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선생님은, 공부를 차암 잘 했제”
옆집 할아버지가 타오르는 장작을 불쏘시개로 후비며 말씀하셨다.
그 순간 그 애와 나는 국을 고우느라 간이식 스텐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계시는 할아버지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겨울의 찬 기운이 이따금 머리와 목덜미를 훑어댔지만 따끈한 장작불 앞에 가까이 붙기만 하면 제아무리 살을 에는 추위라도 별것 아닌 거 같이 느껴졌다.
“전국에서도 젤로 잘하는 택이었제, 서울대 입학생 나온다고 난리라 안 했나”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선생님이란 우리가 6학년이 되면서 그 애의 담임 선생님이 된 정의섭 선생님을 이르는 거였다. 6학년이 되면서 우리는 서로의 담임 선생님이 잠시 뒤바뀌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주순자 선생님, 그 애는 정의섭 선생님.
“그란데 우짜꼬, 서울대고 연세대고, 오라 카는 데는 많았는데, 고마 서울교육대로 가삤는 기라”
그리곤 흘흘하며 작게 웃으셨다.
“그때 할애비가 정선생 담임은 아니었지마는, 자꾸 책 들고 쫓아와가 물어싸니까네, 학생들 중에서도 정이 많이 들읐제”
그때, 차고 텁텁한 공기에 축축이 흐르는 코를 연신 훌쩍이던 그 애가 다급히 할아버지를 돌아봤다.
“그런데 왜요? 서울교육대는 안 좋은 데예요?”
그러니 할아버지가 피식 웃으시며 고개를 저었다.
“허허허, 아니이, 서울교육대핵교도 좋은 핵교제”
그러곤 잠시 말을 멈춘 할아버지는 옆에 쌓아둔 장작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아궁이 속으로 밀어 넣으셨다. 그리곤 불쏘시개를 휘둘러 이리저리 불을 정리하시곤 곧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정선생 어머이는, 하나 남은 아들내미가 우리나라서 제엘로 좋은 핵교로 갔으무 아 했겠나, 핵교 선생들도, 우리 핵교서 서울대생 나왔다 카므, 그긋도 경사인 기라”
그 애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불 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우와...”
틈만 나면 자기가 공부를 그렇게나 잘했다며 자랑을 늘어놓던 선생님의 말씀이 전부 사실이었다는 건, 그런 것들에 별 관심을 두지 않던 내겐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 애에게는 조금 감탄할 만한 일쯤은 되는 듯했다.
“와? 허허, 느그 선생님이 뭐라 카드노? 공부 잘했다 카드나?”
할아버지가 그 애를 돌아보며 장난스레 물으셨다.
“네! 맨날 일 등 했다고 하셨어요, 히히”
그 애가 이빨을 훤히 드러내며 할아버지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러니 할아버지는 마주 웃으시며 그 애 머리를 쓰다듬었다.
“참, 수운하고 착한 학생이었제, 예의도 바르고 성격도 착실하고... 근데 와, 정선생이 공부를 그래 잘하니깨네, 그글 못되게 보는 놈이 하나 있었는 기라............”
퍽! 퍽! 퍽! 퍽! 퍽!
“아으윽!”
잘 참다가, 다섯 대째에 그만 오금이 무너지며 무릎을 바닥에 찧더니, 비명 섞인 신음을 흘러냈다.
“일어나라이, 아직 안 끝났다!”
뒤에서 그 모습을 보던 정의섭 선생님이, 밀대를 부러뜨려 만든 나무 회초리를 겨누며 놈을 몰아세우셨다.
놈은, 한쪽 벽에 줄지어 세워놓은 조그만 정사각형 사물함들을 향해 무릎 꿇은 채, 매질 당한 제 엉덩이와 허벅지를 문지르며 연신 흐윽흐윽 하고 신음을 냈다. 옆에서 사물함에 양손을 짚고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놈은, 주저앉은 놈을 쳐다보며 겁먹은 표정으로 벌벌 떨었다. 교실도 아닌 상담실에 왜 사물함이 필요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적당히 높은 그 사물함들은 갖가지 잡동사니를 위에 올려놓기에도 좋았고, 종종 선생님들이 애들 빠따를 때릴 때 손을 짚게 하기에도 유용했을 것이다.
한동안 주저앉아 있던 놈이 곧 엉거주춤 일어났다.
퍽! 퍼어, 딱!
“아윽!”
뭐가 그리 급하신지, 일어난 놈이 사물함에 손을 채 짚기도 전에 다시 회초리를 휘두르셨고, 최대한 꾸물적대며 시간을 벌려던 놈은 별안간 전해오는 통증에 놀랐는지 손으로 엉덩이를 감싸려다 회초리에 손등을 맞고 말았다.
“손 치아라! 잘모하므 뿌라진다, 방금 건 안 센다이”
놈은 다시 무릎을 찧고는 양팔을 오므려 맞은 손등을 감쌌다. 정말 많이 아파 보였다.
