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것이 생겼습니다. 12월로 접어들면 감기의 계절입니다. 내가 걸리는 것쯤이야 문제 될 게 없지만 아이가 열감기에 걸리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들은 보통 밤에 열이 나는데, 브라운(BRAUN) 체온계를 귀에 대고 체온을 재는 3초는 긴장 그 자체입니다. '삑'하는 소리와 함께 빨간색 디스플레이가 뜬다면 올스톱입니다.
직장 생활하면 아이의 열감기로부터 면죄부를 받습니다. 새벽에 잠을 좀 설치는 것 빼고, 출근하는 동시에 몸에서도 멀어지고 걱정에서도 멀어집니다. 아내와 장모님, 두 여인은 작전을 세워서 병원 예약을 합니다. 그리고 어린이집 등원을 못할 가능성에 대한 시나리오를 대비해야 합니다. 새벽에 출근해서 저녁 늦게서야 돌아오는 출퇴근은 열외 사유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육아휴직하면 모두 자신의 일입니다. 열을 내리려고 먹이는 해열제 종류도 알아야 합니다. 4시간 간격을 유지하면서 교차로 먹일 수 있는 해열제는 아세트아미노펜과 이부프로펜입니다. 보통 빨간 물약(아세트아미노펜)과 파란 물약(이부프로펜)으로 통합니다. 빨간 물약은 열을 내리는 해열진통제이고 파란 물약은 염증에 효과가 있는 해열제입니다. 두 물약으로 작은 임상 실험이 시작됩니다. 빨간 물약을 먹이고 체온의 변화와 파란 물약을 먹이고 체온의 변화를 경험적으로 몸에 익히고 나면, 아내에게 약사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아내는 무엇을 먹여야 하는지 이 남자에게 물어봅니다.
소아과에 가는 일도 육아휴직자의 몫입니다. 주중 오전에 소아과에 처음 간다면, 마음 단단히 먹길 바랍니다. 감기와 독감이 유행일 때 소아과는 1시간이면 선방입니다. 1시간을 기다려서 겨우 들어간 진료실에서 독감이 유행이니 독감 검사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이 코를 찌르고 어렵게 들어온 진료실을 3분도 안되어 나갑니다. 불길합니다. 다시 기다림의 시작입니다. 결과를 보기 위해 전광판의 아이 이름은 다시 뒷순번입니다. 이렇게 허무할 수가.
1시간이 넘게 흘렀습니다. 결과는 음성입니다. 다행이지만 아이와 부모의 체력은 이미 방전입니다. 이래저래 병원 다녀오면 오전이 끝납니다. 약을 먹이려면 또 점심을 먹여야 하고요. 약 먹이는 건 또 어지간히 곤욕입니다. 울고 불고, 끈적이는 물약 흘리고, 흘리면 다시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재우기까지.
아이들 재우고 고요한 저녁에 하는 '그 무엇'도 올스톱입니다. 모두에게 그 만의 무엇이 있을 것입니다. 이 남자에게 그 무엇은 글쓰기입니다. 글쓰기도 체력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할 여력은 마음이 온전해야 하고 마음이 "짜증"으로 엉망이면 도저히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추적 관찰한 결과, 마음의 온전함은 100퍼센트 체력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체력이 고갈되어 마음이 고장 나서 불똥이 아이에게 튀면, 그날 글쓰기는 공친 것입니다. 열이면 열입니다. 진행하던 작업도 스톱, 아이의 열이 하루에서 이틀 이어지면 아이의 등원도 스톱, 이 남자의 일상까지 올스톱입니다.
이럴 때마다 이 남자는 '술'대신 '글'로 풀었습니다. 바로 책상에 앉아서 그 무엇을 바로 할 수는 없었지만, 올스톱될 때마다 마음 하나가 배달되었습니다. 체력의 고갈이 주는 작은 선물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받을 수 있는 작은 선물입니다. '툭' 던지고 홀연히 떠난 뒤에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씩 찬찬히 살펴서 옮긴 것이 《육아 휴직하는 남자》입니다.(브런치북 가제)
몇 번 감정 보따리를 펴보면 그곳에는 항상 마음이 있었고 그 마음은 매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아이가 아픈 상황은 '현상'이고 그저 주어진 상황입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반응'입니다. 현상에 대한 반응인 것이죠. 예컨대 언제는 두 원이 그렇게 예뻐 보이다가도 조금 힘들라치면 같은 모습의 두 원이 예뻐 보이지 않습니다. 두 원은 그대로인데 부모의 마음이 현상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마음은 변덕스럽습니다.
분명히 마음이란 것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면 가슴팍 그 어디쯤이라고 두리뭉실하게 답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마음이 실체하지 않기 때문이니다.
마음은 그런 것입니다. 아이가 밥 잘 먹으면 좋고, 떼 쓰면 싫고, 다치면 슬프고, 사랑 표현에 감동합니다. 아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나의 마음입니다. 그저 우리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마음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알아차리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육아휴직을 했고 그 육아휴직이 끝을 향할 무렵에서야 알아챈 마음이란 것에 대한 마음은 이런 모습 없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