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 북부 여행 TMI
우리 집의 아침 풍경: 커피머신의 전원을 켜고, 환기를 시킨 다음 블루투쓰 스피커를 향해 말을 건넨다.
Hey, Google, Play Kings of convenience!
남편이 커피를 내리다 풋! 웃는다.
또 그 노래야?
응 ㅎㅎ 너무 좋아.
남편은 뭐 하나에 꽂히면 주구장창 그것만 하는 나를 신기해한다.
토마쓰는 새로운 노래, 새로운 기기, 신박하고 참신한 것에 흥미를 느끼는 반면, 나는 지금 당시 좋아하는 것을 질릴 때까지 듣고, 쓰고, 입고.. 진물단물 다 빨아먹고 충분히 즐겨서 내 것이 되면 그제야 뒤도 안 돌아보고 장렬히 졸업을 한다.
여행은 또 다른 이야기여서 안 가본 곳, 새로운 모험을 찾아 떠나는 걸 잠시 즐겼으나, 애들이 태어나고는 그 또한 달라졌다. 돌쟁이 아이를 데리고 분유, 기저귀 이고 지고 가는 휴가인지 극기훈련인지 모르겠는 여정에서 숙소부터 식당, 하나부터 열까지 찾아야 하는 여행이 그렇게 즐겁지가 않고 흡사 도장 깨기 미션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된 북이태리 가르다 호수 쪽에 있는 리조트.
인스타그램의 많은 폐해가 있지만, 순기능 중 하나가 광고가 아닌(대부분이) 개인의 솔직한 여행기나 리뷰를 볼 수가 있다는 것인데, 그 당시 내가 팔로우하던 언뜻 봐도 나랑 취향이 비슷한 어떤 어여쁜 이의 여행사진을 보고서,
저기다!
가보리라 다짐했다. 남편은 나만 믿고 따라와, 좋은데 데려가줄게 내가 가자면 굉장히 협조적으로 따라오는 편이라 아멜리가 딱 7개월 때, 시작된 우리의 여정.
아기가 7개월이니 우리 둘 다 수면 부족에 챙길 것은 왜 그리도 많은지, 이민 가는 스타일로 기저귀부터 분유, 우유병 세제에 솔까지 챙겨서 차를 탔는데 가르다 호수까지의 거리는 373Km로 아기 기저귀 갈아가며 쉬엄쉬엄 운전해 가면 6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가려니 한숨이 푹 나왔다. 이게 지금 잘하는 짓인가?
걱정과 달리 아멜리는 6시간 내리 자는 기염을 토해냈고, 우리는 아멜리 잘 때 100m 라도 더 전진하자.
앞으로~앞으로~를 외치며 (지구는 둥그니께) 5시간 만에 리조트에 도착했다.
도착한 호텔은 내가 예상했던 대로 적당히 아담하고 있을 건 다 있는 곳으로 우리 가족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여름 이후로 매년 여름 일주일을 이곳에서 보내며 그동안 수고한 우리 자신에게 포상휴가를 선사한다. 이태리 남부지방은 여름에 여행하기에는 기온이 너무 높아서 고생스러울 터인데, 가르다는 북부지방이라 기온이 올라가도 살만하다.
TMI1: 스위스 영토를 떠나기 직전에 있는 도시 Mendrisio에는 KFC가 있다.
우리 집에서 아침에 떠나 Mendrisio에 도착할 즈음엔 점심시간이 되어 있는데, 매 해 우리는 이곳에서 핫윙과 코올슬로를 맛나게 먹으며 여름휴가를 시작한다. 스위스에 잘 없는 KFC의 닭을 먹으며 나는 미국인이 아닌데 Sanders 아저씨의 특제반죽으로 튀긴 닭을 먹으며 고향 생각을 했다 한다.
스위스 국경을 지나 이태리에 들어서면, 아니 우리 집에서 유럽의 남북을 잇는 Gotthard터널 쪽 고속도로 진입만 해도 아, 휴가다! 기분이 들뜬다. 재밌는 건 이태리 국경을 넘자마자 스위스 고속도로에서는 얌전하던 차들이 이태리에서부터는 질주를 하기 시작하는데, 늑장 부리다가는 가차 없이 뒤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보란 듯이 웅! 소리를 내며 추월을 해대니 이 서울여자는 뭔가 편안한 것이 내 집에 온 것 같은 안정감을 느낀다.ㅎ
다들 텐트 밖은 유럽 보셨는가?
한국인들이 차를 빌려 스위스를 넘어 이태리를 여행하며 느끼는 감상, 겪는 어려움을 보며 나는 오히려 그들이 신기하고 아, 한국인들은 그렇게 느끼는구나. 유럽인의 시각으로 한국 여행객을 보는 참신한 경험이었다.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게 가슴 졸일 일이겠구나, 깨달음도 있었고 하루종일 호숫가에서 딱히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그들을 보며 그런가? 한국에서는 잘 없는 일인가? 돌이켜 보기도 했다.