“한상규 이 새끼야! 니는 아니었으모 했는데, 니가 그랄 줄 몰랐다, 니는 오늘 두 배로 맞자, 대라 이리!”
그렇게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회초리를 꽤 힘껏 휘두르셨는지 차오르는 숨을 억지로 삼키고 계셨고 이마엔 벌써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우리 학교 졸업생이었던 걸까. 선생님은 놈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고 중학생이 초등학교에서 빠따를 맞는다는 게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 당시 한 다리 두 다리 건너면 모두가 친구고 친척이고 사돈이던 그 좁은 시골 분위기를 생각하면 또 아주 없는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화가 난 정의섭 선생님이 중학교 학생주임 선생님한테 놈들을 보내라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잠시 바닥에 움츠려있던 한상규라는 놈이 다시 천천히 일어났다. 놈의 얼굴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퍽! 퍽! 퍼어,
“자꾸 움직이지 마라! 방금 것도 안 센다이”
회초리가 엉덩이에 닿을 때마다 앞으로 밀려나더니, 세대째엔 그렇게나 아팠는지 엉덩이를 빼어 피했다. 그러니 조금 약하게 맞은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에게도 뺨을 때리던 게 예사스럽던 당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몽둥이로 엉덩이나 허벅지를 때리는 빠따때리기는 TV에서나 가끔 봤던 광경이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TV에서는 그렇게 아파 보이진 않았는데, 지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정말이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더 이상 보고 있기 힘들어 뒤돌았다. 그 처참한 광경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창문틀과 유리의 가림막 사이로 난 얇은 틈새로 눈을 고정한 채 무척 몰두하여 훔쳐보는 것이다. 조금 집착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 애의 팔을 슬며시 잡아당겼다.
‘야아, 가자’
그러니 그 애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 살짝 인상 쓴 얼굴로 돌아보더니 다시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상담실 문을 등지고 복도 바닥에 주저앉았다.
퍽퍽 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다가 끊어지기를 반복했다. 짧은 신음들도 간간이 이어졌다.
누군가가 수모를 당하는 소리는 그다지 유쾌한 건 아니었다. 심지어 그게 날 해코지했던 놈이라 해도. 생각해 보면, 맨날 숙제를 안 해가도 꿀밤 한 번 때린 적 없던 정의섭 선생님이 직접 누군갈 때리는 광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러니 그건 그것대로 충격이었다. 어젠 화내는 모습을 보더니 오늘은 저런 모습까지 보게 된 것이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날 놈은 얼추 서른 대는 맞았던 거 같다. 나중에 신음 소리마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지쳐있는 놈을 보게 됐을 땐 불쌍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아프면 차라리 잘못했다고 빌기라도 할 것이지. 그럼 덜 맞을지도 모를 텐데, 멍청한 놈.
놈에게 한참 진행된 매질이 끝나고 다른 놈이 맞을 차례가 된 듯했다. 별안간 그 애가 창문에서 몸을 돌렸다. 그리곤 앉아 있는 날 지나쳐 저 혼자 복도를 걸어가는 것이다.
이제 가려는 걸까 싶어 얼른 따라붙으니, 그 애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치... 어이없어’
1층 현관을 나와 운동장에 들어설 때까지 그 애는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나는 뒤따르며 그 애 눈치를 살폈다. 그 애는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멍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또 왜 저러는 걸까. 화가 난 걸까, 아니면 뭐가 언짢은 걸까. 어쨌든 나로선 손목을 잡히지 않으니 나쁘진 않은 상황이었다.
그날도 애들 여럿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지난번 4학년 걔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우리를 방해하지 않으려 피하는 건 똑같았다. 그건 암묵적인 룰이었다. 돌아가기는 번거로우니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대신, 우린 최대한 그들의 플레이를 방해하지 않으며 빨리 벗어나 주는 것이고, 그들도 지나가는 우리를 피해서 공을 차는 것이다.
그런데 축구라는 게, 한창 승부에 몰두하다 보면 주위 상황을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운동장을 반쯤 걸어갔을 때, 별안간 그 애 쪽으로 공이 날아 온 이유가 그 때문일 테지.
나는 공놀이를 잘 못 한다.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 바는 없지만, 그 시절 어리숙하고 둔했던 내게 둥글고 잘 튀는 구 형태의 물건은 정말 쥐약 같은 거였다. 축구든 농구든 피구든 공이라는 물건이 내게 다가오기만 하면 자꾸 오만대로 튀어 산통을 깼고, 내가 참여한 우리 편은 매번 지기 일쑤였다. 우리 삼촌은 농구를 꽤 잘하던데, 또 아빠는 아닌 거 같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운동신경이 있는 편도 아니었다. 그러니 공놀이를 못 할 수밖에.
그 애는 저에게 공이 날아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멍한 채로 걷고만 있었다.
“야! 공!”
순간 나는 그 애와 공 사이를 막아서며 헤딩으로 공을 쳐내... 아니, 그건 좀 위험하니까. 그럼 펀치로? 아... 내가 저걸 맞출 수나 있으려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공이 다가오는 걸 우물쭈물 보고만 있던 그 짧은 순간, 내 머리 옆으로 손이 튀어나왔다.
