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의 집은 어디인가?
비행기를 타러 야반도주 스타일로 새벽 4시 반에 집에서 나와 도착한 취리히 공항에서 6시 30분 폴란드행 비행기에 탑승 전 핫쵸코 한잔 하러 들른 스타벅스에서 옆에 앉아있던 미국인 부부가 한참을 미소를 띤 얼굴로 우리를 관찰하다 말을 걸어온다.
"자주 듣는 질문이겠지만(you must get this a lot), 너희 가족 도대체 몇 개 언어를 쓰는 거야?!"
정말 자주 듣는 질문이다. 휴가를 가 다른 나라에 체류할 때는 물론이고, 스위스에서도 외식 중에 옆테이블에서 힐끗힐끗 쳐다보다 눈이 마주치면 물어오는 이 질문. 단골 질문이니 준비된 단골 대답을 읊어주고 우리 남편 잘하는 스몰 토크를 하다 서로의 성공적인 휴가를 빌어주며 게이트로 왔다.
2시간가량의 비행 후 공항에서 차를 렌트, 휴가지로 가는 길에 시부모님을 모시러 시댁에 가니 어머님이 들어와 아침 먹고 가자신다. 할리나씨는 9시에 도착할 큰아들 가족을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지만 느릿느릿 팬케익을 부쳤을 것이다. Naleśniki(나레시니끼)라고 하는 저 음식은 폴란드에서 오래전부터 먹던 음식으로, 프랑스의 크레페와 비슷해서 안에 무얼 넣느냐에 따라 한 끼 식사 또는 디저트로 먹는데, 아침에 먹을 때는 요구르트를 넣어 과일과 함께 먹거나 사과 소스를 넣어 김밥처럼 둘둘 말아먹는다.
예전에 스위스 우리 집에 오셔서 부치시는걸 어깨너머로 본 적이 있는데 은근히 반죽 하나하나 전 부치듯 부치는 일이 손도 많이 가고 우리 어머님 손이 느리셔서 아침 한 끼 먹으려면 그 옆에서 1시간도 넘게 보조셰프로 왔다리갔다리 했었는데, 우리 올 시간에 맞춰하시느라 부엌이 한바탕 뒤집어졌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외할머니가 해 주신 미역국, 대구전도 잘 먹고 폴란드 할머니가 해 주신 나레시니끼도 맛있다고 잘 먹는다.
우리 아버님은 폴란드 근. 현대 미술을 수집하시는데, 오랜만에 온 시댁 안을 둘러보다가 못 보던 그림이 하나 있는데 우리 아버님 스타일에 어울리길래,
"아버님, 이 그림이 멋있어요. 누구 작품이에요?"
하고 물어봤는데, 아버님의 친구분이 햄릿을 모티브 삼아 그리셨다는 그 그림을 가리키시며,
"나중에 다 네 거 될 거야. 지금은 못 줘. 내 무덤 옆에 줄 세워 놓을게." 하신다.
아놔, 누가 달라 그랬냐고요.(이 집 며느리 빚쟁이설) 아버님 블랙 유머는 아직도 흠칫흠칫 적응이 안 된다.
우리 가족은 지금 폴란드 그다니스크(Gdańsk)라는 도시에서 150km 떨어진 Woryty라는 곳으로 여름휴가차 가고 있다. 달리는 자동차 안에서 내내 라디오에서는 폴란드의 자랑 Chopin 쇼팽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라디오 채널 이름이 쇼팽 라디오로, 하루 종일 쇼팽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할리나씨는 쇼팽의 음악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따라서 흥얼거린다. 창밖의 폴란드의 풍경을 보며 듣는 쇼팽의 음악은 폴란드가 고향이 아닌 저기 멀리 아시아의 차도녀(저요)도 우수에 젖게 한다.
우리가 휴가를 보내기로 한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보다는 폴란드 가족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해 오는 곳으로 보이는데, 우리처럼 외국에 기반을 둔 폴란드인 가족들이 영국에서, 미국에서 폴란드에 있는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러 온 이들이 많았다. 자연 친화적인 곳이면서도 사람의 손이 많이 간 게 은.근.히 느껴지는, 대기업의 관리 스멜이 나는 곳이라 나도 마음이 편안하고 좋다. 전에 얘기했던가? 시댁이랑 여행 시에 숙소는 무조건 내 마음대로, 내 스타일로 고른다. 며느리 G 편한 세상. ㅎㅎ
라헬 2살 때 처음으로 시부모님과 폴란드 안에서 휴가를 떠났을 때 일이다.
