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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스 아주미 Oct 22. 2024

한국인이 못한다는 그 한 가지

유러피언을 보며 한국 아주미가 짱나는 순간

몇 해 전에 TV 프로그램 텐트 밖은 유럽이 방영되던 때, 나의 친언니 한빛사님께서(우리 가족들이 언니를 부르는 별명, 이유는 다음 기회에) 그 프로그램을 보고선 나에게 한번 보라며 추천했다.

그 프로그램을 보며 보통의 한국인이 느끼는 것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아, 내가 이제 까만 머리 유러피언이구나.


현타가 세게 왔었다.


뜨거운 여름날 작열하는 태양에 피부가 따땃해졌을 무렵 빙하물이 녹은 호숫가에 뛰어들었다 나와 몸에 송골송골 맺힌 물기가 말라가는 것을 느끼며 비스듬히 누워 읽는 책. 하루종일 이 행위를 무한 반복하는 것. 이것이 내가 느끼는 여름날의 낭만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그게 신기한가 보다. 어떻게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누워있어?

하루종일 딱히 하는 일 없이 즐기는 우리의 여름 휴가

다음 중 벌칙으로 생각되는 것을 고르시오.


1. 버스를 타고 내려야 할 정류장에 버스가 완전히 멈춰 설 때까지 자리에 앉아있기.

2. 식당에서 종업원이 주문받으러 올 때까지 부르지 않기.

3.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는데 앞차가 출발 안 할 시에 경적 울리지 않기.

4. 조카가 입에 토마토소스를 잔뜩 묻히며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데 입 닦아주지 않고 스스로 할 때까지 기다 려주기. 입 닦아 말하기 금지.


모두 다라고? 딩동댕, 당신은 본투비 코리안, 뼛속까지 한국인임을 입증하셨습니다.


한국인은 템포가 정말 빠르다. 다르게 말하면 유럽인들은 느려터졌다. 좋게 말하면 여유가 있고 쓴이 흑화 되어 나쁘게 말하려면 느려터져 속도 함께 터진다.

전에 내가 언급한 적이 있는 각 나라의 템포 기억하시는가?

내가 유럽인들한테 짱나는 순간 대부분은 이 템포가 너무 느려 속 터질 때이다.


그놈의 여유여유여유!


여유 못 부려 죽은 조상이라도 있는지 이 유러피언들은 그렇게 여유에 목숨을 건다.

아니지, 그러려는 노력조차 필요 없을 만큼 여유 9단이 몸에 탑재되어 보는 한국인 답답해 몇 번 꼬르륵 넘어간다.


내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예 하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잔뜩 봐 계산대로 가서 긴 줄에 합류했는데 계산하고 있는 사람과 계산대 점원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서로 안면이 있는 사이인지, 잘 지냈어? 응, 너는?으로 시작해,


가족들 다 잘 있지?

그럼, 이번에 손주가 태어나서 화요일마다 손주 봐주고 있어.

오우, 잘 됐네. 축하해.


여기까지는 계산하며 느긋하게 하는 대화.

`아, 저 집에 손주가 태어났구나. 축하할 일이네. 할머니 콩그레츄레이션' 하며 듣고 있었다.


계산 어떻게 하겠어?

현금으로 할게.


그제야 아주머니는 가지고 있던 쇼핑수레 앞쪽에 있는 지퍼를 도로록 열며 지갑을 꺼낸다.

한국인(저요)은 벌써 대충 머릿속으로 암산해서 자기 차례쯤엔 금액에 맞춰 현금을 손에 들고 있었을 거임.


어디 보자, 50프랑짜리랑 34센트 나 있어. 줄게, 있어봐 봐.

또르르 동전 지갑에서 동전을 계산대 위에 쏟으며,

 20.. 30.. 4 센트 있나? 아니 없네, 그냥 10센트 하나짜리 줄게. 얘가 어디 있나.


계산이 끝나도 아주머니는 가지 않고 서서 대화한다.


그래서 아기 보는 게 보통 일이 아니야. 우리 며느리는 허리가 아파서 아기를 잘 못 안아줘서 내가 많이 안아주려 하는데, 나도 이젠 힘들어.


(아, 저 집 며느리가 허리가 안 좋구나. 고생하네)


그러면 며느리 물리치료 다녀야겠다.

그럼, 다니고 있지. 저기 Löwencenter 쪽에 좋은 사람이 있어. 중국인이야.


(아, 역시 물리치료는 중국인이지... 근데 아주머니 안 가세요?)


그녀는 갈 채비를 하면서 또 덕담 한마디를 덧붙인다.


당신에게 분더쉔, 원더풀 (Wunderschön)한 하루가 되길 빌께.

응, 고마워. 당신에게도 같은 걸 빌께.

고마워.

나도 고마워.


(두 분 여기서 뭐 하세요?)


이쯤 되니 뒤에 줄 서 있던 이들도 너무하다 싶었는지 에헴, 기침으로 눈치를 주는 이가 있다.


그제야 줄 쪽을 보며


어머나, 뒤에 줄이 기네. 이만 갈게.


하며 갑자기 서두르는 척을 하며 그 와중에 아까 꺼냈던 그 지갑을 수레 앞주머니에 또 넣는다.

