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위스 아주미 Aug 02. 2024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얼쑤!

 

지난 주말에는 남편의 동료인 미국인 스티브와 그의 부인 스위스인 가브리엘라의 집으로 브런치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스티브는 지휘자로 2년 전에 은퇴한 후 지금은 취미생활을  즐기며 그동안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들을 하나씩 실현하고 있다. 몇 가지를 열거하자면 프랑스에서 몇 달 살면서 프랑스어 배우기, 캠퍼로 느닷없이 목적 없이 떠나 발길 닿는 곳 여행하기,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등등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스티브라도 되는지 프랑스에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또 어느새 이태리에 있대고 아무튼 은퇴 후 삶을 진심으로 즐기는 우리 남편의 두 바퀴 띠동갑 친구이다. 우리 스티브 하고 싶은 거 다 해.


이 친구(?)와의 재미있는 일화 중 하나가 한 13년 전이였을까? 아직 현역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던 시절, 우리 남편과 함께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토마쓰가 악보였던가? 아무튼 무엇인가를 가지러 스티브 집에 갔었다. 그때는 서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지만 지휘자가 오라면 가는 것인 음악 세계의 룰대로 남편이 그의 집에 다녀왔는데, 몇 시간 후에 돌아온 토마쓰가 목이 마른 지 잠깐, 물 좀 마시고 라더니 물을 몇 잔 연거푸 꿀꺽꿀꺽 마시는 거다?


"스티브네 집 갔다 온 거 아냐?"

"어, 맞아."

"스티브가 물 한잔도 안 줬어?"

"응? 아니. 안주던데?"

"뭐야, 집에 온 사람한테 물 한잔도 안 주고. 스티브 안 되겠네."


내 남편한테 그런 푸대접을 하다니! 그는 몇 년 동안 나의 마음속의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그와 관계되는 일이 있을 때마다 난 아, 그 물 한잔 대접 안 하던 미국인?(뒤끝 작렬)이라며 허공을 향해 눈을 흘기곤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남편과 내가 함께 했던 연주를 들으러 왔던 그와 그의 부인 가브리엘라와 연주 후 스몰톡을 하는데 의외로 이야기가 재미있게 잘 통하는 것이다?!


연주 후 다음날, 남편에게 온 문자 하나:

'어제 즐거웠어. 너의 러블리한(밑줄 쫙) 아내를 드디어 실제로 만나게 되어 반가웠어. 언제 우리 집에 한번 초대하고 싶은데 언제가 가능한가?'

그렇게 시작된 그들과의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지금은 나는 미국인이 아니지만 미국인 삼촌이 있으면 저렇지 않을까 싶게(엉클 스티브) 때 되면 초대해서 미국식 바비큐, 브런치, 피자 등등 훌륭한 대접을 받고 온다. 토마쓰 말로는 그때 자기에게 물 한잔 안 줬던 걸 내가 두고두고 얘기하는 게 스티브한테 들렸나 보다며, 이렇게 몇 배로 갚는단다. ㅎㅎ 진짜로 들렸나? 오마이, 뜨끔!


이날은 일요일 브런치로 초대된 거라 아침에 눈뜨자마자 샤워만 하고 그 집에 도착해 보니, 스티브가 그 전날부터 반죽해서 숙성해 구운 비스킷과 자기 아이들에게 주말마다 해줬다던 진정한 아메리칸 팬케익(꼭 집어 Mississippi 스타일 팬케익이라고 했다)과 베이컨, 이미 한상을 떡 벌어지게 차려놓았다.



참고로 스티브는 우리 엄마보다 1살 아래이지만 미쿡식으로는 you, 너라고 부를게.

"어머나~! 너무 예쁘다. 이거 네가 직접 구운 거야? 오마이! 웬일이야!"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돌고래 탄성을 지른 후 샴페인 한 잔을 받아 들고(놀라지 마시라, 이곳에서는 브런치에 샴페인을 곁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고로 술은 모닝술) 집을 둘러보는데, 전에 왔을 때는 없던 미술품이 몇 가지 있었다.


"이거 너의 아버지 작품이야?"


스티브의 부인 가브리엘라는 성악가인데 그녀의 부친은 스위스의 미술가, Alfons Bürgler이다.

자연의 재료를 가지고서 인간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들의 집에는 그녀의 부친의 작품이 몇 개는 액자조차 하지 않은 상태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오다 주웠다) 걸려있다.

80이 넘으신 그녀의 아버지는 아직도 도전 정신으로 무장되어 작품을 수도 없이 제작하시는데, 그중에서도 새로운 스타일의 실험적인 작품들은 자기한테 주신단다. 나중에 이 작품들이 딸의 자산이 되리라 하신다는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네 라는 생각을 유럽 와서 5억 6천만 번째쯤 해본다. (정말 그렇다!)

홈메이드 아메리칸 스타일 비스킷과 팬케익
Alfons Bürgler 의 작품

난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아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삼시세끼녀가 밥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신나는 것도 있지만(제일 맛난 밥: 남이 해주는 밥) 그보다도 친한 이의 집을 방문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많은 걸 알 수 있어서이다. 가브리엘라는 어머니, 아버지가 물려주신 미술작품과 물건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소중히 하며, 수집하는 걸 좋아해서 집에 물건이 많은데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미적 감각으로 조화롭고 위트 있게 잘 진열해 두어 그녀만의 편안하고 시크한 스타일을 완성하였다.


