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위스 아주미 Jul 23. 2024

그다니스크 여행 이렇게 해 봐.

나의 시댁 폴란드

그다니스크는 남편의 본가, 나의 시댁이 있는 도시이다. 내 남편은 23세까지 이곳에서 살다 그 이후에 스위스로 유학, 일자리를 잡아 눌러앉게 되었다. 지금도 이곳에 가면 남편이 7세 때 기차를 타고 등교하던 거리, 중학생 때 공산정권에 대항하던 조선소의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하교를 하지 못하고 학교에서 기다렸던 곳, 남편이 대학시절 익명의 음악평론가로 일했던 신문사.. 곳곳이 남편의 추억이 서린 곳으로 갈 때마다 또다른 폴란드인 토마쓰의 역사와 마주한다.


Gdańsk, 우리 말로는 그다니스크라 표기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인스크, 밑의 받침 ㄴ을 살짝만 (공기반 ㄴ 반) 소리 내는 게 현지인들의 발음이다.

Gdańsk는 폴란드 북부 발트해 연안의 항구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던 도시이기도 하며 훗날 노벨 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될 레흐 바웬사가 조선소에서 자유 노조 운동을 이끌기도 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처음 갔을 때부터 나에게 Gdańsk는 뭔가 우수에 차 있는 도시로 다가왔다.


요즘도 그러나? 예전에는 유럽 여행하면 9박 10일에 유럽 10개국, 하루에 파리 갔다가 밀라노 찍고 로마 넘어가는 생각만 해도 다크서클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일정을 소화했었다. 나 고등학생시절에 우리 오마니도 그런 식으로 남편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곰국 한 냄비 끓여놓고 친구분들이랑 유럽을 도장 깨고 다녔는데(필수 기념샷: 여럿이서 어깨를 포개고 비스듬히 서서 찍은 단체사진, 각도는 45도)요즘에도 그런 여행 상품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일생에 한 번 유럽을 여행한다면 위의 여행 스타일을 이해하기도 하지만, 유럽에 사는 볼 것 다 본 아주미로서 폴란드는 서유럽을 다 둘러봐서 식상해진, 동유럽의 서정적이고 로맨틱한 (뭔가 좀 한도 서려있어 한 많은 우리 민족의 정서와도 맞음) 분위기를 맛보고 싶으신 분들은 좋아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시작하기 전에 이 아주미의 여행 스타일은 한 곳에 진득허니 머물면서 여유 있게 둘러볼 곳 둘러봐가며 그 동네 향수도 하나 사서 여행 내내 좀 뿌려주고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맛집 몇 군데 가서 먹고… 한국여행으로 치면 4박 5일 내내 종로구만 파기식의 (한놈만 팬다) 여행스타일을 선호하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Gdańsk 구시가지

첫날은 단연코 Gdańsk 구시가지를 걸어줘야 한다. 몇 번을 가도 갈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서유럽의 건물보다 폭이 좁으며 지붕의 모습이 화려한데, 그에 비해 건물의 색감은 튀지 않는 고상한 색상으로 뭔가 차분한 분위기이다. 구시가지 모습에서부터 뭔가 해맑은 느낌보다는 나 사연 있는 여자야 분위기를 팍팍 풍겨 이 도시의 역사를 추측하게끔 한다. Motlawa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옆으로 해적선도 지나가고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가 분리되어 위로 올라가는 진기한 구경도 할 수 있다.


현지인 남편과 다니다 보면 기대했던 거리의 역사, 이 도시에서 전개된 주요 사건의 개요보다는 대학 때 파티의 끝은 저 술집이었지, 저기 저 기차역에서 내려서 이 길로 요래요래 학교를 다녔었지 이런 지극히 개인적인 남편의 역사를 들을 수 있는데, 그것이 또 이 도시와의 내적 친밀감을 상승시키는 큰 역할을 한다. 역사는 네이년에게 물어보지 뭐. ㅎㅎ  문득, 광화문 광장에서 세종대왕을 가리키며 한글을 만드신 위대한 분이셔, 0.1초 설명 후 아, 맞다. 저기 종로빈대떡이 진짜 맛있는데. 굴 들어간 빈대떡이 진짜 실해. 막걸리랑 먹어야 찐인데! 라며 일장연설을 늘어놓던 내 지난날을 잠시 반성해 봅니다.


