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5월의 마지막 주가 가고 있었다. 이제 낮의 길이가 제법 길어져, 새벽 5시만 돼도 환해지기 시작해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나온 7시 반쯤이면 벌써 해가 중천에까지 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대문을 나와 옆집을 기웃거렸다. 날씨도 아주 풀렸는지 이른 아침의 옅은 서늘함마저도 완전히 꺾여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마다 짜르르 대며 날아다니는 제비의 움직임이 더욱 활기차 보였다. 문득 열린 대문 너머로 마당 정원을 가꾸시던 옆집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꾸벅 고개 숙였다.
“아이구 기래, 인지 갈라꼬, 쫌만 있어 보래”
그리곤 집안을 향해 뒤돌아보셨다.
“야야! 야아 왔다! 뭐하노!”
곧 그 애가 문을 열고 나와 주섬주섬 신발을 신었다.
그 애가 옆집으로 온 처음 몇 주간은 학교 가는 아침마다 거의 내가 먼저 나와 기다렸었지만, 이젠 그 애도 내가 나오는 시간에 거의 맞춰 집에서 나왔고, 가끔은 저가 먼저 나와 있기도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 애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왔다. 뒤로 가지런히 묶은 머리가 찰랑대며 그 애 뒤로 흘깃 나부꼈다. 곧 열린 대문 앞에 멈춰 서 사뿐히 문턱을 넘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자연스레 내 손목 쪽으로 손을 뻗는 것이다.
“아, 맞다, 히히히”
아차 싶어 손을 거둔 그 애가 멋쩍게 웃었다.
습관이라는 게 참 무서운 거다. 그동안 그 애는 대문을 나와 나를 마주하기만 하면 당연한 듯 손목부터 잡아챘었다. 거의 두 달 동안 그래왔으니 아주 몸에 익고도 남았던 거지. 그런데 이게 참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게, 그 애가 집에서 나와 내 앞에 서기만 하면 나조차도 손목이 들썩거리는 것이다. 나 참... 어제 아침에도 그랬고, 수업을 마치고 나온 복도에서도, 그리고 방금도. 그저께 학교를 나오면서부터 이제 손목을 잡지 않기로 합의를 봤건만, 정말이지 우스꽝스럽게도 둘이서 이런 쇼를 하고 있다.
손목을 들썩이다 아차 싶었던 나도, 괜히 이 상황이 어색해 그 애를 외면하며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그 애는 크흠 헛기침하고는 조용히 뒤따랐다.
어색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꽤 친한 사이니까.
“그래서, 어제도 그, 과외? 그거 한 기가?”
“응! 매일 해, 집에 오면 밥 먹고 숙제 조금 하다가, 저녁에 나가서 과외하고”
“와... 힘들겠네”
그러니 그 애가 피식 웃었다.
“공부하는 게 힘들어?”
의외의 반응에 조금 놀라 그 애를 돌아봤다.
“어? 그라믄, 힘들지 안 힘드나?”
이번엔 쿡쿡거리며 조금 크게 웃는 것이다.
왜 저러나 싶어 기분이 떨떠름 해졌다.
대문을 마주 보고 있는 그 애 집과 우리 집 사이의 골목길을 돌아 정류장 가는 길로 들어서면, 반듯이 포장된 콘크리트길 양쪽으로 알록달록 기와를 얹은 시골집들과 이따금 초록색이나 파란색 혹은 적갈색 페인트를 칠한 철제 대문이 이어졌다. 그러면 담벼락 너머로 아침부터 마당에서 잡일을 보시는 마을 어른들의 모습이 힐끗 보이기도 했다. 보통은 하던 일에 열중하느라 우리를 못 볼 테지만, 가끔은 눈이 마주치면 모두들 그렇게나 반가워하며 맞아주셨다. 어린애들도 많지 않은 조그만 마을이라 더 그랬을 터였다.
“아이고 그래, 핵교 가나?”
사과 과수원을 조그맣게 운영하시는 죽곡댁 아주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 빨래를 너시다 우리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12살짜리 꼬마들 키로도 충분히 넘어 볼 수 있을 만큼 그다지 높지 않은 그 담 너머로 아주머니께 꾸벅 고개 숙였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마을 어른들께 인사할 때면 특히 그 애의 발랄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더욱 커지곤 했다. 읍내에서와는 다르게 마을에서는 모두가 저를 좋아하니 더 기고만장한 거겠지. 처음엔 그 애 인사 소리가 너무 커서 여간 귀에 거슬리는 게 아니었는데, 지금은 그 큰 목소리에 내 목소리가 묻히니 은근슬쩍 고개만 숙여도 돼서 오히려 편하다. 그런데 아주머니로서는 그 애의 인사하는 모습이 어지간히도 귀여우셨나 보다.