스위스인의 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할머니한테 물려받은 과일 그릇 (1), 엄마가 쓰다 주신 20년 된 튤립 모양 샴페인잔(2), 엄마네 집에서 가져온 수프 단지(3) 등 오래된 물건에 담겨있는 역사를 설명해 주며 즐거워하는 그녀가 참 행복해 보인다. 이런 걸 보면 스위스인들은 작은 물건도 소중히 여기고 그걸 자손 대대로 물려주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참 좋아 보이는데, 말 나온 김에 다음에 한국에 가면 친정 집에 있는 500원짜리 동전으로 가득 찬 항아리라도 하나 들고 와야겠다. 동전은 바꿔서 슈니첼 사 먹어야지~

1,2,3
엄마 집에서 가져왔다는 오래된 물병과 빈티지 가구

비스킷에 발라 먹는 버터가, 팬케익에 곁들이라고 내어놓은 베리들이 유난히 맛있어 어디서 산거냐고 물으니 버터, 치즈, 잼, 그리고 꿀은 얼마 전에 다녀온 스위스 산골마을 Bergün이란 곳에서 그 지역 특산물을 파는 시장에서 사 왔고, 과일은 토요일에 서는 루체른 장에서 사 왔다 한다. 역시, 그래서 맛있었구나!  

처음에 스위스에서 적응이 안 되었던 게 여기는 시장에서 장을 보면 슈퍼에서 살 때보다 더 비싸다.

중간 상인이 없고 산지직송이니 더 싸야 하는 거 아니야? 하고 생각했는데 (그때의 나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책정된 그 가격은 일단은 대량 생산이 아니니 희소성의 가치와 슈퍼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으니 상품의 퀄리티의 측면으로 접근하여 높다는 게 나의 생각인데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이야기다. 더 맛있는데 물량이 많지는 않으니 더 비싸다는 것. 천잰데?


그 바탕에는 그런 시장의 가치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스위스인들이 있어서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 외에도 스위스인들은 그 지역의 작은 치즈농가, 잼을 비롯한 시럽을 직접 만드는 동네 빵집, 등등 소상들의 제품을 선호하고 높이 평가하는 걸 볼 수가 있는데, 대기업의 스멜이 나는 멀리서 온 제품보다는 우리 동네에서 나는 치즈가게 Urs 아저씨가, 빵집 사장 Barbara 가 만든 믿을 수 있는 잼을 높이 산다. 지역상권을 서포트하려는 취지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내가 사는 지역에서 생산되는 산물들이니 저장을 위한 조치를 할 필요가 없어 덜 Toxic 할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슈퍼에서 장을 보다 보면 어린아이와 함께 온 젊은 엄마들이 망고를, 키위를 사달라는 어린아이에게

"이거 너무 멀리서 왔다. 이 근처에서 나는 과일 한번 찾아볼까? "

하는 걸 자주 들을 수 있는데,  멀리서 온 과일에 아무래도 화학적 물질들이 묻어있을 테니 이 지역에서 자라난 농산물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젠 나도 모로코에서 왔다는데 쌩쌩해 보이는 무화과를 보면 엄마야, 너 왜 이렇게 멀쩡하니. 수상하다 수상해하며 이 동네에서 생산된 제철 과일을 찾는다.

맛있었던 산골 치즈가게의 버터와 내 팬케익 접시

이 집에 가면 식사를 마치고 꼭 하는 게 있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거실 한편에 있는 쳄발로에 앉아서 그날 쳄발로 위에 있는 악보로 한 곡 치기. 이 날의 음악은 음악의 아부지 바흐의 곡들로 스티브와 토마쓰가 번갈아 가며 한곡씩 치면서 바흐는 역시 천재네, 근데 좀 사악한 천재네(연주자들의 손꾸락 배려를 안 한다는 차원에서.. )뭐 이런 얘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서 어른들이 쳄발로를 치거나 말거나 가브리엘라가 꺼내온 종이와 사인펜으로 그림 그리기 삼매경에 들어갔다. 우린 우리 갈길 가련다.


잘 먹고 잘 놀고 갈 때가 되니 가브리엘라가 이리 와보라며 정원에 심어 놓은 허브들을 잔뜩 따서 만든 허브다발을 가져가란다! 지난번에 놀러 갔을 때도 사이드로 나온 보라색 감자가 너무 맛있다 했더니 몇 개 캐서 싸줬었는데, 그때 가져가서 정말 잘 먹었다고 인사를 했더니 또 뭘 싸주고 싶었나 보다. 그렇게 가져온 로즈메리로 고기도 재우고, 바질은 샐러드에 넣어 먹고, 민트는 물에 담가서 향으로 마셨으니 또 쏠쏠하게 잘 썼다.  

다음번엔 우리 동네에서 그들의 고무보트로 아이들과 호숫가에서 놀다 우리 집에서 코리안 바비큐를 하자는 공약을 날리며 헤어진 즐거운 일요일 오전이었다.


스티브, 가브리엘라 고마워! 잠시나마 오해해서 미안해. 그리고 이거 구글 번역기로 돌리지 마. 안녕!


이전 16화 그다니스크 여행 이렇게 해 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