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너라는 존재 자체가 소중하다는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초등학교 시절, 그 아이의 이름은 장미였다.
성이 장, 이름이 미
외자를 가진 그 친구는 우리 반 반장이었다.
선생님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것도,
늘 이쁜 치마에 구두를 신고 오는 것도,
친구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는 것도,
나는 늘 그 아이가 부러웠다.
그에 비해 나의 모습은 초라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나보다 먼저 공장에 출근해야 해서 나의 머리를 매만져 줄 시간이 없었다.
신경 써주지 못한 헤어스타일은 커트나 단발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언니와 사촌들에게 물려 입어 늘어난 티셔츠도,
시장에서 산 싸구려 운동화도 모두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초라하게 느꼈던 순간이 떠오른다.
무슨 용기였는지, 아니면 누군가는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는지 나는 선생님께 편지를 적었다.
그 안에 내가 쓴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대략적인 내용이
나도 장미처럼 되고 싶다, 그런데 그러지 못해서 슬프다, 이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게 초라했던 이유는 다시 되돌아 간 교실에서 장미가 내가 쓴 편지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책상서랍에 두고 간 물건을 가지러 다시 교실에 갔다가 장미가 흠칫 놀란 듯 편지를 숨기는 것을 보았고, 그 사실이 너무 창피해서 나도 못 본 척하며 그 교실을 나왔다.
그때가 처음 느낀 비교가 만들어 낸 불행이었다.
그 불행은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았고, 사랑받고 있는 걸 느끼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린 시절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자주 비교했다.
특출 나게 뛰어난 것도 없고,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성적도 좋지 않았고, 리더십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분명 잘하는 것이 있었을 텐데 그런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비교하고, 비교하면서 나의 부족한 점들에 집중했던 것 같다.
그런 비교들이 내 삶을 초라하고 불행하게 만든 이유는
그 당시 그냥 너의 존재 자체로도 소중하다는 걸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바빴고,
아빠는 가족보다 친구와 술을 좋아했고,
언니와 오빠는 마찬가지로 어렸다.
시간이 지났다.
나는 성인이 되었다.
장미를 부러워했던 나는 이제 꽤 많이 달라졌다.
힘든 시기를 거치며 단단해졌고,
그래도 매일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나의 성장과 변화들을 보며
나 자신을 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SNS의 수많은 사람들의 피드를 보며 비교에 익숙한 삶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이제는 누구처럼 살고 싶어서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교의 시대를 살고 있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성장할 수 있지만,
비교하는 삶 자체에만 머물게 된다면 행복할 수 없다.
그 비교에서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을 걸어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
나를 더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나 또한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렇게 점차 나의 중심을 외부에서 자신으로 옮겨 갔던 것 같다.
그 방법은 하나다.
타인이 아닌 나에 대해서 더 많이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한 오늘의 미션,
나의 강점을 10개만 적어보자.
그리고 내 삶 속에서 그 강점을 언제 발휘하고 있는지도 고민해 보면 좋겠다.
내가 마음속에 굳게 새기고 다니는 말이 있다.
명품을 입지 않아도, 오천 원짜리 티셔츠를 입어도 명품 같아 보이는 사람이 되자.
그러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더 사랑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더 친절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나는 더 이쁜 말을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 나는 더 많이 성장해 나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 자체로도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