“아이고 아이고 그래, 헤헤헤, 잘 갔다 오이라이!”
즐거운 듯 깔깔 웃으며 손 흔드시는 아주머니를 지나쳤다.
몇 걸음 걷다가, 이내 그 애가 다시 말을 붙였다.
“난 공부 하는 거 좋아, 그렇게 안 힘들어”
“맨날 그렇게 공부만 하믄, 못 논다 아이가”
그러니 그 애가 의아하다는 듯 돌아봤다.
“왜 못 놀아? 주말마다 너네 집 가서 놀잖아”
“에에?”
어이가 없어 께름칙한 기분마저 들었다.
“주말엔 당연히 노는 거지, 뭘 당연한 거 갖고 그라노”
그러니 또 쿡쿡거리며 웃는다.
“그럼 넌 공부 안 해?”
“어, 나는 숙제도 힘들어갖고, 그냥 안 하는데”
“어어?”
그 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싶어 떨떠름하게 그 애를 마주 봤다.
내 대답이 사실인지 확인이라도 하려는 양, 내 눈을 꽤 자세히 살펴보던 그 애가 이윽고 말을 이었다.
“그럼 선생님한테 안 혼나?”
나로선 오히려 그 애 반응이 이해되지 않아, 그저 무심히 대답만 할 수밖에.
“혼나긴 혼나지”
“손바닥 맞아?”
“아니, 맞진 않는데”
여전히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 애가 재차 물었다.
“그럼 어떻게 혼나?”
뭘 그렇게까지 꼬치꼬치 캐묻는지. 귀찮았지만 대충 대답이라도 하는 시늉은 했다.
“뭐... 왜 안 해왔냐 하시지”
“그럼 넌 뭐라고 하는데?”
“그냥... 힘들어서, 아니면 어려워서”
이번엔 그 애가 께름칙한 표정을 지으며 내 어깻죽지를 때리는 것이다.
“으휴! 너 우리 선생님이었으면 따귀 맞았다”
그리곤 한심하다는 듯 쯧쯧거렸다.
치... 한동안 안 그러더니, 또 어른 행세를 하려는가 싶어 기분이 언짢아졌다.
사실 그건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앞뒤로 이끄는 게 아닌, 서로 나란히 걸으며 일반적인 어린애들이 나누는 보통의 대화를 하는 것. 아침부터 일방적으로 전달만 되던 두서없는 재잘거림이 아닌, 서로의 자질구레한 일상마저 시시하게 공유하는 매우 자연스러운 대화 말이다. 그 애와 이런 주고받는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게, 이전엔 거의 겪어본 적 없던 나로선 꽤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조금 어색했었지.
우리가 이제 손목을 잡지 않기로 한 그날 이후, 그 애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일방적인 관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로써 우리가 마침내 이루게 된 관계는, 어쩌면 내가 그 애에게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를 거라 여겼던, 비로소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것이 되었다. 되돌아보면 그 애는 그저 친구가 필요했던 평범한 아이일 뿐이었다는 걸 나는 도무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곧 저 앞에 샛노란 개나리 울타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꽃이 조금씩 지고 있을 터였지만, 아직까지 그 생기로운 빛깔의 화사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10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정류장에 다다를 수 있다.
그때 옆에서 나란히 걷던 그 애가 제 호주머니에서 뭔갈 꺼내 내게 건네는 것이다. 뭔가 싶어 돌아보니 천 원짜리 몇 장이었다.
웬 건가 싶어 물었다.
“뭔데?”
“네 거야, 돈 뺏겼었잖아”
“어?”
어리둥절하여, 그 애를 쳐다보며 어떻게 된 건지 설명을 기다렸다. 그런데 어째 말은 않고 돈을 쥔 손만 재차 흔들어 보이는 것이다.
선뜻 건네받기 꺼려져 그 애에게 다시 물었다.
“이걸 와 니가 갖고 있는데?”
왠지 그 애가 내 눈을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찾았어”
“어? 이걸 어찌 그냥 찾노?”
여전히 돈은 받지 않고 묻기만 하니 그 애가 마지못한 듯 얘기했다.
“아, 아는 중학생 언니가 있는데, 그놈들한테서 찾아다 줬어”
응? 아는 언니가 있다고? 그것도 중학생?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들어 보고만 있으니 그 애가 다시 재촉했다.
