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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처럼 Mar 14. 2024

책임감도 능력입니다

"햇살씨는 책임감이 강한 것 같아요."

가끔 회사에서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을 들으면 궁금증이 생긴다. 나의 책임감은 타고난 기질일까. 후천적인 환경 탓일까.


 선천적이라면 아버지의 영향일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불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뛰어난 무기와 도구를 만들어 인간들에게 기술과 지혜를 전수했다. 아버지는 뜨거운 불가마가 있는 공장에서 헤파이스토스처럼 공업용 바늘을 만들고, 여러 사람들에게 기술을 가르쳤다. 에어컨 한 대 없는 사막 같은 현장에서 '개근상'을 받았을 만큼 아버지는 성실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했다. 아버지의 근면한 유전자가 내게도 흐르는 것일까.


 후천적인 요인은 뭐였을까. 13살 때 엄마를 하늘로 떠나 보낸 후 우리 가족은 선수 한 명이 퇴장당한 축구팀처럼 엄마의 역할을 분담했다. 퇴장당한 선수가 속한 팀은 패배하는 경우도 많지만 극적으로 승리하거나 무승부를 거두기도 한다. 다행이 우리 가족은 후자였다. 커다란 문제없이 엄마의 빈 자리를 잘 메웠다. 내가 맡았던 역할은 '연탄불 관리'와 '현금 100만 원 찾기'였다.



# 연탄불 관리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도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님의 시처럼 나는 누군가에게 가슴으로 뜨거웠던 적은 없다. 다만 뜨거움을 관리했던 사람 정도는 된다. 연탄불을 관리하면서 가족들의 추운 겨울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꽤 오랫동안 우리 집은 연탄보일러를 사용했다. 불이 활짝 핀 연탄은 짧으면 8시간, 길면 10시간 간격으로 교체를 해 줘야 한다. 중학생 시절, 아침 8시에 등교를 하면 오후 4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4시가 다가오면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아침 8시에 갈아 둔 연탄이 8시간이 지나 다시 바꿔줘야 할 시점,  시간이 오후 4시였기 때문이다. 나는 연탄불이 꺼질까 걱정되어 친구와 놀다가 오후 4시만 신데렐라처럼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


 연탄불이 꺼지면 아버지께 엄청 혼이 났다. 다시 불을 피워 방이 따뜻해지는 데까지 3~4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연탄불이 꺼지면 가족들은 새벽까지 차가운 방안에서 지내야 했다. 그런 날은 죄책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연탄불 관리는 번거로운 일이었다. 연탄을 바꿀 때마다 연탄가스를 마실 수 있다. 불 조절을 위해 바람구멍을 많이 열어 두면 보일러에 있는 물통이 분노한 듯 팔팔 끓는다. 불이 센 연탄을 짚게로 짚으면 끝이 벌겋게 달궈지기도 한다. 실수로 불이 달궈진 짚게에 오른 손목이 닿아 화상을 입은 적이 있다. 꽤 오랫동안 쓰라리고 아팠다. 야속하게 상처는 천천히 아물어 갔다. 아프고 힘들었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책임감'도 알뜰살뜰 쌓였던 걸.


# 현금 100만 원 찾기

 한 달에 한 번 미친 듯 가슴 떨리는 날이 있었다. 통장에 있는 아버지의 월급 100만 원을 은행에서 찾는 날이다. "입까지 올라온 심장을 제자리 돌려놓으라."라는 아프리카 북꾼들의 표현이 있다.(제임스 글릭의 책 '인포메이션') 심장이 입까지 올라올 만큼 무섭다는 의미인데 너무 어렸던 내게 돈 찾는 일이 그 만큼 무서웠다.


 당시(90년대 중반)엔 미성년자도 은행에 가서 큰돈을 인출할 수 있었다. 어린애가 거액(?)의 돈을 찾으니 은행 직원은 항상 의심의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비밀번호 입력 하라'는 직원의 말에 깜짝놀라 손을 떨었다. 돈을 받으면 잽싸게 가방 안에 넣었다. 집으로 가는 길엔 돈이 잘 있는지 걱정되어 여러 번 가방 안을 뒤적였다. 그렇게 3년 동안 매달 100만 원을 찾았다. 돈을 찾으면 잔고는 언제나 0.  비었던 잔고와 달리 책임감은 조금씩 쌓였던 게 아닐까. 이자처럼 말이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의문이 생긴다.  책임감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걸까? 뭐 아무래도 좋다. 나는 뭐 하나 똑 부러지게 못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책임감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마치 내공 있는 사람이 된 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생긴  책임감이 꽤 괜찮게 느껴진다. 이유를 찾기보다 기질도 능력이 될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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