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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댄스 Jun 18. 2024

사과의 이해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 친한 후배의 결혼식이 있었지만 갈 수 없었다. 그 후배의 가장 친한 친구와 헤어진 직후였기 때문이다. 전 여친은 100% 참석할 것이니, 내가 가지 않는 편이 맞다고 생각해 축의와 축하인사는 미리 마쳤다. 어차피 갈 수도 없는 결혼식, 아마 전날 진탕 술이나 먹었던 것 같다. (한사코 이별의 슬픔 때문은 아니라고 항변한다.)


띠리링~


카톡이 왔다. 놀랍게도 전 여친이었다. 메시지가 1도 반갑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숙취와 피곤으로 점철된 단잠을 깨웠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인지상정, 내용이 궁금하긴 했다. 상태메시지 1을 바로 없애는 건 자존심이 상했지만 언제나 손은 뇌보다 빠르다. 이내 메시지를 눌러본 것을 후회했다. 술로 쓰린 속을 더욱 쓰리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오빠, 오늘 정말 친하고 좋아하는 동생 결혼식도 나 때문에 못 온 것 같아 마음이 쓰였어. 얼마나 축하해주고 싶었을까. 누구의 잘못은 아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어서 미안해. 아! 그리고 답장은 안 해줬으면 좋겠어. 그냥 이 말이 하고 싶었어.


요즘 같으면 ’ 네가 왜 미안해?‘ 하며 친히 답장을 보내는, 하지 말아 달란 짓만 골라서 하겠다만…… 정말 내용 하나하나가 너무 별로였고, 복잡한 감정과 함께 답을 보내기도 애매해서 그냥 혼자 삭였던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무엇을 바라고 사과를 한 걸까.


뻔하다. ‘자기 마음 편하자고’ 사과한 것이다. (만약에 그 마음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진심 어린 사과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확신한다. 분명히 자기 마음 편하자고 남긴 카톡일 것이라고) 사과에도 옳은 방법이 있다고 믿는다. 사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과를 하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 철저히 사과를 받는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이어야 한다.


옛날 기준으로 A형, 요즘 기준으로 ISFJ라면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는 너무 미안해서 정말 밤새 고민하다 사과했는데, 상대방이 기억조차 못하고 있는 경우 말이다. 대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지만 어느새 미안함의 역치는 높아질 대로 높아져 버렸다. (이제 뻔뻔해진 건가....) 나름의 매뉴얼도 생겨서 사과해야 할 사안과 그냥 넘어가도 될 것만 같은 사안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수도 있게 됐다. 그럼에도 미안하다는 감정과 그 마음을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보여주는 모든 과정은 '인간'으로서 기본이자, 중요하다.


나름대로 생각한 사과의 옳은 방식은 이렇다.

 ① 최대한 빨리 사과하기

 ② 상대방이 받아주고 비로소 용서와 화해의 제스처를 보일 때까지 사과하기

 ③ 상대방이 전혀 사과를 받아줄 마음이 없을 땐 기다리기



최대한 빨리 사과하기


사과에도 5초 룰이 있다고 믿는다. 마치 땅에 떨어진 음식을 5초 안에 주워서 후~ 털어 넣으면 먹어도 되는 것처럼, 상대가 불쾌함을 느꼈다는 확신이 들 때, 미안한 마음이 들자마자 사과해야 한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다'고 빠른 사과는 생각보다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시간과 진정성은 반비례한다. 상황과 감정 간의 찰나에 사과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상대방의 화가 더 큰 화를 부를 것 같을 때는 한 템포 진정한 후에 바로 사과하는 것이 낫겠다. 그래도 부디 하루는 넘기지 않길 바란다.



상대방이 받아주고 비로소 용서와 화해의 제스처를 보일 때까지 사과하기


사과했으니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는 마음만큼 오만한 것이 또 있을까. 잘못을 저지른 이가 도리어 사과를 받아줄 것을 종용하는 상황이야말로 2차 가해다. 특히 주변에서 부추기면 안 된다. '이만하면 좀 봐줘라', '불쌍하지도 않냐'는 오지랖은 사과를 받아주려는 마음에도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사과하는 이를 도와주는 방법은 진심으로 함께 사과하는 것밖에 없다.


사과의 끝은 용서다. 그 용서도 사과받는 이의 온전한 평정심을 담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쉽게 말해 앙금은 남았지만 그냥 봐주는 것일 확률이 높다. 다만 우리는 언제나 미안한 상황에 놓 일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사과하고 용서하는 상호작용은 변증법적으로 둘 사이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 수도 있다.



상대방이 전혀 사과를 받아줄 마음이 없을 땐 기다리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를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사항이다. 누구도 강요할 수 없으며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사과를 받는 사람이 ‘힘드니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하는 것이 맞다. 내 마음 편하자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 없다. 기다리다 보면 적절한 타이밍이 반드시 생긴다.


진심을 담아 진지한 태도로 본인이 잘못한 부분을 고해성사하고, 그로 인해 상처받았을 마음에 대한 걱정을 담아 사과를 건넨다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혹여 아무리 사과해도 받지 않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는 그럴 수도 있는 일과 어쩔 수 없는 일​, 오직 두 가지 경우의 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밤새 고민한 끝에 전한 미안하다는 한 마디에, 운 좋게 상대가 개의치 않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행운일 뿐이다. 굳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지만, 잠깐의 무지함이나 자존심으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들을 잃는 것만큼 슬픈 일은 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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