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를 앞두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움츠러든다. 단순 개인과제를 넘어, 타인과 협력을 해야 하는 과제라면 더욱 그렇다. 목표해 둔 곳까지 마무리하지 않으면 불안이 자라나고, 사람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졸인다. 마음의 금은 보통 몸에도 드러나기 마련이라, 이 시기가 되면 생활 패턴에 큰 변화가 생겨난다. 방에만 틀어박혀 바깥으로 나오려 하지 않거나, 잠을 자는 것을 꺼리고, 식사를 거르게 된다.
보통 팀 과제에서 나의 포지션은 팀장이다. 어떻게든 팀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 쉼 없이 방법을 찾는다. 팀장도 팀원도 모두가 양질의 결과를 내기 위해 협업하는 것이 팀 과제의 목표라지만, 언제나 팀 과제는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일이 조금씩 진행되는 것에 안도하면서도 못 견디게 괴로워지곤 한다.
나의 물렁한 속살은 사람과 전혀 맞지 않다. 정말로, 나는 사람을 마주하는 것에는 지독하게도 내성이 없다.
그러니까, 가끔은 우직한 바위가 되고 싶기도 했다. 땅바닥에 박힌 채로 가만히 세상을 건너다보는 바위가 된다면, 그러면 괴로움의 손아귀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까. 걷어차여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바위가 된다면, 어떤 것도 생각할 수 없는 바위가 된다면 나는 좀 편안해질까. 그러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조금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천장에 박힌 사각의 조명을 꺼뜨렸다.
그러잖아도 사람의 품이 못 견디게 그리웠던 차였으므로.
날을 잡고 울어서, 지금 내가 몸을 담그고 있는 이 방을 온통 눈물로 가득 차게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괴로움이 다 떠내려가 버리도록.
텁텁한 방의 공기와, 햇살을 가로막은 낡은 커튼과, 줄곧 대면하고 있던 납작한 노트북, 바깥에 나가지 않아 점점 쌓여가는 쓰레기들까지, 전부 사람의 온기가 깃든 눈물 속에 떠밀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과거에 행복을 주었거나 주고 있는 물건이란 것을 알기에 날을 잡고 눈물을 쏟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행복이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저 망연히 앉은 채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속살은 어디에 속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