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루체른 맛집
오늘은 한 번은 하고 싶었던 유럽 레스토랑에서의 에티켓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레스토랑 가서 밥 먹는 게 다 비슷하지 하겠지만, 주문을 하는 순서, 방법이나 지켜야 할 예절이 한국의 에티켓과 살짝 달라서 유럽 여행이나 출장을 앞두고 있는 이들이 한 번쯤 숙지하고 써먹어 보기 좋을 것이다. 이 아주미가 시키는 대로 하면 유러피언들이 저 동양인 뭐 좀 아는데? 매너가 아주 세련됐어라고 생각해서 이 구역의 인싸가 될 수도 있으니 훈남, 훈녀 될 마음의 준비들 하고 읽으시길. 참고로, 유럽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는 건 상당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니 나는 성질이 많이 급하다 하시는 분들은 일찌감치 맥도르나르드 라는 곳에 가셔서 22518원 주고 빅맥세트 드신다 해도 말리진 않겠다.
처음에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인내심 테스트 첫 번째 관문: 식당 문지방을 넘자마자 저돌적으로 빈테이블을 찾아 돌진하면 안 된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진상손님되기 십상이다! 노노. 일단 식당에 들어가면 누군가 안내를 하러 올 때까지 입술에 엷은 미소를 띠고 서 있자. 누군가가 다가와서는 Guten Abend, Guten Tag, 혹은 스위스에서는 스위스 독일어 Grüezi라며 인사를 해 올 것이다. 이때 눈을 마주치고(이게 중요!) Hello라고 가볍게 인사를 하자. 유럽에서는 손님과 점원과의 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니라(손님은 왕이 아니었다 한다) 대등한 관계이기 때문에 나는 고객님인디? 라는 갑의 마음으로 대하면 안 된다. 오히려 파리의 유명한 레스토랑의 점원들이 G들이 갑행세를 해서 유럽생활 초짜시절 깨갱 쫄았던 기억이 있는데, 쫄 필요도 없고 그저 서로를 인간 대 인간으로 대한다는 생각이 맞겠다.
자리를 안내받아 앉으면 담당 웨이터가 와서 메뉴를 주면서(이때도 인사를 해오면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꼭 하자) 무얼 마시겠냐고 물을 것이다. 우쥬라이크 썸띵 투 드링크. 이것은 식전주 개념인데, 점심때에도 식당에 가면 무조건 마실걸 먼저 주문한다. 이때 어버버 하지 말고 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료나 술 종류를 척 대면된다. 이 정도는 식당 걸어가는 길에 식사 전에 뭐 하나 마셔야지~ 생각하면서 룰루랄라 걸어가면 식당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도 가볍지 않을까?
식전주로는 저녁에는 여성분들은 샴페인이나 프로세코, 화이트나 로제 와인이 무난하고, 남성동지들은 맥주도 괜찮고 데이트시에는 여성동지가 시키는 것 같은 걸로 두 개 뭐 이러면 우리 또 심쿵하지.ㅎㅎ
이때 아직 잘 모르겠으면 물을 먼저 시키면 된다. 유럽은 물도 돈 주고 시켜야 하므로 어차피 시켜야 할 물, 어버버 하느니 이때 시켜버리자. 나의 주관적 감상으로는 음료 시킬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한 번에 딱 시키는 이가 뭔가 평소의 취향이 명확하고 주관이 뚜렷하며 자신감도 있어 보여 사람이 다시 보이던데 이건 식전주 하나로 사람 판단, 내가 오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패쓰.
내가 지켜본 바로는 이곳에서 여자가 맥주를 마신다는 건 우리가 소주를 대하는 자세와 비슷해서, 데이트와 같이 뭔가 상대방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격식 있는 자리에서 우아해 보이고 싶어 하는 여성들은 맥주를 잘 마시지 않는데, 반면에 뭔가 털털하고 반전매력을 뽐내고 싶은 경우에는 또 맥주를 이용해 이미지 메이킹을 하기도 하는 것 같다. 이건 전적으로 나의 주관적 감상이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궁금하시면 다음에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맥주를 마시는 여성이 있는지 한번 관찰해 보시라. 잘 안 보일 것이다.
가져다준 식전주를 맛있게 마시면서 무얼 먹을지 메뉴를 훑어보며 정하며 되는데, 먹고 싶은 메뉴를 정한 뒤 메뉴판을 닫아서 두면 그걸 신호로 알아들은 웨이터가 알아서 와서 주문을 받을 것이다. 이때 메뉴판을 활짝 펴서 손에 쥐고 이것들이 왜 이렇게 주문을 받으러 안 와. 아무리 목을 빼고 쳐다봐도 웨이터는 오지 않을 것이다. 아직 메뉴를 정하지 못해서 메뉴판을 보고 있으니 시간이 더 필요하다, 주문받으러 오지 마시오라고 당신이 신호하고 있는 것임!
메뉴판 닫아놓고 웨이터가 와서 무사히 주문을 마치고 난 후 음식을 기다릴 때의 그 기대감이란!
