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s love?
이 그림책의 원제는 ‘What is love?’이다.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에서 번역한 ‘사랑 사랑 사랑’이란 제목이 마음에 든다. ‘ㄹ’과 ‘o’은 공명음이다. 공명음이란 발음기관의 방해 없이 부드럽고 연속적으로 공기가 흘러 만들어지는 말소리이다. 그래서인지 ‘사랑’하고 발음할 때 마치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흘러 들어온 어떤 부드러운 존재가 내 안에서 공명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한 ‘사랑’이라는 단어가 세 번이나 반복되는 이 그림책의 제목을 소리 내 읽으면 울림은 물리적 떨림이 된다. 소리만으로도 입술에 떨림을 일으키는 ‘사랑’의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이 그림책의 표지는 참 멋지다. 꽃들의 정원에서 클로즈업된 활짝 핀 꽃 세 송이 사이사이 사랑이란 단어가 배치되어 있다. 그 꽃들을 피워낸 것이 마치 사랑이란 듯 말이다. 책장을 넘기면 부드러운 태양이 빛나는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 작은 강아지와 소년이 함께 장난치며 뛰놀고 그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인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미소가 지어진다. 이미 답을 알 것 같았다. 사랑이란 무엇인지 말이다. 진리는 반복되는 사소한 현실 속에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찾아 떠나려 한다.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에 진리는 없다는 듯 말이다.
어느 날 소년은 할머니에게 사랑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할머니는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에서 소년을 꼭 안아 올리며 말한다. ‘대답하기 참 어려운걸’. 말과 달리 할머니는 소년을 꼭 안아주는 것으로 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랑은 누가 알려준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할머니는 소년에게 사랑에 대한 답을 세상에서 직접 찾아보라고 한다. 그래서 소년은 길을 떠났다.
소년이 세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소년은 수많은 사랑의 정의가 썩 마음에 와닿지 않은 모양이다. 사랑에 대해 말하는 그들이 떠나는 소년에게 ‘네가 사랑을 어떻게 알겠니’라며 안타까워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림책의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사랑에 대한 아주 길고 긴 목록을 가지고 있다는 한 늙은 시인의 모습이다.
한 자리에 앉아 오랜 세월 사랑에 대해 써 내려가고 있는 시인을 보고 있자니 마를렌 하우스 호퍼의 소설 ‘벽’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벽’은 지구상에 혼자 살아남은 한 여성의 2년여 기록을 그린 장편 소설이다. 어느 날 아침 놀러 온 산장에서 눈을 떠보니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벽 밖의 생명체는 모두 화석이 되었다. 벽 안에 남은 유일한 사람인 주인공 곁엔 개와 고양이 그리고 암소 한 마리뿐이다. 소설은 산중에 홀로 남아 생존을 위한 고된 노동에 시달리며 동물들을 보살피는 나날을 그녀의 독백만으로 따라간다. 그녀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도 곁에 남은 동물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깨닫는다. 곁에 있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만이 삶을 지탱해 주는 것임을 말이다.
“이 산속에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살아있는 한 나는 사랑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로 아무것도 찾을 수 없게 되는 날, 나는 삶을 멈출 것이다.”
“어떤 것에 대한 앎이 몸 구석구석까지 스민 뒤에야 그것을 정말로 안다고 할 수 있다.”는 그녀의 독백은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한자리에 앉아 오랜 세월 사랑의 목록을 작성했다는 시인은 대체 사랑을 뭐라 정의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역시나 소년은 시인의 말을 다 듣고 있을 시간이 없다며 지나쳐 버린다. 시인은 (어느새 청년이 된) 소년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친다. “넌 사랑을 하나도 몰라!”
소년은 청년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강아지가 반갑게 짖고 밥 짓는 냄새가 나는 집. 할머니가 정성으로 가꾼 아름다운 정원도 여전하다. 소년은 맨 발로 흙을 밟으며 말한다.
“나는 신발을 벗고 우리 집 앞뜰에 섰어요. 발가락을 구부려 흙에 단단히 파묻었어요.” 소년은 이제 자신이 발 딛고 서 있는 바로 그곳에 뿌리를 내릴 것이다.
소년은 세상을 여행하며 이런저런 사랑의 정의를 들었다. 그들은 소유에서, 사람들의 관심에서, 혹은 자신의 재능, 성취에서 사랑을 찾았다. 그들이 정의한 사랑의 중심에 있는 것들을 곱씹어본다. 사라져 버릴 것들을 붙잡고 있는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공허한가. 소년도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사랑에 대한 답을 찾았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이번에는 소년이 할머니를 꼭 안아주며 ‘네’라고 대답한다.
마지막 장의 면지는 하늘을 가득 매운 별들 아래에 개 한 마리와 장난치는 청년을 바라보는 (어느새 손자보다 몸집이 작아진) 할머니의 뒷모습을 그려놓았다. 손자에게 흘러간 할머니의 사랑은 그다음 세대에도 전해질 것이다. 갈수록 점점 더 크게 공명하는 사랑의 울림이 있는 곳, 당신은 그 가슴 떨리는 세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소설 ‘벽’의 독백으로 글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사랑보다 더 현명한 감정은 없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사람과 사랑받고 있는 사람 모두가 삶을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것만이 나은 인생을 살아갈 유일한 희망, 유일한 가능성이라는 것을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