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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 Mar 06. 2024

사랑해서 그런거야.

불안형의 독백 1. 

우선 모든 글에 앞서 나는 나의 애착유형을 부정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지금껏 내가 살아온 방향에 대하여 스스로 비난하고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애착유형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하고,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을 때 이 애착유형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나의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조금 바꾸어볼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앞으로 좋아할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고, 스스로 상처받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애착유형은 유년시절, 받은 애정의 형식에 따라 생긴다고 한다. 그 때의 기억이 뇌의 한 부분에 각인되듯이 길들여져 성인이 된 후에도 그 영향을 받아 애정을 주고 받는 형식이 남아있다고 한다. 

크게 세 종류로 나누어 본다면, 안정형, 회피형, 그리고 불안형이 있다. 나는 이 중 불안형을 가지고 있다. 불안형의 특징은 과거의 애정을 받은 기억이 균일하고 어떤 상황에서든 동일하게 받은 것이 아니라 '간헐적'으로 애정을 받았기 때문에 <조건부>가 붙는다고 생각한다.


=IF 내가 'A' 행동을 하면 나를 좋아한다.

=IF 내가 'B' 행동을 하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B행동을 했을 때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거나 실망한 내색을 보여줬다는 그런 뇌 속의 각인 때문에 끊임없이 불안해 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B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나를 더 사랑했을텐데.'

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경험과 기억들을 토대로 서술하고 있는 이 불안형 애착은 어쩌면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유형일수도 있다. 


지난 나의 연애사를 되돌아 보자면 상대도 꽤나 진절머리났을 수도 있다.



첫번째로 서술하고 싶은 나의 과거 연애사. 

나의 제대로 된 첫번째 연애였던 한살 연하 S씨. 

21살 여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내게 매일이 기다려지는 날들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박카스 한 병을 주고간 손님,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일주일, 매일이 되던 날들이었다. 매일 얻어먹기엔 미안한 마음에 나도 조금씩 무언가를 챙겨주기 시작했고 그와 나의 오고 가는 선물이 쌓여갈 때쯤 그가 먼저 연락처를 남기고 갔다. 

그렇게 한참을 연락하다 나의 고백으로 시작된 관계였다. 그 고백은 이렇게 시작했다.

'난 확실한 관계가 좋아. 나 혼자 착각하고 있는 관계야?'


그 말로 그와의 관계는 시작되었고 2년가량의 기간동안 기간제 절친이었다. 일주일 중 6일은 만나는 그런 연애였다. 초반에야 매일 만나는 그런 관계가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는 사랑하니까 보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처음 주고 받는 사랑이 너무나 달콤해서 그랬을까. 나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줄 알았다. 매일 봐도 보고 싶은 관계. 나의 전부를 희생해도 되는 관계.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요구하는 것들이 점점 그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남들과 같은 그런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맛있는 식당에 가서 밥 먹고, 카페 가서 이야기 하고. 그런 것들이 하고 싶었지만 상대는 그의 취미를 함께하고 싶어했다. 

하루는 그의 취미를 위해 마트를 네 곳을 돈 적이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때는 정말 환멸이 났다. 나와의 데이트가 있지만 그 '취미'때문에 시간에 쫓기며 마트를 도는 것이 정말 짜증이 났다. 그러면서 자신은 취미로 돈을 버는 것이라며 이해해 달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취미를 함께했던 적은 없었다. 그는 나의 취미를 응원하지 않았고, 나의 일상을 존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사랑했기에, (사랑했다고 세뇌당했고 세뇌했기에) 그의 취미를 항상 함께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그리도 미련하게 연애를 했는지 의문이다. 


그러다 불안형이었던 나는 한창 바빠진 그에게 사랑을 요구했다. 졸전을 앞두고 학교에서 밤을 새는 그였고, 연락도 뜸하고 만나는 빈도수가 줄었다. 그와의 생활에 익숙해진 나는 불안했다. 그에게 서운한 것들이 한가득 쌓이고 있을 때였다. 나 역시 대회에 나가기 위해 바빴던 시기가 있었다. 그 때 나는 그에게 서운함을 표했다. 그리고 시간을 갖자는 말을 건낸 나의 말에 수긍하며 그렇게 그의 마음은 떠나기 시작했다. 


여러번 붙잡고 울고 불고 애원했다. 내가 먼저 이별을 건넸지만 쉽사리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수 차례 그런 과정을 반복한 후, 그리고 나의 마지막 자존심을 버리고 매달렸지만 돌아오지 않는 그에게 감정이 조금씩 사라졌다. 


S씨와의 연애사를 복기해보면, 그와 나는 둘 다 불안형이 아니었을까 싶다. 둘 다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며 희생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그런 연애. 그렇기에 둘 다 지쳤고 사랑보단 의무감이 남았던 그런 관계. 

그런 관계를 정리하고 생각을 오랫동안 깊게 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람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와의 이별 이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컸다. 나는 그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조금 많이 노력했다. 우선 나부터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자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시작한 것은 다이어트였다. 어렸을 때부터 '너는 엄마처럼 살만 좀 빼면 좋을텐데' 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래서그런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나의 이상한 루틴이 있다. 그렇게 나의 마음을 인정하고, 다이어트를 시작하여 대략 6kg 가량 감량을 했다. 

당연하게도 감량을 한다고 해서 그 분과 이어지는건 당연한 일이 아니다. 그저 살 빼는 데에만 집중해서 정작 그와의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했다. 

최근에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 책은 불안형 애착유형에 관한 책이었고, 그제서야 나의 애착유형을 파악했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의 애착유형은 불안형이었고 그렇게 인정하고 나니 나의 모든 연애사가 이해되기 시작했다. 


학창시절 좋아했던 친구에게 그리 불안해 했던 것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믿었던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최면을 걸었던 것도 전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앞으로의 나의 연애는 불안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먹은 후, 나의 애착유형을 바꾸기 위해 생각을 고쳐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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