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12월입니다. 어른들은 한해의 마지막이라며 아쉬워하지만 아이들은 '형아'가 된다고 좋아합니다. 어른과 아이의 큰 차이라면 차이입니다. 한 가지 더, 예전만큼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지 않아서 아쉽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납니다. 산타클로스 선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올해도 어김없이 큰원에게 12월의 공식 질문을 받았습니다.
"아빠? 산타할아버지 있어?"
언제는 여섯 살 아이가 다 큰 것 같다가도 이럴 때면 아직 애입니다. 순수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는 마음도 듭니다. 이 남자는 아이가 가능한 산타의 존재를 오랫동안 믿길 바랍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얼마나 생각이 말랑말랑할 때입니까? 그런데 산타의 존재를 부정해 버리면 그 말랑말랑한 생각은 이내 멈춰 설 것입니다. 산타의 나이는 몇 살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 나라 사람인지? 산타는 몇 명인지? 비행기를 타고 왔는지? 설마 루돌프를 타고 오진 않았겠지? 산타가 없다고 믿는 순간, 별의별 생각은 모두 쓸모없게 됩니다. 이건 너무나 아쉽습니다. 한창 생각이 날아다녀야 하잖아요.
어른들은 콘크리트처럼 생각을 점점 굳혀갑니다. 자기의 생각은 옳고 타인의 생각은 보려고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안 듣는 것 같아도 다 듣습니다. 아내와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면 큰원은 불쑥 대화에 끼어들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다 듣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른은 말 조심해야 합니다.
큰원 몰래 크리스마스 선물을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때도 어린이집 선생님과 함께 말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디랭귀지로 소통합니다. 누구인진 모르지만 산타 대역이 대신 나눠 줄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서도 말 조심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은근슬쩍 받고 싶은 선물을 알아내야 하니까요. 감사하게도(?) 종이 접기에 푹 빠져 있는 큰원은 종이접기 책을 원했습니다. 책 선물을 받고 싶다고 하니 얼마나 예쁩니까. 한두 번 가지고 놀면 재미없고 비싼 플라스틱 장난감보다 백 배 훌륭합니다.
비밀의 공간에 선물을 두었다고 선생님과 사인을 주고받았는데, 갑자기 선생님은 이 남자에게 할 말이 있다고 다가 왔습니다. 사인 미스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죠. 말인즉슨, 산타가 되어줄 아빠를 찾고 있다는 겁니다. 산타할아버지 대역이 내가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선생님의 '픽'은 일리가 있습니다. 육아휴직하고 있는 아빠니까요. 바로 대답하진 못하고 키즈노트에 '나다 싶어서' 지원했습니다. 군대 다녀오면 다 압니다. 그 '나다' 싶은 것을요.
큰원과 곧 또 보겠지만 그렇지 않은 듯이 인사하고 차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어린이집으로 갔습니다. 또 다른 아빠 산타와 어색한 인사를 하고 주섬주섬 산타 옷과 모자 선글라스를 썼습니다. 유러피안 스타일의 흰색 수염 대신 흰색 마스크로 대신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알아차릴 것 같은 어설픈 산타입니다. 두 가지 걱정이 들더군요.
한 가지는 가짜 산타라며 굴욕을 당할 자신이 걱정되었고, 다른 한 가지는 아이들에게 "세상에 산타 할아버지는 없는 것이로구나"라는 절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긴장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큰원이 있는 반으로 갔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태연한 척 인사하고 아이들 이름 불러주면서 선물을 나누어 줬습니다. 중간에 어떤 아이가 "큰원 아빠 아니냐"며 의심도 샀지만 선생님들의 주위 분산시키기 스킬로 위기를 모면하고 무사히 마쳤습니다. 의혹은 남았지만 아이들에게 절망을 주진 않았으니 반은 성공입니다.
정말이지, 북 치고 장구치고 꽹과리에 징까지 친 크리스마스 시즌입니다. 아이가 받고 싶은 선물을 알아내고 몰래 사서 어린이집에 가져다 주고 다시 그걸 산타로 변장해서 직접 나누어 주고 하원하면서 "이게 무엇이냐고" 모르는 척 시치미 뗐습니다. 그리고 누가 준 선물이냐고 묻고 정말 산타가 준 것이냐고, 함께 신기해 했습니다. 사(四)물놀이로는 부족합니다. 팔(八)물놀이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자 육아휴직하니까 산타 할아버지도 되어보네요. 이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습니까. 아주 나중에 아이가 이 글을 읽을 수 있을 때가 되면 산타의 진실도 알 나이일 테죠. 그때까진 아이의 상상력이 저 멀찌감치 훨훨 날아갈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이 날을 기억이나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성장했고 컸다는 것이겠죠. 지금 아이의 순수함에 감사하고 이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할 이유입니다.
※이번 주 연재 일을 늦춘 이유는 어설픈 산타 후기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점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