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가족의 평화로운 식사시간, 그 뒤에 숨겨진 비결을 찾아서
프랑스에서 식당을 가거나, 프랑스인 가족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을 때, 프랑스 부모들을 유심히 관찰하곤 한다. 종종 이상적인 육아상을 뜻하는 고유명사가 된 듯한 "프랑스 육아"의 현장을 1열 직관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
가장 눈에 띄는 점 하나. 프랑스 아이들은 식탁에 참 잘 앉아 있는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프랑스 아이들은 많이 먹지는 않더라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랑스 부모들의 식사시간은 참 느긋하다. 전식, 본식, 후식 차례대로 야무지게 챙겨 먹고, 대화도 많이 한다.
프랑스 가족의 평화로운 식사시간 뒤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모두의 즐거운 식사시간을 위해 프랑스 부모들이 하지 않는 다섯 가지 행동을 정리해 보았다.
1. 밥을 억지로 먹이지 않는다
프랑스에는 ‘아이는 스스로 굶주리게 두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프랑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얼마나, 몇 개를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딱 그만큼만 덜어준다.
그리고 그릇에 있는 음식을 한 번씩 먹어보았다면 남기더라도 별 말 하지 않는다.
미련 섞인 눈빛으로 '한입만 더 먹어봐' 하거나, 한 입만 더 먹이려고 쫓아다니지 않는다.
미련 섞인 눈빛으로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던 게 바로 나였다.
한 끼라도 허술하게 먹이면 당장 아이에게 큰일이라도 날 줄 알았던 초보 엄마 시절, 완두콩 세알에 바게트 한 조각 먹은 아이가 다 먹었다고 하니 쿨하게 오케이 하던 프랑스인 친구를 보며 혼란스러웠다.
그 친구는 알고 있지 않았을까. 육아는 장기전임을. 아이가 영원히 완두콩 세 알만 먹고살지는 않을 것임을.
그 아이는 물론 지금도 튼튼하고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
2. 아무 때나 간식을 주지 않는다
식사시간에 밥을 적게 먹는 건 괜찮지만 대신 식사 이외의 시간에 이것저것 아무 때나 주지 않는다.
간식은 보통 하루에 한 번, 학교 끝나고 오후 4-5시쯤 구떼(gôuter) 시간에만 먹는데, 이때는 좀 건강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빵, 과자, 초콜릿 등을 먹을 수 있다.
아이들이 이 시간 외에 간식을 찾으면 '구떼 시간이 이미 지났어', 혹은 '구떼 시간까지 기다려' 하는 답이 돌아온다.
종종 학교 행사가 있어 간식을 먹는 날은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선생님이 친히 알려주신다.
"오늘은 구떼 이미 먹었으니 더 주지 마세요"
(옆에서 이를 들은 아이의 세상 원망스러운 눈빛이란!)
생일파티도 보통 구떼 시간에 맞춰 열리는데, 이날만큼은 이 세상의 모든 달달이들이 총출동한다.
4세 아이 생일에 하리보 젤리를 테이블 수북이 쏟아붓는 친구 엄마를 보며 얼마나 놀랬던지!
그 엄마도 보통 때는 간식으로 견과류에 유기농 비스킷 하나 먹이는데!
3. 야채를 숨기지 않는다
프랑스에서는 이유식 때부터 다양한 야채를 과일의 단맛이나 고기맛에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맛보게 한다.
아이가 오늘 싫어한 야채도 쿨하게 다른 방법으로 요리되어 식탁에 다시 등장한다.
프랑스에서는 보통 고기나 생선 등의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야채로 만든 애피타이저를 먼저 먹는데, 처음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인 만큼 야채의 맛에 더 집중하기 쉽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야채를 한입이라도 먹어야 맛있는 고기나 소시지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둘째가 쁘띠반(3세) 일 때 반아이들끼리 좋아하는 야채 배틀이 붙은 걸 본 적이 있다.
"나는 브로콜리 잘 먹어!"
"나는 당근도 좋아하는데?"
"나는 어제 완두콩도 먹었거든?"
아이들도 누구나 가슴속에 애틋한 야채 하나씩은 품고 사는가 생각했었다.
4. 아이들 음식을 따로 만들지 않는다.
이유식 시기만 지나면 아이들은 어른들이 먹는 음식을 그대로 같이 먹는다.
부모는 음식을 조금 더 잘게 잘라주는 것 이외에 아이들 식사를 위해 별다른 수고를 하지 않는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학교 또한 메뉴를 보면 어른들이 보통 먹는 음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우리 동네 마테넬(3-5세) 학교의 오늘 점심 메뉴는 "삶은 완두콩, 노르망디 소스(생선 육수가 들어간 크림소스) 송아지 구이, 사보이 크림치즈, 사과, 바게트"이다.
나의 경우, 매운 음식이 걸림돌이었다.
큰 뜻이 있었다기 보단 나의 편의를 위해 어른 위주의 식단(이라 쓰고 철저히 그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준비해 왔는데, 그렇다고 내 취향대로 여기저기 고춧가루 팍팍 뿌릴 수는 없으니.
그래서 나는 핫소스 컬렉터가 되었다.
가족 모두를 위한 식사에 핫소스만 뿌리면 나만을 위한 메뉴로 바뀌는 매직을 경험한다.
5. 식당에서 휴대폰을 보여주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식당에서 휴대폰을 보여줄 필요가 없다.
식당에서 식사하는 프랑스 아이들을 보면 참 의젓하고 얌전하다.
어른들과 함께 먹고 대화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운데, 그 이면에는 가정에서의 엄격한 식사예절 교육이 있다.
평소에 관대해 보였던 부모들도 식탁에서 장난을 치거나 음식 투정을 하는 아이들에게는 굉장히 단호하다.
부모의 약간의 계획성도 도움이 된다. 책이나 색칠공부 세트를 늘 챙겨 다니며 유사시(?)에 활용한다.
보통 아이들을 식당에서 볼 수 있는 시간대는 주말 점심시간.
(저녁에는 7시나 되어야 식당들이 문을 열기 때문에 나도 안 가본 지 오래되었다.)
주말 점심은 대가족 식사를 하는 문화가 있어, 식당에서 삼 대가 모여 식사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일반적인 카페나 브라서리 타입의 식당에는 대부분 어린이 메뉴가 있거나 일반 메뉴를 작은 사이즈로 반값에 주문할 수 있다.
'프랑스 육아'의 핵심은 부모의 주도권 안에서 아이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프랑스 가족의 식사시간에서 뚜렷이 보이는 특징이기도 하다.
부모는 언제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고, 아이는 얼마큼 먹을지 결정한다.
프랑스라고 편식하는 아이, 식탁에서 딴짓하는 아이, 식사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가 왜 없겠는가.
다만 프랑스 가정에 자연스레 녹아있는 일상의 규칙들이, 아이의 작은 투정이 큰 진상으로 번지지 않도록, 또 부모의 짧은 훈육이 길고 거센 분노로 번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