부모님의 뜻을 따르자는 기특한 새댁(또 저요)의 의견에 따라 부모님이 정한 숙소에 도착을 했는데..
두둥!
아니, 이건!!
침대가 불편하고, 화장실이 낡았고 샤워커튼의 미세한 곰팡이는 그래도 눈 감아 줄 수 있었다.
(차도녀, 차도녀 하지만, 또 은근히 털털한 면이 있는 아주미임)
나를 못 참게 한건, 방 한가운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곤충 잡는 끈끈이..!
시골이라 곤충이 많은 건 자연의 섭리이니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어떻게 참아 보겠으나,
방 한가운데 달려있는 그들의 유해는 참을 수가 없었다.
남편은 자기의 어린 시절 모습이라며 방 안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을 안쓰러워(재미있어)하면서도
"아, 우리 엄마 이런 데를 하다니!"
한편으론 이런 모습이 부끄럽기도 한 눈치다.
이미 이렇게 된 것, 쿨한 아내 코스프레로(난 괜찮아) 일주일가량 벌서다 온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니 웃음 나는 추억이다. 끈끈한 여름의 추억. 오마이..
그 이후로는 부모님과 여행 시에 숙소 잡기 담당은 나다. 단, 할리나씨는 자연 친화적인 곳을 좋아한다. 사루비아님과는 달리 너무 고급진 곳에 가면 불편해하시는 폴란드 부모님 배려해서 자본주의의 손길이 대놓고 뜨아! 있는 곳보다는 커튼 뒤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곳을 선호한다. 당연히 며느리가 선호하는 곳과 부모님이 골랐던 그곳의 가격 차이는 상당하다. 하지만 1년에 한 번 시댁과 하는 일주일 여행, 나도 좋은 곳에서 행복한 얼굴로 보낼 수 있다면 이 정도 경비는 국민 총소득 세계 3위에 빛나는 스위스에서 온 우리 부부가 떠안고 갈 수 있다. 다달이 계좌에 임금을 꽂아 주시는 스위스 정부에 대하여 경례!
무더운 여름, 더위를 온몸으로 만끽하기에 가장 좋은 활동은 수영! 물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여름 휴가지 필수 조건이 수영장이다. 차도녀의 피가 흐르는 우리 아이들은 호수 수영은 벌레, 작은 물고기, 심지어 우거진 수풀까지도 무서워해서(그들의 어머니 탓 아님, 아주미 잠시 먼산..) 사방이 막힌 콘크리트 수영장 안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ㅎㅎ
할리나씨도 수영을 좋아한다. 팔을 빠르게 움직이는 게 불편해졌다는 어머님께 그래도 수영장 물에 몸 적시고 썬베드에 누워 계시라며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가자고 한 게 다행이다. 아들의 도움을 받아 배영을 시도해 보시다가 잘 안되는지 못하겠다며 그래도 물놀이라도 해서 좋다고 시원해하신다.
할리나씨는 10여 년 전쯤에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다. 다행히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약의 도움을 받아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상태이시지만 때때로는 힘겨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들들이 둘 다 멀리 살아서 케어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그래도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게 낫다고 하시는 어머님의 모정도 내 나라를 떠나 사는 게 성공한 삶인 폴란드의 현실도 짠하다.
할리나씨는 아들이 스위스에 자리 잡은 게 다행이라 생각한다. 결혼 후 얼마 안 되었을 때, 어머님께서 나에게 했던 이야기다. 폴란드에서 음악인으로 사는 현실이 너무 어려우니, 토마쓰가 스위스에서 일자리를 잡았을 때 너무 기쁘셨단다. 물론, 그때는 지금보다는 젊으셨고 시간이 갈수록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커지시지만, 자식이 본인들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부모의 염원이니 우리는 그걸로 만족한다고 하셨었다. 뭔가 듣고 있으니 우리 엄마, 아빠 생각도 나면서 코끝이 찡해졌었다. 뿌앵!
내가 지금까지 느낀 폴란드인들의 특징은, 머리가 좋고 재능이 있는 이들이 현실을 비관하며 불평불만을 하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당장의 내 삶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업그레이드시킬까 하는 고민보다는 스스로에게 피해자라는 프레임을 씌워 현실만 지탄하던 공산주의 시절 잔재가 남아서일까? 그중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좋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이들이 더 좋은 대우를 따라 다들 나라를 떠나니, 인재들을 붙잡을 길이 없는 안타까운 폴란드의 현실이다.
