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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신러너 Jun 11. 2024

감사하며 글쓰기(4) - 좋은 스승1

스펀지가 되어 그의 사고 체계를 닮고 싶었다



"나에게는 다행히 올바른 영웅들이 있었다. 당신의 영웅이 누구인지 말해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이 될지 말해 주겠다."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자질은 당신이 조금만 실천하면 당신의 자질로 만들 수 있고, 꾸준히 실천하면 습관이 된다." -워런 버핏 [1]


어린 시절에서부터 누구나 많은 스승을 만납니다. 사회로 나오기 전까지 '학교'라는 나름대로 안전한 울타리에서 '학생'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스승이자 마지막 스승은 대학원 지도 교수 유홍희 교수님입니다. 교수님은 내겐 엔지니어로서 변하지 않을 롤모델이기도 합니다. 내가 시뮬레이션 엔지니어로 커리어를 마감하는 날까지도 이것은 '거의 확실하게 말하건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그만큼 직업인으로서 엔지니어가 된 이후 지금까지도 가장 큰 영향을 준 스승입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가졌던 교수님과 면담을 기억합니다. 자세한 면담 내용이 기억에 남진 않지만 짧은 면담이 끝나고 교수실을 나오면서 또렷한 나의 느낌은 '이분에게 배우고 싶다'입니다. 그때 교수님의 '차도남'적 매력에 이끌렸던 것 같습니다. 유홍희 교수님은 학생과 가깝게 혹은 터울 없이 지내시는 분은 아닙니다. 거의 그 정반대 편에 있는 비즈니스적 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내게도 존댓말과 '누구누구 씨'라는 호칭을 쓰며 말씀하십니다.

이런 그의 차도남적 매력은 관계로 인한 에너지 소모 없이 오로지 '공학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지도교수님에게 관계로서 맹목적이거나 무엇을 위해 잘 보이려고 하지 않고 내가 그저 스펀지가 되어 그의 사고 체계를 닮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의 전공 분야인 진동학·동역학─이름만으로도 너무 기계 공학스러운─분야 대가의 사고 체계는 너무나도 완벽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마치 이오니아의 마법사(Ionian Enchantment)*처럼 이성과 논리로 철저히 무장되어 자연법칙을 질서 정연하게 조립하는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반면에 그와 달리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는 이미지를 늘 가지고 있습니다. 단시간에 빠르게 많은 문제를 맞혀야 하는 학교 시험이 그것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나 스스로에 대한 한계선을 긋고 '여기까지만 해도 돼'라고 자기합리화했습니다. 이 한계의 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기존에 해왔던 것에서 전혀 다른 차원의 시도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의 지도는 학부에서 내가 조악하게 버텨왔던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엉성한 그물망과 같은 공부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첫 학기가 시작하기 전 겨울 방학에 미리 연구실로 출근했습니다. 내가 받은 첫 미션은 'Dynamics' [2]라는 원서의 '모든' 공학 문제를 푸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나는 '원서'를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며 '모든' 문제를 푸는 것은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대학 학부 수업에서도 그것이 무리라는 것을 알고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대략 스물에서 서른 문제를 '찍어주고' 그중에서 비슷한 문제를 시험에 출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두 달간 원서의 모든 공학 문제를 풀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하고 그저 '유교수님의 사고 체계를 닮고 싶다'는 목표로 첫 미션을 시작했습니다.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려서야 마무리했지만 나의 한계를 끌어올리는 확실한 방법을 배웠습니다. 시야와 한계를 넓히게 되었습니다. 나는 고작 한 권을 독파했을 뿐이지만 벽을 느낄 만큼 우수한 공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전공 서적의 모든 문제를 풀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아마도 일류는 대부분이 생각조차 하지 않은 못한 그 한계를 처참히 부수고 이뤄내는 사람일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단연 일류입니다. 이런 일류는 모든 문제를 풀듯이 모든 것을 다루기 때문에 그의 사고 체계는 마치 촘촘한 그물망 같았습니다. 머릿속에 빈틈없이 모든 것이 담아내어 무엇하나 빠져나올 틈을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런 그물망은 그저 천재니까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문제 법칙'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 똑똑하지 않은 나도 남들보다 두 배 혹은 세 배 더 많은 시간을 쓰면 어영부영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이때부터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노력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미션을 주면 나는 무엇이든 배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교수님의 제자로서 ‘슈퍼 하드 트레이닝’ 수련이 시작되었습니다.




[1] (기사) 워런버핏 "워런 버핏의 오피스 아워에서 배우는 5가지 교훈"

[2] Kane, T.R. & Levinson, D. A., Dynamics: Theory and Application of Kane's Method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 고대 이오니아 지역에서 시작된 철학적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이오니아 철학자들은 자연 현상을 이성과 논리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마법'처럼 놀라운 발견과 이해를 가져왔고 이곳에서 활동한 철학자들은 서양 과학과 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05~09화:    근면하게 글쓰기
*10~15화:    채집하는 글쓰기
*16화~25화: 고립되어 글쓰기
*26화~      :  감사하며 글쓰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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