“네 거니까 받으라고, 너 현우랑 모아모아 가기로 했다며”
그러면서 내 손에 돈을 쥐여주니 얼떨결에 받았다.
“어, 고마워”
막상 돈을 손에 쥐니 왠지 설레는 기분이 들었다. 엄마 생신은 지났으니 이제 와서 선물을 사기는 그렇고, 그럼 현우한테 오늘 모아모아에 가자고 할까.
그런데 문뜩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내가 얘기했었나?”
그 애가 무심히 돌아봤다.
“뭘?”
“모아모아 가기로 한 거, 현우랑”
순간 그 애 눈빛이 조금 흔들리는가 싶었다. 그리곤 이윽고,
“어... 어어! 얘기했잖아 네가아! 돈 모아서 같이 가자고 했다며어!”
왠지 버럭하며 쏘아붙이는 것이다.
어이가 없어 인상이 구겨졌다.
“아, 했으면 한 거지, 와 화를 내노...”
그러니 그 애도 괜히 뾰루퉁 하여 입을 삐죽였다.
정류장이 저 앞에 다가왔다. 어린애 걸음으로 느긋하게 걸으면 20분 정도 걸리니, 얼추 7시 50분쯤 됐을 터였다. 8시 전후로 버스가 도착하니 적어도 7시 55분까진 가 있어야 종종 예정보다 일찍 온 버스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가끔 버스가 너무 일찍 도착하면 기사님이 저 멀리서 뛰어오는 마을 사람들을 기다려 주기도 했다.
버스가 오는 방향을 향해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 마을 정류장에 곧 다다랐다. 빨간 벽돌로 반듯이 지은 세 걸음 남짓 넓이의 버스정류장은, 겉으로 보기엔 멀쩡했지만 사실 속은 관리를 하지 않아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내부에 설치한 나무 벤치는 헤지고 빛바래 볼품없었고, 바닥엔 흙먼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 여기저기 거미줄이 처져 있어, 한창 거미들이 활동하는 여름부터 가을까진 징그럽게 생긴 무당거미가 곳곳에 매달려 있었다. 그래도 어른들은 벤치에 앉아서 편하게 이용했지만, 나는 도저히 그 안에 있을 수 없어 한겨울에도 정류장 밖에서만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좀 늦으려나 봐”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그 애가 말했다. 아마 8시를 조금 넘긴 거겠지.
“그런가 보네”
도로를 달려 지나가는 차들을 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 애가 이젠 시끄럽게 재잘대지 않아 너무 좋다는 생각을 몰래 하고 있었을 때, 문득 버스가 올 방향을 바라보던 그 애가 넌지시 묻는 것이다.
“오늘 갈 거야?”
“응? 어디?”
“모아모아, 오늘 갈 거냐고”
그때 도로 위 저어 멀리서 베이지색 바탕에 파란 줄무늬가 흘깃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버스겠지.
“모르겠는데, 오늘 갈까?”
“흐음”
오늘 갈 거라면 기다리지 않게 미리 말하라는 뜻일까.
현우랑 놀기로 한 날이면 그 애는 날 기다리지 않고 먼저 집에 가거나 혹은 제 반 친구들에게 합류하거나 했다. 처음엔 날 기다리는 그 애가 싫어 현우 집에 자주 놀러 갔었지만, 매번 기다리다 혼자 집에 가게 되는 그 애 때문에 그 짓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다 진짜 현우와 놀기로 한 날엔 그 애에게 미리 알리게 된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왜 굳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저쪽을 바라보고 있는 그 애를 쳐다봤다.
“같이 갈래?”
들은 건지 만 건지 그 애는 대답은 않고 잠시 가만히 있더니, 이내 이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새초롬한 그 애 눈빛에서 문득 아주 옅은 긴장감이 느껴지는 거 같았다.
그렇게 잠시 내 눈을 마주 보던 그 애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응... 그래”
다시 저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 애를 보며, 무슨 반응이 저리도 희한할까 싶어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애다.
멀리 있던 버스가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왔다. 다가오는 버스를 향해 한 두 걸음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조용히 있던 그 애가 별안간 날 돌아보며 어째 웬 호들갑을 떠는 것이다.
“버스 왔다! 히히, 얼른 타자!”
버스가 온 게 무슨 경사라도 된다는 양, 양쪽 입가를 쭉 벌려 익살스레 웃고는 갑자기 내 손목을 덥석 잡아채 버스 쪽으로 이끄는 것이다.
멍하니 있다가 속절없이 끌려가는 모양새가 됐다.
에이 씨, 잡지 않기로 약속했으면서 또 이런다. 어휴... 내가 진짜, 바랄 걸 바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