지퍼 도로록 닫고 안녕! 하며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


물론, 모두가 이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독일어를 쓰는 서유럽에서 종종 마주치는 일이다.

이 경우 뒤에 기다리는 사람에 대한 배려란 없다. 딱히 뒤에서 재촉하는 사람도 없다.

다들 마음속으로는 안가슈? 할지언정 목소리를 높이거나,

이봐 아줌마, 뒤에 사람들 생각 좀 하슈 같은 멘트 없이 운명론적인 삶을 사는(이건 내 생각) 유러피언들 답게 다들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 서 있다.


또 한 가지 예는 동네에서 이웃을 마주쳤을 때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안면 있는 이웃과 마주쳤을 때 안녕하세요 한마디 하고 쓰윽 지나쳤을 텐데 이곳에서는 꼭 멈춰 서서 안녕, 잘 지냈어? 하고 몇 분 선채로 스몰톡을 한다.

이 과정에서 몇 십 년이 지나도 모르는 이와 하는 이 대화가 어색해서 가끔 나의 행동거지에 버퍼링이 걸리기도 하는데, 분명 얼굴은 반가워하며 이야기하는데 발은 이미 목적지를 향해 우향우 돌아가 있다.  


이들은 어쩜 이리 여유가 있는 걸까? (느려터진 걸까?)


 여름에도 건조하고 그늘에만 들어가도 선선해,  겨울에도 해가 나면 따뜻해서 에어컨을 찾아 뛰어들어가지도 칼바람을 피해 실내로 피신해야 하지도 않는 기후, 탄탄하게 성장한 경제 덕분에 미친 듯이 허리띠를 졸라매지도 집에 있는 금을 들고 어디론가 가 홀라당 팔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건가?


제일 중요한 것은 가르침인 듯하다고 혼자서 결론 내렸다. 어릴 때부터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남 배려하느라 옷가지를 들고 뛰쳐나와 밖에서 주섬주섬 입게 하기보다는 본인의 일을 본인의 속도대로 하게끔 기다려주고 재촉하지 않는, 가정에서 엄마의 교육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우리 애들 어릴 때도 느꼈지만 놀이터에서도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이 엄마들은 아이에게 얼른 하라는 재촉을 절대 하지 않는다. 아이가 낙엽을 가지고 놀면 노는 대로 돌멩이를 주워야 하면 또 그런대로 기다려주고 아이가 스스로 일을 끝마칠 때까지 옆에 서서 가만히 기다린다.


가끔 레슨에 들어오는 엄마들도 레슨이 끝나고 아이가 악기를 챙기고 겉옷을 입는 순간에 단추 하나, 지퍼 하나 천천히 채우고 악기 케이스 한쪽, 또 다른 쪽 멜 때까지(본인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지켜보는 사람은 1초가 1분처럼 지루하고 앞으로 돌리기 하고 싶은 순간이다, 아니면 내가 이상한 것인가?!!)

아무리 선생과 다음 레슨 학생이 기다리고 서 있어도 빨리 하라는 말로 재촉하지 않는다. 혹시나 다음 스케줄이 있어서 서둘러야 할 때도 아이에게,


우리 서둘러야 해. 하는 말 조차에도 여유가 뚝뚝 떨어진다(느려 터졌다).


어릴 때 집에서 빨리하라는 말을 들어본 일이 없는 이들이라 커서도 모든 일을 여유 있게, 자기의 속도에 맞게  처리하고 혹여나 누군가가 재촉하는 제스처나 말을 했을 때 위협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이들에게 여유라는 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자 나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도구의 하나로 길을 멈춰 서 다른 이가 먼저 갈 수 있도록 양보하는 것, 급하지 않은 품위 있는 행동이 오래전부터 몸에 밴 마치 나의 클래쓰를 나타내는 수단 정도로 생각된다.


누구는 에르메스 백으로 본인의 클래쓰를 드러내고 누구는 좋은 차, 좋은 대학교 졸업장으로 나타낼 수 있는 클래쓰를 몸에 밴 예절, 매너로 드러낸다고? 좀 멋진데?


그리하여 이 어설픈 유러피언(저요)은 한국의 빨리빨리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새벽 배송의 편리함 앞에서 새벽에 일어나 배달하는 이들의 인권은? 이런 소리나 해가며 불편해했다 한다.


그러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나 점심을 먹으러 차를 가지고 취리히에 갔던 때,

토요일 오전의 날씨 좋은 취리히는 사람과 차로 터져나갈 지경이었고 약속시간에 늦은 나의 급한 마음과는 달리 신호등의 초록불은 약 3초 후에 빨간색으로 바뀌어, 사실상 차가 막히는 건 아닌데 신호 때문에 도로에 차들이 꽉 밀려있었다.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마자 쌩하고 나가도 차 2대 정도만 통과하고 나머지는 또 기다리는 신세가 되는 심장 쫄깃해지는 이 긴박한 상황에서 운전자들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는지 다들 앞 차 빨리 가라며 빵빵거리고 난리였다.


잠깐만, 이 상황 어딘가 좀 익숙한데? 나 지금 서울인가?


후훗, 늬들도 별 수 없구나?!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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