요렇게 돌아다니다 보면 허기가 질 것이야. 폴란드 음식은 뭐랄까? 독일음식과 러시아 음식을 섞어놓은 듯한데 Gdańsk는 특히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라 생선요리가 많고 그중에서도 가자미를 튀기거나 구워 코올슬로 같은 샐러드와 함께 먹는 요리가 한국 사람 입맛에 잘 맞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주문할 때 가격을 보고는 그 저렴함에 뭔가 해방감에 사로잡혀 하나 시킬 것도 두 개 시키고 와인도 한잔 마실 거 한병 갖고 와! 오바하다 보면 결국엔 스위스에서 외식하는 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 계산서를 받아 들고 아니, 왜지? 라며 의아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는데 (우리만 모르는 그 이유) 이번에 간 폴란드는 물가 상승이 피부로 느껴지게 전체적으로 가격이 많이 오른 상태였다.


 내가 폴란드에서 특히 좋아하는 음식은 가자미, Dorsz라고 쓰이는 대구 요리를 비롯한 생선 요리 외에 감자요리! 역시 주식인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감자요리가 특별히 맛있다. 우리나라 감자전처럼 감자를 갈아서 튀기듯이 부쳐낸 Placki ziemniaczane(플랏쯔끼라고 부르면 됨)는 같이 제공되는 사워소스 대신에 초간장으로만 바꾸면 영락없는 강원도 감자부침으로 혀 위에서 감자가 춤을 춘다. 플랏쯔끼를 시킬 때 Bigos를 같이 시키면 좋은데, 우리 남편이 김치찌개를 잘 먹는 이유이기도 한 이 음식은 김치볶음 같은 맛이 나서 감자전 위에 올려 먹으면 고소하고 짭조름하고 시큼하고..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이 다 들어있다. 식당으로는 폴란드 전통 요리를 먹고 싶으면 old town의 Stary Mlyn Pierogarnia https://www.pierogarnie.com/en/restauracje/old-mill-gdansk/ 혹은 https://zafishowani.pl/en/ 에 늘 가고, 맛있는 해산물을 먹고 싶으면 https://targrybny.pl 이 있다.

순서대로 가자미요리, 플랏쯔끼 그리고 비고쓰
Targ Rybny의 메뉴와 맛있었던 해산물 스프

점심을 먹고 나면 긴히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바로 보석 쇼핑! 구시가지의 Mariacka(마리아츠카) 거리는 발트해의 천연 호박으로 만든 보석 및 장식품을 파는 상점들이 쫙 늘어섰다. 내 개인적 생각으로 호박은 유럽의 풍만한 할머니들이 커다란 호박 목걸이를 푹신한 가슴에 살포시 얹어 걸고 다니는 이미지로 다가와 그리 탐나는 보석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 보는 호박은 우수에 찬 거리의 풍경과 잘 어울려서인가 기념품으로 하나쯤 사고 싶게 만든다. 남편과 처음 폴란드에 갔던 2011년에 샀던 예쁜 십자가는 아직도 그 은은한 빛을 내며 우리 집에 걸려있다.

Mariacka거리

구시가지를 다 둘러보았으면 Gdańsk의 떠오르는 핫플 Osiedle Garnizon 구역을 둘러보자. 이곳은 우리 남편의 어린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의 가족이 사는 곳이라 매년 방문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이 동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새로운 단지가 조성되어 힙한 가게들과 맛있는 식당들이 넘쳐난다. 올해도 우리 가족을 초대해 샴페인 대접을 한 친구의 말로는 3년 사이에 자기들이 사는 집의 시세가 2배나 올랐으며(샴페인 딸 만하구나 친구야!) 특히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의 돈 있는 사람들이 이 구역의 아파트들을 많이 사 더욱더 가격이 올랐다 한다. 한 나라의 아픈 전쟁이 어떤 이에게는 이득으로 작용하니 참 씁쓸하지만 예로부터 다른 나라의 전쟁을 계기로 부를 축적하는 나라가 생기는 건 아이러니한 현실(대표적인 예: 스위스). 푸틴의 폭망을 위한 건배를 하며 씁쓸한 마음을 달래 보았다.

사랑스런 친구들과의 Apéro

빠질 수 없는 게 또 먹는 얘기. 이곳의 식당들은 현지인들이 즐겨 가는 곳들인 만큼 폴란드 전통음식을 현대 폴란드인들이 먹는 스타일로 재해석한 트렌디한 스타일의 집들이 많았다. 왜 우리도 한정식 집에서 볼 수 있는 구절판, 잡채보다 일상에서는 김치찌개, 삼겹살을 더 먹지 않는가. 그처럼 현대의 폴란드인들이 먹는 스타일을 볼 수 있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간 이 식당에서 먹은 안심 스테이크는 너무나 부드러웠고 버섯 소스에 살짝 뿌려진 트러플 오일의 향긋함이 혀 위에서 버섯들이 춤을 추었다 한다(맛 표현 미스터 초밥왕에서 배운 게 다인 1인).

 https://ukrolika.pl

사진의 두 수프는 폴란드에서 여름철에 즐겨 먹는 차가운 수프로 하나는 요구르트 크림소스를 하나는 비트를 갈아 넣은 수프인데, 내 입맛에는 아직도 생소해서 남편이 먹으면 한 숟가락 정도 빼앗아 먹지 내가 시킬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폴란드 음식에는 딜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 딜과 피클의 향긋함으로 더운 여름철에 즐겨 먹는 음식이라며 남편이 신나 하며 먹는 모습을 보며 많이 드시게. 내가 해주지는 못하니.

