야."


 교과서적인 대답을 해서 민망했지만 정도면   괜찮은 답변이다. 늦게 입대한 스물다섯 살의 A와 스물일곱의 초임 장교였던 내 나이 차를 감안하면 말이다. 이후에도 A는 비슷한 고민을 여러 차레 털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만히 들어주었다. 훗날 병장이 된  A가 말했다.

 

"힘들 때 이야기 잘 들어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아니 뭘.. 난 해결해 준 거 하나도 없는데..."

"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었어요."


 들어주는 만으로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어설프게 깨달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고급스레 정리해 두었다. '귀 기울여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以聽得心)'라는 표현으로 말이다.




# B 지휘관


"넌 왜 아직 여자 친구가 없냐?"

"저... 등록금 마련 때문에 대학 시절에 좀 힘들어서 사귈 여유가 없었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네가 힘들었다고? 내가 겪은 거에 비하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말이지.."  


 B 지휘관은 질문을 했다가 대화의 중심을 자신으로 바꿔 버리는 '전환반응'을 자주 보였다. 여자 친구 유무를 물었다가 내 대답을 뭉개버리며 자기 부모에 대한 원망을 늘어놓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비를 벌어가며 공부했으며, 일반 대학이 아닌 사관학교에 입학한  부모의 도움 없이 공짜로 먹고 자고 할 수 있어서라는 둥 지난 이야기를 토해냈다. 이 정도면  그럴 수 있겠거니 했지만 그는 상담이란 명목으로 이제 스무 살에 불과했던 초임 하사들을 불러 말했다.


"부모에게 절대 용돈 주지 마. 세상엔 부모 같지 않은 사람이 많거든." 


그 말을 듣고 얼떨떨해하던  친구들의 표정아직도 기억난다.    


 부모 원망이 그의 주 메뉴였다면 인격 무시는 사이드 메뉴였다. 질문을 했는데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말을 하거나, 말하는 도중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주말이든, 퇴근 후든 막무가내로 전화를 했다. 저녁을 먹다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다가 손을 떨며 전화를 받았던 게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B와 근무하면서 알았다. 신체만 성장하고 마음이 자라지 못한 '어른 아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구나 마음에 그릇이 있다. 그릇에 원망이나 증오만 채우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비워 내고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진짜 어른은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다. 비워야 공감할 수 있다.




# C 일병


 내가 근무한 곳은 최전방 미사일 부대였다. 단 5분 안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 내가 맡은 임무였다. 근무 날은 동료들과 교대를 하며 잠을 다. 3명이서 근무를 하면 한 사람은 장비 안에, 나머지 두 은 대기실에 머물렀다. 장비 안에선 늘 깨어 있어야 하지만 새벽 근무는  꽤 힘들어서 저절로 눈이 감기는 경우가 있었다. 해이했던 건 아니다. 어느 정도 긴장을 머금고 있기 때문에 비상 상황이 되면 반사적으로 깨어났기 때문이다.

 

 두꺼운 옷을 껴 입어도 몸이 떨리던 어느 날, C 일병과 새벽 근무를 했다. C 늘 모범을 보이는 친구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전역하는 날까지 체력 훈련을 꾸준히 했고, 근무할 땐 단 한 순간 졸지 않았다. 소변도 금세 얼어 버렸던 날은 유독 장비 안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나는 따뜻함을 이기지 못하고 턱을 괜 채 꾸벅꾸벅 졸았다.


"중대장님! 장비 안이 좀 뜨거운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장비의 열을 식혀주는 에어컨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했다. 급하게 정비사에게 점검 요청을 다.

"조금만 늦었으면 장비 전체가 고장날 수도 있었어요." 

정비사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깨어 있는 C가 아니었으면 난 어떻게 되었을까.


 그날 이후 나는 장비 안에서 졸지 않았다. 아니 더이상 졸지 못했다. 조직2인자(200명 남짓한 작은 부대였기에 서열이 높았다.)이며, 병사들에게 귀감이 되는 사람이라 여겼 선민의식도 내려놓았. 


'눈에 보이는 직책이나 명함 보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C가 말 없이 행동으로 보여 준 교훈이었. 




 그렇게 싫은 사람, 좋은 사람부대끼며  나의 군 생활은 흘러 갔다.  아직도 다시 입대하거나 B지휘관이 등장하는 꿈이라도 꾸면 깜짝 놀라 잠에서 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걸 방증하는 것 일터. 하지만 부정보다는 긍정의 한 조각으로 남겨 두는 게 정신 건강에 유리하. 나는 쇼츠 영상처럼 짧은 메시지로  생활을 정리해 두었다.


'3년 간의 군대 생활, 사람 공부 제대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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