그렇다. 이들은 휴가지에서 특히 물가에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다. 방이 20개 남짓 있는 우리가 머문 리조트에도 조식을 먹고 나면 중앙에 있는 수영장에 투숙객들이 하나 둘 수건이랑 책, 선크림 등을 들고 나타나는데 수영하고 누워서 책 보며 잠들었다, 일어나서 칵테일 한잔 마시고 그러다 점심 먹을 시간 되면 나와서 점심 먹고 다시 책 좀 읽고 누워있다 한숨 자고 일어나 수영 좀 하는듯하다 해질 때즈음 쓱 샤워하고 시내로 저녁 먹으러 룰루랄라 가는 게 하루 일과이다. 이상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끼니만 챙겨 먹는데 하루가 금방 간다. 그리고 이렇게 일 년에 일주일가량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런 계획 없이 수영하고 먹고 마시고 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치열하게 살아갈 충전이 된다.
하루종일 수영장 곁에서 빈둥대다 보면 투숙객들끼리 안면도 트고 스몰 토크도 하게 되어 일주일이 지날 때쯤엔 수영장 옆의 야외로 조식을 먹으러 가면 서로 굿모닝, 잘 잤니? 라며 간밤의 안부도 묻는 그런 둘도 없는(?) 사이가 된다. ㅎㅎ
TMI2: 호텔 지배인이자 오너가와도 관계가 있는 Chiara는 3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참 잘생겼다.
TMI3: 호텔방 중에 105호는 Wifi가 잘 안 터지는 단점이 있지만 로비에서 제일 떨어져 있어 조용하고, 1층에 있는 방들은 방 테라스에서 바로 수영장으로 나갈 수 있어 매우 편하다.
우리 부부는 자동차로 유럽 안을 여행할 때면 차 안에서 그 나라의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는데 이태리는 단연 오페라! 라디오만 틀어도 우리가 모르는 이태리 말이 솰라솰라 잠깐 나왔다 Verdi의 또는 Rossini의 귀에 익은 아리아들이 나온다. 이런 기후와 풍경에서 그래, 이런 음악이 나와야지. 오 솔레미오다!
가르다 호수는 이태리에서 가장 큰 호수인데 호수를 따라 크고 작은 도시들이 많아서 저녁때쯤 해빠지고 방문하여 저녁 먹고 돌아오기 좋은데 우리가 생각하는 좁고 언덕이 있는 돌길이 깔려있는 영화 Call me by your name에 나오는 딱 그런 로맨틱한 이태리 마을이다(실제로 영화의 배경이 북이태리 Lombardia주이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좋아하는 도시는 Lazise, Bardolino 그리고 Malcesine이다. Lazise에는 매년 가는 Pergolo라는 식당이 있는데, 와인 한잔 시켜서 여러 접시 시켜 먹는 와인바 컨셉으로 하나같이 평소에는 먹을 수 없는, 그 지역에서 직접 손으로 빚은 파스타를 먹을 수 있다.
https://www.instagram.com/pergolo.lazise/?hl=de
TMI4: 이 집에는 어른 위주의 와인바라 아이들이 먹을만한 음식이 많이 없다. 아래 사진 우리 아멜리 표정 보시라. ㅎㅎ
Malcesine에 있는 식당 Vidoc도 6년째 매 해 가서 먹는 맛집인데, 이 식당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스리랑카 부부가 하는 식당으로 어쩜 이리 이태리식에 동양적인 요소를 적당히 한 스푼 가미 맛깔나게 잘 요리했는지 갈 때마다 감탄한다(나 원래는 퓨전요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임). 이곳에 갈 때마다 하는 게 또 하나 있는데, 남편과의 대판 한판. ㅎㅎ
그동안 갈 때마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애기 유모차 끌고 자갈로 된 언덕길을 올라가려니 둘 다 체력도 방전되고 신경도 날카로워져 여행 중 터질 것이 항상 이 식당 앞에서 터졌었는데, 지나고 꺼내보는 사진은 참 모두가 행복해 보이니, 여러분 이래서 인스타를 믿으면 안 됩니다!
싸우고 분위기 탁한 와중에도 한 입 먹고 으잉? 피식 웃게 되는 곳으로 6년째 가니 주인부부도 이제는 우리를 알아보고 또 왔네? 애들 많이 컸다! 하면서 반가워한다.
작년이 처음으로 우리 부부가 이 식당 앞에서 사네마네 싸우지 않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저녁을 즐긴 의미있는(?) 해이다.
TMI 5: 이 레스토랑의 화장실 물이 얼음장처럼 차고 시원하다.
TMI 6 :Vidoc의 사장님은 아마추어 사진작가이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미적 감각이 있는 이들이 미식에도 능하다.
https://www.instagram.com/vidocmalcesine/?hl=de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곳은 우리 호텔 바로 근처에 있는 이태리 어머니와 자매가 운영하는 식당 La cross. 정말 최고다! 이태리 할머니가 장인의 정신으로 빚어 만든 파스타, 신선한 육회를 고소한 올리브유에 버무려서 트러플을 한 바가지 덮어 주는 타르타르, 홈메이드 티라미수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맛있고 평범한 메뉴인데 범상치 않고 특별하다! 여기는 우리 엄마아빠, 언니형부 다 데리고 가고 싶고 생각나는 곳이다.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이태리 북부 Gardasee 편이었습니다. 원래는 도시위주로 소개하려 했었는데 먹는 얘기로 시작해서 먹는 얘기로 끝난 것 착한 사람들은 다 모른척해 주시길. 앞으로 이곳을 방문할 예정이거나 방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아주미는 언제나처럼 바빠서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