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그 애 15화

15. 최고의 허세쟁이

by 차태주

나는 그 애가 내 손목을 잡겠노라 요구하는 걸 감히 거절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월요일 아침, 교실로 들어서니 몇몇 애들이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자리에 앉았을 땐, 짝지인 지민이와 앞자리 성호, 수진이가 어찌 된 일인지 물어왔다. 골목에서 돈을 뺏기고 맞았다고 하니 그들도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

“야아! 거기로 왜 갔노, 거기 중학생들 담배 핀다 아이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지만, 굳이 항변하고 싶진 않았다. 귀찮기도 했고, 저쪽에서 현우가 다가오고 있기도 했다.

“따라온나”

내게 다가온 현우가 슬며시 말을 건네곤 교실 뒷문을 나갔다.

“쟈아 와 저라는데? 니 쟈한테 맞을 짓 했나? ㅋㅋ”

간섭하기 좋아하는 지민이가 실없이 킥킥거렸다.

분명 아무도 없는 곳으로 끌고 가 나무랄 테지. 나처럼 녀석도 괜히 교실에서 떠들어 주목받거나 나서는 걸 질색하는 성격이니까.

우린 약속이나 한 듯 화장실로 향했다. 녀석이 앞장섰고 나는 뒤따랐다. 화장실은 학교 건물 각 층마다 양쪽 끝에 있었는데, 1반인 우리 교실은 3층에서도 끝 쪽이라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반이었다.

1교시가 시작되기까지 15분 정도 남은 시간, 마침 화장실을 이용하는 애는 아무도 없었다.

녀석이 세면대 앞에 멈춰 서 돌아보더니 이내 쏘아붙였다.

“어찌 된 기고? 니 돈 뺏깄나?”

“어...”

또 설명하기 귀찮았지만, 그래도 현우니까 대답은 해줬다.

“너 이씨! 내 그랄 줄 알았다, 내가 거기로 가지 말라 캤제!”

아마도 녀석을 남겨두고 혼자 골목으로 뛰어들었을 때 뒤에서 소리쳤었겠지.

내 몰골이 심히 만신창이긴 했지만, 현우가 그렇게 흥분하여 떠드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 괜히 반항해보고 싶었다.

“니가 언제 그랬노?”

그러니 더욱 흥분하여 윽박지르는 것이다.

“내애가!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아이가! 못 들읐나!”

인상을 구기며 호통치는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났다. 그 와중에도 크게 소리는 내지 않으려 소곤대는 게 더없이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니 지금 웃음이 나오나!”

“아니, ㅋㅋ, 여 아무도 없는데 와 소곤대노, ㅋㅋㅋ”

이마와 턱에 대빵만 한 멍이 든 주제에 속도 없이 킬킬거리고 있으니 아주 어이가 없었겠지. 녀석은 어이가 없다 못해 이제는 초연해졌는지, 내가 다 웃을 때까지 팔짱을 낀 채 느긋이 기다리는 것이다.

잠시 뒤, 녀석의 못마땅한 시선이 부담돼 웃음을 멈추고 눈치를 살폈다.

“이미 뺏긴 걸 우짜겠노, 그래도 오백원짜리는 안 뺏깄으, 히히”

“자랑이다!”

이젠 소곤대지 않고 그냥 쏘았다.

“그쪽으로 안 가야지 이제, 나 돈 다시 모으면 같이 모아모아 갈래?”

그런데 별안간 녀석이 자세를 고쳐 잡더니 다시 소곤댔다.

“가아는? 가아 만났나?”

“가아? 가아 누구?”

누굴 말하는 건지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아 되물었다. 그런데 녀석이 뭔가 말하려다 말고 우물쭈물 대는 것이다.

“누구? 걔 말하는 거가? 니 어찌 알고 있노?”

그러니 살짝 인상 쓴 표정으로, 녀석이 뭔가 할 말이 있는 건지 입술을 자꾸 꼼지락거렸다.

“뭐고오?”

그 답답한 모습에 조금 짜증이 나려 했다.

잠시 망설이던 녀석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아... 내가 니 거기로 갔다고 말했어”

“어? 어디서? 길에서 만났나?”

현우가 그날 내 소재를 그 애에게 알렸다고 하는 것이다. 그 애가 그곳에 때맞춰 등장할 수 있었던 실마리가 조금 풀리는 듯했다. 시간상으로 그 애는 그날 버스터미널로 가지 않았을 테니까.

“가아가 나 찾더나? 어찌 딱 만났노, ㅋㅋ”

그러니 갑자기 심각한 표정이 되어 진지한 어투로 말하는 것이다.

