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 중 한 명이라도 단골손님이 된다면 확실히 마음에 들도록 하자
작가를 꿈꾼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아직 이른 감이 있습니다. 대신 작가지망생은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습니다. 창작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진짜 작가분에게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지망생이니까 조금 못해도 그러려니 하고 다들 넘어가 주시겠죠.
제게 작가지망생의 이미지는 신선칸에 진열된 프레쉬한 채소와 같이 싱그럽습니다. 직업연구원 11년 차니까 신입티를 벗은 지는 오래됐고 스스로에게서 프레쉬한 무엇을 찾기에는 누가 봐도 무리가 있습니다. 이런 일상에서 스스로 나는 이제 작가지망생이다 선언한 것은 큰 변화입니다. 케케묵은 집안의 공기가 돋는 햇볕이 드는 날 프레쉬한 공기로 바뀌는 상쾌함과도 같습니다.
조금은 찬 기운도 있지만 내 몸속 깊은 곳까지 들어와서 구석구석 묵은 때를 벗겨내는 느낌입니다. 실제로도 새로운 무엇을 할 때,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창작을 할 때 주변정리를 해야 시작할 수 있는 성격입니다. 나의 시야에 무엇이라도 성가신 것이 있으면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정리하고 나면 이제야 자 이제 한 번 해볼까 어깨를 가볍게 툭툭 털고 집중하여 쓰기 시작합니다.
혼자 다이어리 쓰는 것과 작가의 글쓰기의 가장 큰 차이는 독자입니다. 다이어리는 100% 확실한 셀프독자가 있습니다. 온전히 나를 위한 글쓰기이자 일기입니다. 그렇지만 작가는 불특정 다수를 위한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셀프독자는 확실한 단골손님입니다. 크게 신경 안 써도 어차피 오게 되어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를─작가지망생에겐 독자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설렘입니다─ 단골손님으로 만드는 것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중에 확실히 후자에 가깝습니다.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꾸준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로부터 창출되는 가치 또한 자연히 높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게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모두를 단골손님으로 만들 수는 없고 열 분 중에 단 한 분이라도 '볼만하네' 하고 또 와주면 이 작은 가게는 운영이 될 것입니다. 나머지, 열 명 중 아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제 이 한 명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을까.
다짐한 것은 근면한 마을의 집배원이 되자.
그리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한 명의 단골손님에게 가슴이 시린 날에는 뜨끈한 우동과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에는 동치미 국수와 같은 시원한 메시지를 단골손님에게 전하자는 것입니다. 열에 아홉은 어쩔 수 없어도 단 한 사람이라도 확실히 마음에 들도록 하자는 것이 원칙입니다.
근면한 마을에 살면서 단골손님들께 우편을 전하는 집배원이 되는 것이 경영 철학입니다. 더 많은 독자로 확산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단골독자가 되었으면 이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아야 합니다. 잠시 잊고 살다가도 ‘음 궁금하네, 한 번 읽고 싶네’ 란 마음으로 들렀을 때, 전해진 메시지에서 처음에 독자가 느꼈던 그 맛과 향을 그대로 내야 합니다. 그 점이 전해졌다면 그건 진심이 통한 걸 겁니다.
이런 경영 철학을 가지고 단골손님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합니다. 쓰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배움입니다. 공학에서도 확실히 배운 것이 아웃풋 이전에 인풋입니다. 창업자의 마음으로 빚은 창작물을 독자에게 건네려면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이 부분에서 단골손님에게 건넨다는 것보다 나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주려고만 해서는 배움을 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부단히 무언가를 배우고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바로 그 배우고 노력한 것이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된다." -히로나카 헤이스케 [1]
히로나카 선생의 말대로 배움은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이니 이 것을 누군가를 위해서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나누는 것은 기쁨일 것입니다. 창작 비스무리한 것이라도 하려면 먼저 배워야 합니다.
[1] 학문의 즐거움 - 히로나카 헤이스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