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악몽

by 이지원 Mar 30. 2025


 끔찍하고 구역질 나는, 무어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악취가 나는 하루군요. 어제는 사람의 머리를 물어뜯는 꿈을 꾸었답니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검은 머리카락을 등으로 늘어뜨린 여자가 입꼬리를 잔뜩 끌어올리고 나를 비웃었어요. 그리고 무릎을 꿇어앉은 채로 내게 볼펜 몇 자루를 던졌습니다. 역시나 반들반들하고 검은 볼펜이더군요. 내가 자주 쓰던 그것.


 처음에 던진 볼펜은 바닥에 떨어졌고, 두 번째로 던진 볼펜은 내 무릎에 박혔으며, 세 번째로 던진 볼펜은 날카로운 통증을 안기며 뺨에 박혔습니다. 마지막으로 던진 볼펜이 또 한 번 얼굴을 향하려는 순간 나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 여자의 머리를 물어뜯었습니다. 옷 속인지, 어딘가에 숨겨놓았던 볼펜들이 바닥을 새카맣게 뒤덮으며 우수수 쏟아졌고, 살려달라며 외치는 소리가 귓속을 헤집어 놓았어요. 순간 지난번 꿈속에서 나왔던, 내가 어둠 속에서 뺨을 때렸던 여자와 꼭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손을 놓으려 했지만 이번에도 몸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번에는 마음속에서 끓어 넘치는 분노가 죄책감을 이긴 모양이었어요. 나를 비웃던 입꼬리가, 완전히 공포감만을 담고 있던 것을 보았을 때, 정확히 내 얼굴을 조준하여 볼펜을 던지던 그 손끝이 겁을 집어먹고 부르르 떨리던 것을 보았을 때, 나는 모종의 해방감마저 느끼고 말았습니다.


한때 함께 해방되길 바랐었던 여자가 또 한 번 내 앞에서 완벽히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느끼려 해도 금세 생각의 머리가 꺾여 마비되더군요. 처음부터 그렇게 짜인 것처럼, 그저 그 흐름에 맞추어 떠밀리는 형태가 되어 있었어요. 꿈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이. 

하얀 벽의 한 면을 퀴퀴한 꽃이 뒤덮어도 무언가를 느끼지 못했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담아두었던 무언가가, 목구멍 너머로 삼켜 내어 뱃속 깊이 잠들도록 해 두었던 것이 한 번에 터져 나왔습니다. 내 뱃속을 허물고, 내 입술을 허물고, 모든 것을 무너뜨린 채로 그것은 울컥울컥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겁에 질린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나 자신도, 진득하게 녹아내려 형체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끔찍한 꿈은 거기서 끝이 났답니다.


나는 아마, 그 안에서 울고 있었던 것도 같아요. 사람의 모양을 잃은, 진득하고 검은 액체가 된 채로.



작가의 이전글 질식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