“니, 가아랑 너무 친하게 지내지 마, 가 좀 이상하드라”

“어? 뭔 소리고?”

별안간 알 수 없는 소릴 하니 어안이 벙벙했다.

“선생님 오시겠다, 들어가자”

녀석이 이어 설명할 줄 알고 잠자코 있었는데, 왠지 자릴 파하려는 것이다.

“아 뭔데? 말해봐, 와 그라는데?”

“아 일단 빨리 드가자고! 선생님 오신단 말이라”

날 지나쳐 화장실을 나서는 녀석을 붙잡았지만, 되려 녀석에게 교실 쪽으로 이끌렸다.


“니는 또 와 이라노?”

종례가 끝난 시간, 복도에서 날 기다리던 그 애를 발견한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가 그 애 얼굴을 살피셨다. 멍든 볼이 어제보다 조금 더 파래진 거 같았다.

“괜찮아요, 히히, 중학생이랑 싸웠는데 이겼...”

“가아들이 니도 이리 때리드나!”

눈치 없이 실실거리던 그 애가 흠칫 웃음을 거두곤 입을 닫았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심각한 것을 넘어 화가 난 듯 떨리고 있었다. 마치 짐승이 으르릉거리듯 폭발하기 전 애써 흥분을 삼키는, 끓어 넘치기 직전의 목소리 같았다. 반 애들이 한꺼번에 복도로 나온 터라 제법 소란스러웠지만, 그 소란한 와중에도 확연히 들릴 만큼, 그 순간 선생님의 목소리는 몹시도 험상스럽고 사나웠다.

그날 아침, 조회 겸 1교시를 시작하러 들어오신 선생님의 표정이 평소 같지 않다는 걸 느낀 건,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날 찾는 선생님의 목소릴 듣고부터였다. 아마 엄마가 학교에 전화한 걸 테지. 신기하게도 그날은 수업 중 선생님의 자랑을 듣지 못했고, 종례도 일찍 마쳤다. 그리고 이내 그 애까지 발견하신 것이다.

선생님의 화난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 애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본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선생님을 올려다보는 그 애의 표정은 놀랐거나 겁을 먹었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애의 눈은 의연하면서도 조금 무심한 듯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마주 보고 있었고, 굳게 다물어진 입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거지? 화가 난 걸까. 아니, 그런 거 같진 않은데. 그건 12살짜리 꼬마로선 이해할 수 없는, 그저 낯선 표정이라고 밖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가아들이 누고? 말해봐라, 선생님한테 말해봐라”

그 애를 조용히 다그치시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좀 전보다는 누그러져 있었지만, 여전히 떨리고는 있었다.

아까 내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셨을 때, 나는 그저 중학생들이라고 밖엔 해줄 말이 없었다. 아,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이 쭉 찢어져 못생겼다고 말하긴 했다.

그런데 여전히 의연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올려다보는 그 애는 나지막하지만 뚜렷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다.

“한상규, 이름표에 한상규라고 적힌 걸 봤어요”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잠시 그 애 눈을 마주 보더니 이윽고 그 애의 한쪽 팔에 손을 올려 다독이셨다.

“그래, 잘했다, 조심해서 들어 가이라, 골목 쪽으론 가지 말고”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가시던 선생님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어떤 표정을 짓고 계실까. 처음으로 선생님의 얼굴이 궁금했던 그 심오한 뒷모습에서 어쩐지 처량함과 외로움이 느껴졌던 거 같다.

선생님이 가시자 잠시 그 뒷모습을 응시하던 그 애가 이내 이쪽으로 몸을 돌려 다가왔다.

“가자!”

그리곤 어느새 평소의 그 명랑하고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내 손목을 잡아채는 것이다.

“오늘도 수업 잘 들었어? 친구들은 네 얼굴 보고 뭐래? 내가 중학생들한테서 너 구해줬단 얘긴 굳이 안 했지? 아니, 해도 되긴 한데, 쑥스러워서 그러지이, 히히, 우리 반 애들도 막 너무 멋지다 그러니깐..........”

그 얘길 안 했으면 한다며 크게 떠드는 그 애의 바람과는 다르게 복도엔 이미 5학년 애들이 꽤 남아 있었다. 교실을 조금 늦게 나가는 애들도 있었고, 선생님과 그 애의 대화를 구경하던 애들도 있었다. 어쨌든 그 애 어깨가 펴졌다. 아침부터 재잘대는 것도 다시 시작됐다. 수업이 끝나면 복도에서 다시 날 기다릴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손목을 잡고 이끄는 건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바랬었다.

“잠깐만”

잡힌 손목을 비틀었다.

