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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Mar 20. 2024

갈기늑대

늦은 건 없다. 그저 다를 뿐

 나와 세상 사이의 엇박자가 생긴 순간은 고등학교 졸업 후 삼수를 하면서부터다. 늦게 대학에 입학하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선배나 동기가 되었다. 고등학생 때까지 이어져 온 소속감의 끈이 잘려 버린 것 같았다. 나이는 고작 한두 살 차이에 불과했지만 그 간극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린 친구들을 선배라 불러야 하고, 함께 입학한 동기들에게 형이나 오빠라 불리는 일이 당시엔 너무 어색했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말이다.     


 '갈기늑대'가 된 것 같았다. 갈기늑대는 여우처럼 귀엽게 생겼지만 여우는 아니다. 이름만 보면 늑대에 속할 것 같지만 늑대도 아니다. 쥐나 토끼 따위를 잡아먹는 육식 동물이지만 나무 열매를 섭취하며 초식을 하기도 한다. 무리 생활을 하지 않고 단독 생활을 하는 것도 특이하다.


 나는 갈기늑대처럼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진짜 신입생도, 선배도 아니었다.  중고 신입이란 표현이 적당했을까. 가정 형편도 어려웠기에 매 학기 장학금 획득을 목표로 공부에만 매달렸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수업을 들었다. 성격이라도 시원시원하면 좋았을 텐데 소심했다. 그렇게 조금은 외로워 보이는 대학 생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인생 버퍼링은 계속되었다. 대학을 거쳐 군 장교로 복무한 후, 1년 간 취업 준비를 했을 때 미국발 금융 위기(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취업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서류 광탈(빛과 같은 속도의 서류 전형 탈락)을 경험하며 집중 호우로 무너지는 제방처럼 자존감도 무너져 갔다. 군 생활 때 저축해 두었던 돈도 조금씩 줄어만 갔다.


 '이러다 굶어 죽겠다.' 싶어 울며 겨자 먹기로 공무원 시험에 뛰어 들었다. 당시엔 엄청난 경쟁률을 자랑했기에 단기간에 합격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3년을 공부하니 통장 잔고가 0에 수렴하 있었다. '인생! 이대로 정말 끝이구나' 좌절할   합격 문자를 받았다. 가까스로 공직에 입문하니 대학 때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린 친구들이 내 동기였고, 선임이었다.




 지각 인생을 사는 건 쉽지 않았다. 웃는 얼굴을 하며 어린 친구들을 선배로 대하는 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다른 사람과 게 어울리지 못해 고립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지난 모든 경험들이  볼품없이 쌓인 책더미 같았다. 하지만 '경험은 모든 것의 스승이다'라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명언처럼 세상에 의미 없는 경험은 없다. 보잘 것 없다고 여긴 느린 시간 나를 도전적이고 유연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나는 오랫동안 원하는 대로, 생각대로 살지 못했다. 생계형 인간으로만 살다 보니 언젠가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 꼭 도전해 보고 싶었다. 마흔 때쯤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찾았다. 어린 나이는 아니었지만 해 내고 말겠다는 집념이 샘솟았다. '이미 늦었는데 좀더 늦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 같은 의지랄까, 아니면 혼자 있는 시간의 힘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처럼 '자기력(스스로에게 기대하는 힘)' 생긴 까. 뭐든 좋다. 시쳇말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타인과의 '건강한 거리감'이 필요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힘든 상황을 마주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나도 그랬다. 지체되고, 안 풀리는 삶을 다른 사람이  주길 원했다. 하지만 가족도, 친구도 내 마음을 완전히 헤아려 주지 못했다. 허탈할 때가 많았 그러면서 다. 자신의 문제는 스스로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다만,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적당한 관계 맺음은 필요하다. 그렇다고 과한 의존은 곤란하다. 기대기만 하면 나도, 상대도 지치때문이. 


 어린 친구들과의 소통도 이젠 곧잘 한다. 나는 X세대에 가까운 MZ세대다. 졸업과 취업이 늦어지며 MZ세대와 미친 듯한 스펙 경쟁을 해 보았다. 결혼, 내 집 마련 등 MZ세대가 닥친 난관에도 함께 봉착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이 동기가 되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자연스레 격식과 예의, 고리타분함을 내려 놓게 었다. 후임이나 동생들이 나를 '오빠' 나 '형'이 아닌 선배라 부르는 게 이젠 어색하게 느껴진다.




 '늦었다'라고 하는 시간 개념은 사회가 만든 인위적인 규칙일지 모른다. 우리는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지만 세르비아나 에티오피아는 다음 해 1월 7일이다. 누구도 이런 나라의 크리스마스가 언제인지 문제 삼지 않는다. 날짜가 아닌 '예수 탄생 축하'라는 본질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의미 찾기'다. 나도 한 때 속도에 집착했다. 사회적 시계에 따라 가는 늑대나 여우가 되길 바라면서 느린 삶을 처량하게 여겼다. 하지만 의미에 집중하니 갈기 늑대 본연의 모습, 즉 진짜 내 삶이 보였다. 의미를 찾으니 알게 되었다. 삶에는 다름만 존재하지 빠름이느림은 없다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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