내가 한국에서 냉면을 먹으며 갬동하는 모습이 이런 모습이겠구나.. 이런 생각도 해봤다.


폴란드 봄, 여름철에 가면 꼭 먹어야 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딸기! 한국에서도 스위스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달콤함이 있는 딸기로 우리 애들이 너무 좋아해서 매일 호텔 옆의 쇼핑몰에 가서 1.5Kg씩 사와 앉은자리에서 다 먹곤 했다. 폴란드는 진정 딸기 맛집! 이 딸기 먹으러라도 매년 여름에 와야겠다.

다음은 바닷가에 위치한 도시인 Sopot. 우리 남편이 어린 시절 자란 이 도시는 폴란드인들의 휴양지이기도 한 곳으로 발트해 연안에 위치한 도시이다. 지난해 여름 나의 친정 부모님과 함께 4박 5일 동안 바닷가 산책을 원 없이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부산처럼 바닷가를 따라 호텔들이 많이 들어섰지만 남편 어릴 때는 해변가 중앙에 Grand Hotel 하나만 우뚝 서 있었다 한다. 더구나 그 호텔은 공산당원 중에서도 배 나오고 높으신 분들만 묵을 수 있는 곳이라 일반인들은 들어갈 엄두도 못 냈던 곳인데, 작년에 왔을 때 우리 부모님을 그 호텔로 모시며 Sopot에서 자란 폴란드의 남자아이 토마쓰는 감회가 새로웠다 한다. 서울에 새롭고 화려한 호텔들이 많이 생겨도 우리 엄마 세대들의 마음엔 여전히 신라 호텔이 최고이듯이, 소폿인들의 마음에는 이 그랜드 호텔이 그런 의미인가 보다.

사위의 고향에 방문하신 나의 부모님

우리 남편의 고모님은 Sopot에 사시는데, 고모님의 추천으로 매 해 방문하는 현지인 백반집 스타일의 식당은 바로 이곳. https://www.facebook.com/cafe.stella.sopot/

시부모님 칠순 때도, 우리 친정 부모님 오셨을 때 폴란드 부모님과의 식사 때도 갔던 이곳은 신선한 재료로 깨끗하게 요리하는 곳이라고 고모님이 극찬하시는 곳이다. 폴란드 가면 한 번은 꼭 먹어야 하는 폴란드식 만두 Pierogi도 먹을 수 있고, 이번에 한 큰 발견: Kopytka라고 우리나라 수제비와 떡의 중간쯤 되는 식감의 사이드 메뉴로, 고모님이 한 번 맛보라고 주셨는데 반해 버렸다!

혹시 폴란드에서 음식 주문할 때 사이드에 이것이 보이면 한번 드셔보시라. 한국인이 사랑하는 맛이다.

Cafe Stella의  음식

폴란드에서의 2주가량 마지막날 밤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의 은사님이 하시는 연주회를 갔다. 구시가지의 강가에 있는 발틱 필하모니(프레더릭 쇼팽 필하모니)에서 들은 쇼팽의 첼로 소나타는 그 어디에서의 쇼팽음악보다도 아름다웠고, 77세라는 은사님의 손가락 돌아가는 상태에 나와 남편은 한 달가량 악기를 놓고 유럽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놀 계획에 들떠있던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잠시 깊은 반성을 하게끔 했다 한다.

연주회가 끝나고 나온 어둑해진 Gdańsk의 거리와 강에 떠 있는 선박들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워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는데 그것도 잠시, 연주회동안 시아버님과 놀고 있던 딸들을 데리러 가며,

라헬, 아멜리 무사히 잘 있었겠지? 하는 어머님의 말에 우리 부부는,

아버님 무사히 잘 계셨겠지?  아버님의 안녕을 더 걱정하며 아버님의 육아 해방을 이뤄드리고자 서둘러 아이들을 데리러 갔다. 호텔로 돌아가는 우리의 뒤에서 힘차게 손을 흔드시던 아버님이 유난히 행복해 보였던 건 손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인 거 맞죠? 그렇죠? ㅎㅎ

쇼팽 필하모니와 연주회 시작을 기다리는 할리나 여사님
꿈같은 Gdańsk 야경


이전 15화 할리나씨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