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분들이 제 글에 가치를 부여해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독자를 바라보고 '감사하며 글쓰기'하자는 나의 고백을 전합니다."
서랍 깊숙한 곳에 간직한 메모며 글귀를 여러분에게 전하자고 마음먹고 한 가지 다짐한 것은 하나의 글에 적어도 하나의 '메시지'를 담자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가 올바르면 '가치'란 것이 진하게 물들어 있는 글이 된다는 믿음에서 입니다. 가치 있는 글을 써서 독자분들에게 꾸준히 전하는 '근면한 마을의 집배원'[1]이 되자고 다짐한 후로─정말 감사하게도─많은 독자분들께서 찾아와 주셨습니다.
독자분들과 만나는 이 브런치는 '정겨운 시골 마을' 같습니다. 시골 마을은 아담해서 반경 몇 킬로 안에 있는 모든 동네 이웃과 인사합니다. 시골에서 지나가다 사람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습니다. 인사와 함께 별 시답지도 않은 이야기를 꽤나 길게 그리고 진지하게 이어갑니다. 도시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입니다. 브런치에서도 많은 독자분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으시고 꼭 인사하고 관심을 보여 주십니다. 브런치 마을에선 모든 분들이 참 정이 많습니다.
또 시골에서 처럼 브런치에서도 서로 품앗이합니다. 작가가 되기도 하고 독자가 되기도 하는 일종에 ‘디지털 품앗이’입니다. 이곳에서 이 품앗이가 필요한 것은 글쓰기란 작업이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창작하기보단 농사에 가까운 한없이 고되고 피지컬 한 업이기 때문입니다. 브런치안은 이것을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통해서 그런지 서로 인사하고 돕고 안부를 묻습니다. 순수하게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서도 아마 ‘아마추어 온라인 작가분들 참 고생들 하시네‘라고 알아봐 주시는 것 같습니다.
이 정 많은 브런치 마을에서 여러 독자분들과 만났습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사해 주시고 공감해 주시고 또 응원해 주시는 참 고마운 분들입니다. "정말 공감해요"와 같은 메시지로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고군분투하는 나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고 '토닥토닥'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하나하나 참 소중한 관심과 배려 속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 글에 가치가 있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독자분들이 글에 가치를 부여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2]* 내 글에 가치가 있기 때문에 독자분들이 오셨다고 아주 큰 착각을 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닭보다 달걀이 먼저'라는 논리입니다. 에드워드 윌슨의 표현대로,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만들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매체에 불과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알이 닭을 낳는다’는 표현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글에 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쓰기 관점에서 보면 글도 독자가 그 가치를 인정해 줄 때 비로소 의미를 갖습니다. 글에 가치가 있어서 독자가 보는 게 아니라 독자가 글에 가치를 부여해서 글이 가치롭게 되는 것입니다.
한분 한분 내 글에 잠시라도 머무시는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글에 가치가 물들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담고 있다고 해서도 글에 가치가 부여되지 않습니다.
오직 독자분들에게 가치가 있을 때 비로소 그 글에 가치가 부여되고 가치가 깃들게 됩니다. 독자의 시선이야말로 글을 숨 쉬게 합니다. '운명적 공대생의 글쓰기'의 간명한 기준 하나가 생겼습니다. 독자를 바라보고 글쓰기 합니다. 독자를 바라본다고 해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그들의 입맛에 맞춘 글쓰기를 하는 것은 단연코 아닙니다.
그것이야 말로 가장 가치롭지 않은 글일 것입니다. 그보다는 우선 그래도 명색에 작가지망생으로서 생각은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싶습니다. 공상 혹은 망상일지라도 자유로운 생각이 우선되어야만 쓰기 위해서 쓰지 않고 쓸 만한 생각을 캐치해서 독자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 것이 하나의 독자를 바라보고 쓰는 것입니다.
독자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독자를 바라보고 쓰는 것 중에 하나입니다. 어렵게 발걸음 한 독자에게 그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작은 가치라도 담아드리고 싶은 마음을 늘 내 가슴 한켠에 담아둡니다.
누군가 나의 이름과 나의 글을 불러주었을 때 나의 글에 가치라는 향기를 머금은 꽃이 됩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그 무엇인지는 결국 당신이 정해주는 것입니다. 독자 모든 분의 시선을 잊지 않고 간직하겠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춘추 <꽃> [3]
[2] (강의) 래리 맥에너니 "리더십 랩: 효과적으로 글쓰기 기술(시카고 대학교)"**
*05~09화: 근면하게 글쓰기
*10~15화: 채집하는 글쓰기
*16화~25화: 고립되어 글쓰기
*26화~ : 감사하며 글쓰기
*독자 바라보는 글쓰기의 모티브는 빙산님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항상 제게 많은 가르침 주시고 응원해 주시는 빙산님께 늘 감사할 뿐입니다. 이번 '감사하며 글쓰기 - 독자에게' 글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빙산님의 도움 덕분입니다. 참고문헌 [2]를 빙산님께서 제공해 주셨습니다.
**[2] 강의 내용 일부분을 발췌해서 의역했습니다.
여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글은 명확해야 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를 지배하는 규칙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실 그것들은 규칙이 아닙니다.
물론 여러분의 글은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명확성보다 훨씬 더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제부터 여러분의 글은 가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명확하지만 쓸모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체계적이지만 쓸모없다면 역시 소용없습니다. 설득력이 있어도 쓸모가 없으면 무의미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데 "제 아이디어에 가치가 없으면 어쩌죠?"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가치가 여기에 있을 리 없습니다. 가치는 독자에게 있습니다.
중요한 질문은 이 특정 독자 그룹이 '그 글을 가치 있게 여기는가'입니다. 그래서 내용 자체보다는 독자에 관한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어떤 독자 그룹은 엄청나게 유용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그룹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글을 상상할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죠.
가끔 박사과정 학생들이 제 사무실에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교수님, 저 이 논문 꼭 승인되어야 해요. 승인에 대한 엄청난 압박을 받고 있어요. 제발 승인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면 전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래, 어떤 저널에 투고할 건데?" 그러면 그들은 저를 쳐다보며 말합니다. "그게 뭐가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그들은 글이 명확해야 하고, 체계적이어야 하며, 설득력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글 자체에 내재되어 있거나, 누구나 명확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착각이에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치입니다. 가치는 독자에게 있습니다. 글 자체에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이 독자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글쓰기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이것이 여러분이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규칙이 지배하는 형식적인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이제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독자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일반적인 독자가 아니라, 구체적인 독자 말입니다. 만약 표준화된 시험에서 일반적인 독자를 위해 글을 써야 했던 제도 속에서 자랐다면 참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수능과 같은 시험 같은 데서 말이죠. 그건 재앙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독자들 간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도록 구체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이죠.
우리는 독자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고,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이것이 글쓰기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표준화된 시험이라는 기괴한 세계를 제외하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