우리 어머님, 아버님도 지금 당장 휴가 중에 내일 어디 갈까? 맛있는 거 뭐 먹으러 갈까? 하는 생각보다 휴가 중에 있었던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을 푸틴이라고 부른 사건이 더 관심이 가고 얘깃거리가 끊이질 않는 빅이슈이다. ㅎㅎ
이 와중에 간 호숫가 산책 중, 우리 라헬이 발견한 간밤에 동물이 남기고 간 발자국 모양을 보며 이건 여우 발자국, 이건 흡사 늑대 발자국.. 구분하는 걸 보며 다시 한번 스위스 교육의 위대함을(시골스러움을) 느꼈다!
저녁을 먹으러 간 Olsztyn이라는 도시에서 옛 공산시절에 국민 카페였다는 Green이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사실 지금은 폴란드에 와도 큰 쇼핑몰, 우리가 아는 브랜드들, 시가지에 넘쳐나는 Michelin 가이드에 오른 식당들.. 우리가 아는 세상과 크게 다를 게 없는데, 이 카페는 국민들의 향수를 일으키는 몇 안 되는 공산시절의 잔재란다. 내 눈에는 오히려 특색 있고, 레트로 스타일의 식기와 인테리어가 내 남편 나라의 역사를 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카페에서 그 시절 갈아주던 과일 주스와 똑같은 주스를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데, 할리나씨는 예전 공산시절을 그리워한다. 어머님은 그 시절 넉넉하진 않아도 다 먹고사는데 걱정이 없었고 가족을 위한 시간이 많아 삶의 질은 지금보다 높았다고 회상하신다. 지금은 다들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쁘게 사느라 가족을 위한 시간이 줄고, 빈부의 격차가 커져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이가 많아졌다는 말씀이시다.
"흠, 삶의 질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 아닐까요? "
"우리 때는 (라떼는) 오후 3시에 퇴근해 오면 가족과 함께 점심을 먹고 (폴란드의 정식 점심식사 시간은 그래서인지 오후 3시경으로 그전에는 아침을 7시경, 11시경 두 번 먹는다)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 사람들은 항상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
호텔로 돌아와 들은 남편 말로는 어린 시절 어머님, 아버님이 주말에도 집으로 일을 가져와 일하시느라 자기랑 동생은 가까이 사는 사촌이랑 밖에서 놀기 일쑤였다니 어머님의 과거에 대한 기억의 미화가, MSG가 있는 것 같으나 그래도 공산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머님 세대가 많다니, 그때의 삶이 그리 힘들진 않았나 보다.
토마쓰에게 폴란드는 어떤 의미일까?
남편은 큰 의미가 없다 한다. 내가 태어나 자란 나라일 뿐. 뿌리를 내리고 가정을 이루어 사는 내 나라는 스위스란다. 그렇게 심한 말을! 한번 폴란드인은 영원한 폴란드인, 뭐 이런 거 없어? 하는 나의 말에
"응, 없어."
아놔, 이 남자를 우짤꼬.
이제는 폴란드어 설명하기 귀찮다고 딸들과 독일어로 대화하는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우리 딸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아, 맞아. 우리 할머니가 해 준 나레시니끼가 맛있었어.
우리 엄마, 아빠가 폴란드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우리를 던져놓고 놀러 나갔었지. (사실임)
할머니, 할아버지가 극장에 데려가서 피노키오를 폴란드어로 봤었지.
이런 기억을 남길 수 있어서 좋다.
휴가지에서 돌아와 시부모님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호텔로 체크인하러 가려는데, 어머님께서 부르신다.
할리나씨는 본인들의 식사비를 현금으로 주셨다.
"어머나, 안 주셔도 돼요. 이건 저희가 부담하기로..! "
"받아. 너희 돈 많이 썼지? "
우리가 계산할 때마다 가만히 계시길래 우리가 부담하기로 했었어도 우리 남편이 좀 안 됐다 생각하던 찰나였는데 반성이 되었다. 할리나씨는 다 계획이 있구나.
어머님, 아버님! 내일 고모님 모시고 다 같이 저녁식사해요. 며느리가 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