“뭐해?”
가볍게 공을 걷어낸 그 애가 왠지 무심한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학교 1층 상담실에서 놈들이 맞는 걸 구경하느라 꽤 늦게 나왔던 듯싶다. 학교의 모든 수업이 끝난 그 시각 교문 밖에는 하교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었다. 저쪽 문방구 앞 오락기에 몇몇 애들이 보이긴 했지만, 골목을 걸어가는 애들은 저어 멀리 너덧 명 보이는 것 말곤 우리밖에 없었다.
교문을 지나 몇 걸음 나갔을 때였다. 갑자기 우뚝 멈춰선 그 애가 문득 제 손을 내밀어왔다.
영문을 몰라 그 애를 쳐다보니,
“손”
아까처럼 무심한 목소리로 그러는 것이다.
에이... 좋았는데. 마지못해 팔을 뻗어 손목을 건넸다. 손이라고 말했어도 어차피 손목을 잡아챌 게 뻔했으니까.
예상대로 손목을 잡혔다. 그런데 잠시, 왠지 움직이진 않고 그대로 내 손목을 내려다보며 가만히 잡고만 있는 것이다. 이따금 손가락들이 꼼지락대며 살짝 주물럭거리기도 했다. 그러니 간지러워져 뜨끔 웃음이 났다.
“아! 히히힉, 하지 마라”
킥킥 웃으며 비틀거렸다.
그런데 별안간 잡힌 손목이 꽉 쥐어졌다.
떨리던 손목이 멈췄다. 그 애가 비틀거리는 날 굳게 다잡았다. 순간 분위기가 정연해지며 그 애에게 집중되는 듯했다.
조금 놀라 그 애를 보니, 날 보는 표정이 어쩐지 낯설어 보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건지, 두 눈동자가 미동도 없이 날 똑바로 향해 있었고, 눈썹 사이가 약간 오므려져 떨리는 듯도 했다.
“아까, 공 맞았어도 별로 안 다쳤을걸?”
갑자기 좀 전 얘길 꺼내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 어... 그랬겠제”
잠시 뜸 들이던 그 애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공 온다고만 했어도 내가 알아서 피했을 거야”
얘가 또 이상한 자존심을 부리는 걸까.
“어, 그체?”
그런데 여전히 뭔가 개운치 않은 표정을 하곤 입을 삐죽거리는 것이다.
지금 이 애가 왜 그런 이해 못할 표정을 짓고 알 수 없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덧붙일 설명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도 혹시 맞으면 아플까 봐...”
순간 삐죽거리던 그 애 입이 가지런해졌다. 표정도 조금 펴진 듯 보였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기분이 조금 나아진 거 같았다.
잠시 그 애가 내 손목을 내려다보더니 다시 눈을 들었다.
“손, 잡는 거 싫어?”
정확히 말하면 손목을 잡힌 거지만, 일단 싫기는 싫다. 그래도 손을 맞잡는 것보단 훨씬 나으니까... 아니 그래도 싫긴 싫다.
“어? 아, 음... 싫은 건 아닌데, 애들이 놀리니까...”
눈치를 살피며 최대한 조심스레 말했다. 혹여나 그 애 심기를 건드렸다가 또 그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어 버린다면 왠지 골치 아파질 거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흔쾌히 놓아주는 것이다. 손목이 풀려난 난 웬일인지 어리둥절하여 그 애를 쳐다봤다. 다행히 그 애 기분도 썩 괜찮아 보였다.
“나 오늘 과외 안 하는데, 너희 집에서 놀아도 돼?”
그때 난, 평일엔 왠지 한 번도 놀러 오지 않던 그 애가 갑자기 오늘 놀러 오겠다고 하는 것보다 과외라는 게 뭔지가 더 궁금했을 뿐이다.
“과외가 뭔데?”
그러니 그 애가 피식 웃었다.
“하하하, 있어 그런 게, 공부하는 거야, 히히히히”
그러고는 갑자기 하얗고 가지런한 제 이빨을 훤히 드러내는 것이다.
여태껏 그 애가 그런 표정을 짓는 걸 본 일이 없던 나는 잠시 당황했다. 그리고 그게 그 애가 진짜 기분 좋을 때 짓는 표정이란 걸 금방 알아챘다.
처음으로 그 애가 날 보며 진심으로 웃어 줬던 그날이 기억난다. 그때까지 그 애가 웃는 건 많이 봐왔었지만 그렇게 기분 좋게 웃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지. 그 애의 웃는 모습이 제법 예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게 됐다. 그래서 어쩐지 나도 기분이 좋아져, 우린 누구 이빨이 더 훤히 드러나는지 내기라도 하듯 서로를 마주 보며 한동안 낄낄거리며 웃었다. 누가 보면 동네 바보들끼리 실없이 그러고 있는 줄 알았을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