이쯤 되면 빵을 가져다줄 것이다. 아, 이 빵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먼저 밑의 사진은 루체른 Hofkirche 계단을 내려오면 있는 스위스 음식 맛집 Hotel zum Rebstock이라는 호텔의 식당 음식으로 이곳은 남편과 나의 13년째 단골 식당이다. 저 빵과 직접 만든 버터가 너무 맛있어서 샴페인과 버터 바른 빵을 먹다 보면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저 빵 한 바구니를 비우기 일쑤다. 식사량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닌 남편과 나는 보통 메인 디쉬를 다 먹을 때까지 빵을 건드리지 않는데.. 아, 이렇게 말하면 남편이 억울해하려나? 사실은 빵으로 배 채워서 정작 맛있는 걸 못 먹을까 봐 내가 빵을 빼앗아 가는데(토마쓰 뜻밖의 키토 다이어트) 이 집에서만큼은 나도 허리띠 풀고 빵과 버터, 샴페인으로 시작한다. 느무 맛있다! 우리 친정 부모님, 언니, 형부와 조카도 데려와서 맛있게 먹었었다.
https://www.rebstock-luzern.ch/restaurant-lounge
만약에 일행 중 누군가가 전채를 시킬 시에 유럽 식당에서는 보통 전채를 시킨 사람이 다 먹을 때까지 일행들의 메인 메뉴도 안 가져다준다. 그러다 보니 일행 중에 한 명만이 전채를 시켰다 치면 그 사람이 먹는걸 숟가락 빨면서 보고 있어야만 하는, 혹은 이 어색한 상황을 피하고자 계획에 없던 빵 먹방을 시전 하는 어색하고도 배부른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먹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부담 작렬인 상황이다. 그러니 주문 시에 대충 일행과 의논하여 4명이서 전채 2개를 나눠 먹는다거나 하는 계획을 세워 주문하는 게 좋다. 만약에 비즈니스 디너일 경우에는 일행들이 전채를 시키면 무조건 작은 것 하나라도 시키는 걸로! 자고로 대세에 묻어가면 중간은 간다 했다.
드디어 메인. 거의 다 왔다!
나는 이 집에 가면 항상 송아지 간 요리를 시켜 먹는데(오늘도 난 팬 놈 또 팬다) 감칠맛으로 무장한 짭조름한 송아지간 요리와 스위스 전통 감자요리 뢰스티(Rösti), 그리고 송아지간의 향이 캐릭터가 분명하기에 자기주장 분명한 와인과의 조화는 마치 순댓국에 소주처럼 그 어떤 수학공식과도 같은 나에게는 정답! 을 외치게 되는 맛이다. 송아지간의 식감은 예전에 한국에서 시장순대를 먹을 때 곁들여 주던 간과 허파의 중간정도 되는 식감인데 양고기, 곱창, 순대류를 좋아하시는 이들이라면 좋아할 것이다. 스위스 식당에 가면 내가 하도 간을 찾아 외치니(이 연사 외칩니다!) 나의 최측근들은 처녀귀신이냐는 멘트를 날리며 미리 찾아 알려주기도 한다. 아주미 귀신인디요?
간이 참 다네, 설탕이라도 넣었나. 감자는 역시 유럽감자. 뭐 이래가며 맛있게 먹고 있으면 담당 웨이터가 한번 와서 물어볼 것이다. 이즈 에브리띵 오케이?
이때 모니라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는 것도 좋.지.만!
만약에 추가로 주문하고 싶은 와인이라든지 물, 빵 기타 등등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이 주문해야 할 때이다! 롸잇나우! 송아지 간 맛이나 음미하고 허공을 보며 안일하게 와인을 홀짝거릴 때가 아니란 말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 시점 이후로 담당 웨이터 얼굴 보기가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미리 생각해 두었다가 이 때다! 얘기해야 하는 것.
유럽식당에서 식사 시에 뭐 하나 갖다 달라는데 오조오억만 년 걸릴 때가 많은데, 그건 인건비가 비싼 유럽의 식당에 일단은 종업원이 많이 없고, 그 적은 인원의 종업원들이 자기 담당 테이블이 있어서 아무한테나 주문하면 안 되고 내 담당 테이블 웨이터를 그 와중에 목 빼고 찾아서 눈짓을 해가며 불러야 하는데, 문제는 얘네들이 잘 안 쳐다본다. 일부러 그러는 거라는 업계의 전해져 오는 소문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처럼 지나가는 아무나에게 "여기요, 저기요!" 해가며 부르는 걸 무례하게까지는 아니지만 선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속마음 숨기지 않는 파리의 웨이터들은 "익스큐즈 미!:" 하고 큰소리로 부르면 껄렁하게 와서 딴 데 보며 퉁명하게 "왜? 뭐 필요한데?" 하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피치 못할 상황이라 웨이터를 불러야 하는 경우라면 손가락 두 개 정도 느슨하게 들어 올려서(차인표 스타일로) 눈이 마주치면 눈을 더 크게 뜬다든지 온몸으로 나 할 말 있소! 하는 분위기를 퐁겨주면 된다.
그러니 내 테이블에 왔을 때 타이밍은 이때! 인생은 타이밍!
음식을 한입 먹어보고 더 필요한 게 있는지, 와인은 아직 남았는지, 물이 더 필요하지는 않은지 얼른 생각해서웨이터가 이즈 에브리띵 오케이? 하러 왔을 때 대단히 여유 있게 모나리자 미소를 지으며(그놈의 모나리자) 와인 한잔 더 주겠어?라고 하면 아까 그 목 빠지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아놔, 밥 한 끼 먹는데 되게 복잡하네. 이래서 뭐 밥이 넘어가겠나. 난 그냥 라면 먹을래.
하시는 분께 이 아주미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도 여행의 한 이벤트로 생각하고 오케이 지금부터 나 유럽인에 빙의되어 행동해 보갔으.
이곳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해보면 융프라우 올라가서 컵라면 먹은 것만큼의 또 하나의 경험이 되지 않을까? 더구나 나를 대하는 유럽인들의 태도가 부드러워지는 건 핵이득.
그럼, 난 여러분들이 루체른 Rebstock에서 이덕화 아저씨 스타일로 부탁해요~ 하며 주문하는 상상하면서 바빠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