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머신러너 Apr 27. 2024

Work  Play  Love(4) - Love+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Love+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하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한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 라이너 쿤체 <두 사람> [1]


앞으로도 나로서는 시는 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의 영역으로 내까짓게 발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죠. 몇몇 정 많은 분들이 시를 한 편 소개해 주면 느껴보고 싶은 마음은 조금 생겼습니다. 장족의 발전입니다. 시 쓰는 재주는 없어도 선물 받은 시로 글쓰기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그 첫 시도입니다.


아내와 나는 한 배를 탔습니다. 경제적으로나 경험적으로 그리 넉넉하지 않은 우리 배는 돛단배입니다. 작은 나무 노를 저으며 돛단배 항해는 시작되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다른 부류'의 사람입니다. 내가 '남중·남고·공대·군대·현대'라면 아내는 '여고·여대·유아교육'입니다. 내가 운명적 공대생인 것처럼 아내는 운명적 문과생입니다. 내가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라면 아내는 이타적이고 틈을 인정하는 여유있는 사람입니다.


내 눈에는 '확률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아내는 가끔 '무던하게' 할 때가 있습니다. 첫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공무원 임용고시'를 도전하는 것이 나에게는 확률적으로 불가능하게 보였고 아내는 '무던하게' 큰 스트레스 없이 해 나갔던 것 같습니다.

출산하자마자 몸조리할 틈도 없이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고 아내는 백팩 메고 독서실로 갔습니다. 주중에는 친정 부모님께서 봐주시고 주말에는 제가 육아를 전담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육아에서 아예 배제되었는가 하면 그건 아닙니다. 자주 깨는 아이와 함께 자고 부모님이 바쁘실 때는 꼼짝없이 아내가 육아를 해야 했습니다.

밤에 잠도 못 자고 불규칙하게 공부해서는 경쟁시험에서 '잘할 수 있을까'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만약 나라면 온전히 집중해서 공부해도 사실 합격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아무튼 갈 수 있는 날엔 독서실 가고 할 수 없는 날엔 아이를 돌봤습니다.


"이때가 아내는 별을 알고 나는 폭풍을 알았던 때인 것 같습니다."


아내는 '선생님'을 꿈꾸는 별을 알았고 저는 폭풍으로부터 '가정'을 지키기 위해 폭풍을 알아 가고 있던 때입니다. 폭풍을 알아가는 것이지 폭풍을 이기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이를 보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확실한 것은 일하는 것이 아이 보는 것보다는 쉽다는 생각입니다. 일을 낮게 보는 것은 단연코 아닙니다. 그만큼 육아가 엄청난 중노동인 것을 배웠습니다. "나도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몇 번은 공부하고 온 아내에게 짜증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몸이 힘드니 좋은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하루하루 아내는 별을 알아가고 나는 폭풍을 알아갔습니다.


아내는 합격했습니다. 여러 생각이 듭니다. 도전한 아내가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혼자 힘으로 끝낸 아내가 가엽기도 하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내는 이것이 혼자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가족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잘 알고 표현합니다.


"아내는 별 대신 폭풍을 알아가고 나는 폭풍 대신 별을 알아 가고 있습니다."


'기브엔테익'처럼 너 다음엔 나 식의 유치함 없이 우리는 자연스럽게 별과 폭풍을 바꿔서 알아가고 있습니다. 나에게 '별이 확실히 무엇이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말 그대로 글쓰기를 '알아 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글쓰기를 잘할 때까지 해보자는 것이 현재 마음 가짐입니다. '좋아하긴 했지만 잘할 수는 없구나' 혹은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네'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시간이 증명해 주겠죠. 그 시간까지 아내는 폭풍을 알아갈 겁니다.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한 배를 탔다는 것은 어쩌면 '별과 폭풍'을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모두 별을 바라보는 것과 모두 폭풍에 막아서는 '파란색' 광활하고 드넓은 바다로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1] (옮김) 라이너 쿤체 "두 사람" 시를 <시로 납치하다>에서 류시화가 옮김


*05~09화: 근면한 글쓰기
*10~15화: 채집하는 글쓰기
*16화~   : 고립되어 글쓰기


*지난 19화 Work Play Love에서 이제은 작가님과 나름의 '티키타가 댓글'이 오갔습니다. 한 편의 시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라이너 쿤체의 <두 사람>입니다. 음성을 상상해 보자면 “아! 갑자기 생각났어요. 읽어 보시면 좋아하실 거예요. 이거예요”


이전 19화 Work  Play  Love(3) - Love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