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학을 막 시작한 후배들에게 자주 해주는 조언이 있다.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미국 회사에서 인턴을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인턴을 다소 늦게 시작했던 나 자신의 후회를 후배들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동시에 내가 인턴을 통해 얻은 것이 정말 컸기 때문이다.
인턴을 하기 전까지 나는 그저 논문을 많이 쓰고, 결국에는 교수가 되겠다는 막연한 계획만 갖고 있었다. 왜 교수가 되고 싶은지,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다.
그러다 운 좋게 인턴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곳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이후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미국 기업에서 일하며 내가 있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그 꿈은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
사실 오늘날 공학 분야는 전공의 구분을 넘어 한 과목만 들여다봐도 그 깊이와 범위가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도 현실과 괴리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는 학문을 위한 학문에 머물러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반대로 너무 얕게 배워 산업 현장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경우다.
산업계는 이 간극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산학협력, 실습 제도, 인턴십 같은 연결 고리가 만들어졌고, 미국에서는 엔지니어로 취업하기 위해 반드시 인턴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불문율까지 생겼다.
하지만 인턴 제도는 잘 설계되지 않으면 쉽게 왜곡되고 악용되기 쉬운 구조이기도 하다. 경험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배우게 해주겠다'는 명분으로 단기 고용한 뒤, 실제로는 의미 없는 단순 업무에 투입하는 경우가 그렇다.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얻고, 학생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후배들에게, 돈 때문이 아니더라도 가능하면 급여가 높은 인턴 자리를 노리라고 조언한다. 그런 기업일수록 인턴을 장기적인 인재로 보고 진지하게 가르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인턴이 맡게 될 업무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충분히 복잡하고 의미 있는 과제여야 한다. 물론 몇 달 안에 완수하기 어려운 일은 곤란하지만,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업무는 인턴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둘째, 기업이 인턴을 교육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신입을 가르치는 것도 어렵지만, 인턴은 그보다 훨씬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가르치고 피드백하고, 평가한 뒤 정규직 채용까지 연결하는 일은 그 자체로 기업의 투자이자 책임이다.
가끔 한국 뉴스에서 실습 나간 고교생이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산업 현장에 투입됐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사망했다는 보도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그저 열심히 배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현장에 나갔을 그들의 모습이, 처음 미국에서 인턴을 시작하던 나의 젊은 시절 모습과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안전 불감증'이나 ‘책임자 처벌’ 같은 단편적 진단으로만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둘 다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문제의 핵심은, 준비되지 않은 산업 현장을 점검조차 하지 않은 채 인턴십과 실습 프로그램을 양적으로만 확대하려는 정부의 안이한 접근에 있다. 제도 확대라는 방향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취지가 실제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구조적 이해는 부족하다.
학생에게 학교에서 얻을 수 없는 실질적인 성장을 제공하고, 기업은 그 과정에서 인재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동시에 생산적인 기여까지 얻어내는 것. 이런 이상적인 인턴십은 복합적이고 정교한 시스템이다. 단순히 인턴 숫자를 늘리고, 몇 개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기업은 ‘가르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실무자는 ‘시간을 들여 피드백할 동기’를 가져야 하며, 산업계 전반에는 ‘교육은 노동력 수급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이것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며, 단기 정책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축적과 신뢰의 산물이다.
그런 토대 없이 제도만 앞세우는 것은, 청년에게는 헛된 기대를, 기업에게는 형식적인 부담만을 남긴다. 정책은 의도를 가질 수 있지만, 현실은 구조를 따른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사망이나 부상 같은 사고는 기본적인 안전 관리만 잘해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본질적인 문제는, ‘배움을 기대하고’ 산업 현장에 들어간 학생들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값싼 노동력으로만 소비되는 구조다. 이 구조는 아무리 제도를 확대해도 바뀌지 않는다.
정말로 살아있는 교육, 산업과 연결된 학습을 원한다면, 핵심은 ‘얼마나 많은 학생을 현장에 보냈는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 숫자는 무책임한 제도의 면죄부가 되기 쉽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배웠는가? 어떤 환경에서, 누구에게 배웠는가? 그리고 그 경험이 그들의 삶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가?
교육은 숫자로 측정되지 않는다. 인턴 제도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기회의 문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문 너머의 방이 ‘배움의 공간’인지, 아니면 ‘값싼 노동을 생산하는 공장’인지를 우리는 반드시 들여다봐야 한다.
교육이 산업과 만날 때, 우리가 가장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은 학생의 경험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