“잠깐만, 좀 놔봐”

손목을 비틀어 그 애 손을 뿌리쳤다. 왠지 그 애가 이전보다 헐게 잡아,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그러니 눈썹을 약간 찡그린 그 애가 왜 그러느냐는 표정으로 돌아봤다.

“너, 그놈들 이름 알고 있었나?”

내 물음에 그 애는 잠시 날 마주 보며 뜸 들이더니, 어쩐지 잘 모르겠다는 듯 되묻는 것이다.

“그놈들? 그놈들 누구?”

그러면서 태연히 웃어 보이기까지 하니, 처음엔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싶었다.

“그... 내 돈 뺏어간 놈들”

“너 돈 뺏겼어? 누구한테?”

응? 누구냐니?

“그 중학생들 말이라, 너랑 나 때렸던”

“응? 무슨 소리야아, 하하, 난 맞은 적 없는데?”

여전히 모르겠단 표정으로, 이젠 눈을 꿈뻑거리기까지 하며 가식을 떠는 것이다.

이젠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때 서야 그 애가 일부러 그런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대체 왜?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그 애의 반응에 뭐라고 해야 될지 몰라, 그저 뻔뻔하게 웃음 짓는 그 눈을 쳐다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뜩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그놈들... 내가 맞고 있는데, 니가... 그, 그놈들 하고 싸우고, 나 구해줬잖아...”

그러니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아아! 그놈들! 그 중학생들 말하는 거였구나? 진작 그렇게 말하지 그랬어, 하하하”

아이고 참 내, 한진규보다 더한 허세쟁이가 여기 있었다. 그때 버스에서 그 애가 왜 한진규를 무시했는지 알 거 같았다. 감히, 고작 한진규 같은 조무래기 따위가 그 애 앞에서 허세를 부렸으니 당연했겠지.

“아... 그래, 그놈들 이름 알고 있었잖아, 근데 와 어른들한테 말 안 했노?”

“안 했나? 했던 거 같은데?”

또 그런다. 게슴츠레하게 뜬 눈과 반쯤 드러낸 이빨로 실실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양새가 또 시치미를 떼는 게 분명했다. 얘가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안 했잖아, 그때 아줌마가 그놈들 누구냐고 했을 때, 이름 말 안 했잖아”

“그랬나? 히히히, 너 기억력 좋다아”

그 와중에도 날 칭찬해가며 여유롭게 굴었다. 정말이지... 그 애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너, 자꾸 와 그라는데, 너 좀 이상해”

“왜에, 하하하, 그래서 좀 전에 선생님한테 말했잖아아, 그럼 된 거 아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 왜 그날은 말하지 않은 건데? 지금 이 애가 왜 굳이 이런 쓸데없는 시치미를 떼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됐다. 선생님께 그놈 이름을 일러바친 걸 보면 일부러 숨기려 했던 건 아닌 거 같은데, 정말 깜빡하기라도 한 걸까? 아니, 그 정도로 어리숙한 애는 아닌데.

“이제 그 얘긴 그만하고 얼른 가자아, 버스 놓치겠다”

여전히 태연히 웃으며 손을 내밀어 왔다.

심히 내키지 않았다. 여기서 또다시 그 애에게 손목을 붙들리면 이제 다신 벗어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르으은, 내 손 잡아아”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 애가 좀 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어르듯 재촉하는 것이다.

옆을 지나가던 몇몇 머심애들이 얼른 잡아주라며 낄낄댔다.

손을 잡으라고? 으... 차라리 손목을 잡히는 게 낫지 않을까. 손을 맞잡는 건 좀 이상한데... 아니 그보다,

“그냥 가면 안 되나, 손 안 잡아도 잘 갈 수 있잖아”

그러니 순간 그 애 표정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얼른”

별안간 정색하는 그 모습에 압도되어 나도 모르게 얼른 손을 내었다.

다행히 손을 맞잡진 않았다. 그 애가 제게 다가가는 내 손을 지나쳐 손목을 잡아챘으니까. 그 와중에 등신같이 그나마 다행이라며 안심했다.

또다시 그 애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끌려가노라니 문득 깨달은 게 있었다. 왜 이제서야 알게 된 걸까. 나는 그 애가 내 손목을 잡겠노라 요구하는 걸 감히 거절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애는 굳이 그 중학생 놈들과 싸워 이겼다며, 언뜻 보기엔 하잘것없는 허풍을 부렸지만, 생각해 보면 저가 놈들을 이기지 못했다고 한다면 날 구한 게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 애는 그날 날 구했어야만 했다. 그로 인해 나는 그 애에게 신세를, 아니 빚을 지게 됐고, 친구로서, 어쩌면 은인으로서 그 애를 밀어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애에게 귀속됐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14화14. 그 애가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