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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Jun 04. 2024

감사하며 글쓰기(2) - 좋은 리더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하지 마세요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일하지 마세요" -찰리멍거 [1]


대퇴사의 시대입니다. 신입사원 시절을 떠올려보면 회사의 대문을 열어줄 때까지 열심히도 두드렸습니다. 그 대문은 어찌나 높고 두꺼운지 안이 보이진 않습니다. 그저 안에는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있을까 동경할 뿐입니다. 운 좋게도 그 대문 안에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내가 운이라고 하는 것은 겸손을 떠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진실로 8할은 운의 영역이라고 믿습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면접으로 한 사람을 이해해 봤자 얼마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실력이라야 종이 한 장 차이를 저울질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집이 그렇듯이 대문이 가장 화려하고 멋있습니다. 막상 들어오면 사람 사는 집이 거기서 거기듯이 환상은 금방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차츰차츰 떠나는 친구들이 생깁니다.

함께 입사했던 친구들이 떠날 때면 복잡 미묘한 감정이 들기는 했지만 나는 아직 이 대문을 박차고 떠날 생각은 안 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떠나는 이들에게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 친구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리더를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결국엔 일이란 것도 사람과의 관계이고 더 깊게 들어가면 리더와의 관계입니다.


내가 떠나지 않은 이유도 이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는 회사를 떠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리더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2]에 이어 내가 인복이 많은 또 다른 이유는 감사하게도 ‘좋은 리더’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S팀장은 좋은 리더입니다. 처음 신입사원으로 그를 만났고 10년이 넘는 동안 그의 포지션은 바뀌었어도 그는 여전히 나의 리더입니다.


그때도 좋은 리더였고 시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여전히 처음 본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는 한 번도 '내 말대로 해라' 혹은 '시키는 대로 해라' 식으로 일하지 않았습니다. 행인의 코트를 벗기기 위해 태풍을 휘몰아치기보다는 따듯한 햇볕으로 행인 스스로 코트를 벗기를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양단에서 그는 완벽하게 소프트 파워 극단에 있는 사람입니다. 특유한 그만의 소프트 파워 리더십에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를 따르고 싶었습니다. [3] 애정, 신의, 신뢰, 믿음, 존경, 로열티와 같은 감정은 누가 시킨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나와야만 신뢰하고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그를 신뢰하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따랐습니다. 내 마음이 그러라고 시켰습니다. 아마도 그가 우리를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그의 본모습임에는 세월이 검증해 주었습니다.


소프트 파워는 자율성과 아주 밀접하게 닿아 있습니다. 내게 자율성은 일을 하든 누구를 만나든 공부를 하든 여행을 하든 운동을 하든 창작을 하든 사랑을 하든 모든 것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핵심 가치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나는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수동적으로 굳어버리는 느낌입니다. 일에서 자율성을 잃어버렸다면 나는 도무지 '머신을 러닝 할'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했을 겁니다. 자율성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 걸 잘 알기에 깨트리지 않기 위해 정말 소중히 다루었습니다. 누가 시키기 전에 내가 나서서 자율성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까지 자율성이 지켜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도 나를 신뢰했고 나도 그를 신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S팀장은 내게 과분한 자율성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의 생각과 다르게 내가 터무니없는 것을 하겠다고 해도 항상 '한번 해보세요'라고 합니다. 브레이크가 필요해 보이는 나에게 S팀장은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아마도 '다치지 않고만 돌아오시게'라는 심정으로 기다려 준 것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나 스스로 알아차리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나는 말 그대로 날아다녔습니다. 떨어지더라도 '소프트'한 에어백을 믿고 누가 뭐래도 정말 멀리까리 날아올랐습니다. 나름대로 나는 꽤나 멋진 일들을 해냈다고 자부합니다. 내가 자부하는 건 누구보다 뛰어나거나 누구보다 잘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학생 신분으로 대문을 바라보던 그때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이기 때문에 멋진 일이라는 말입니다.

S팀장에게 여러모로 참 많이 배웠습니다. 그와 하는 '엔지니어링 디스커션'은 언제나 즐거웠고 내가 스스로 만족할만한 멋진 일들은 모두 그와 함께하는 엔지니어링 디스커션 덕분입니다. 그는 나에게 언제나 비전을 제시해 주었고 나는 그의 그늘막 아래에서 성장했습니다. 철저히 아래에 있는 위험은 쳐다보지 않았고 위만 바로 보고 날아올랐습니다.

일만 배운 것이 아닙니다. 나는 그의 언행을 따라 합니다. 그는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합니다. 꽤 나이 차이가 있는 나에게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공손하게 존댓말을 합니다. 존중받는 느낌을 좋아서 나도 그처럼 누구에게나 존댓말을 쓰고 있습니다. 후배인 나에게 존댓말을 하니 나도 자연스럽게 아래 후배에게 존댓말을 합니다. 글에서도 존댓말을 하는 것이 좋은 것도 무의식적으로 그에게서 배운 나의 스타일이 투영됐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존경하는 사람과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도 그와 같은 리더가 되고 싶습니다. 그곳이 어디가 되었건 리더가 된다면 나는 'S팀장의 바탕에 나의 색을 입힌다'는 생각입니다. 늘 어려운 판단의 순간에 그의 방향과 태도를 잘 기억해 두고 있습니다. 그를 그대로 따라 하기는 어려워도 흉내라도 낸다면 좋은 리더에 한 발짝 가까워진다는 확신입니다.




[1] 찰리멍거 "비즈니스 규칙 세 가지" CNBC Make it 기고문

[2] 머신러너 <운명적 공대생의 글쓰기, 26화>

[3] (영상) 조지프 나이 "EBS 위대한 수업: 누가 리더인가"


*05~09화:    근면하게 글쓰기
*10~15화:    채집하는 글쓰기
*16화~25화: 고립되어 글쓰기
*26화~      :  감사하며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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