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렌터카 여행기 23 온천, 폭포, 호수, 출렁다리, 그림젤패스
9일 차 아침이 밝았다. 어제 융프라우에 다녀온 피곤이 남아있어 오늘은 아침 첫 일정으로 온천에 가기로 했다. 오늘도 기운이 뻗치는 알프스의 산을 뒤로하고 외부 손님에게도 온천을 오픈하는 호텔 벨베데레로 향했다. 원래는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아델보덴 캠브리안 호텔의 온천을 가려고 했는데 오후에 브리엔츠 호수와 그림젤패스를 갈 수 있을 것 같아 가까운 벨베데레 호텔로 가기로 했다. 수영복만 챙겨가면 되고 안에 과일과 차,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휴식하는 방도 있고 습식과 건식 두 종류의 사우나가 있다. 시설이 아주 깨끗하고 수건도 제공하고 있어서 좋았다. 아침이라 손님도 없어서 우리 가족이 전세 낸 것처럼 풀과 수영장, 사우나를 오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분 보충이 필요할 때 비치된 과일을 먹으니 아주 상큼하고 그동안의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https://maps.app.goo.gl/uYauoEoXkw1Tq2QX8
모두가 반짝반짝한 얼굴을 하고 스파에서 나오니 호텔 앞마당에 작은 놀이터와 나무 벤치가 있는데 글귀가 적혀있었다.
Kinderlachen ist MUSIK für das Herz.
아이들의 웃음은 마음(심장)을 위한 음악이다.
출산율이 끝 간 데 없이 떨어지고 있는 한국에서는 더 이상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기가 힘들다. 안 그래도 아이들이 줄어드는데 일부 한국 사람들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맘충'이라는 키보드로 적기도 싫은 별명까지 지어 부르며 더욱 아이를 낳기 힘든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런 별명이 외국에도 있을까? 아이는 아직 불완전한 인간이다. 공공시설에서 조용히 앉아만 있기 힘들고 먹을 땐 주변에 흘리며 무언가 불편하거나 힘들면 소리 내어 운다. 아이가 비행기 안에서 운다면 가장 힘든 사람은 누구일까. 주변의 탑승객, 승무원, 기장님? 아니다, 부모다. 비행기 안의 모두에게 죄인이 된 기분으로 어떻게든 아이를 달래려고 부모는 식은땀을 흘린다. 만약 부모가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제지하기 위한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문제겠지만 최선을 다해서 아이를 달래는 부모를 보면서도 속으로 '운이 없네. 아기가 비행기에 타다니.' 또는 '왜 어린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와서 남의 식사를 방해하나.'라고 생각해 보신 분들은 반성하길 바란다. 나는 이런 상황에 처하기 싫어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해외여행을 올해에 처음 시도했다. 둘 다 취학연령이 될 때까지, 내가 죄인도 아닌데 죄인이 되는 상황이 안 생길 때까지 기다렸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외식도 최대한 자제했고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수유실이 있는 곳으로만 외출을 했다. 언제부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게 이렇게 어려워졌을까. 한국에서는 마음을 위한 음악,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기가 갈수록 힘들다.
가족들의 에너지 레벨과 날씨에 맞춰 일정을 조정해야지 했는데 모두 에너지가 넘친다. 그래, 한번 가보자. 온천에서 나와 기스바흐 폭포를 보기 위해 출발했다.
기스바흐 폭포 https://maps.app.goo.gl/XnSVYd4jDqLEi6ZH9
기스바흐 자연공원 주차장 https://maps.app.goo.gl/buuhRU9vEMCDvFKo9
이 주차장은 시간에 관계없이 10프랑의 주차료를 내야 하는데 그래서인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주차가 된 차가 좀 있었다. 주차장 건너편 공터는 주차료가 없다는 블로그 글이 있었는데 실제로 가서 보니 과연 주차장 반대편 공터에는 돈을 내라는 파란색 주차 표지판이 없었다. 워낙에 관광객이 없는 시즌이고 우리가 간 날은 그랜드 호텔 기스바흐가 문을 닫는 날이라 아주 조용해서 공터에 주차하고 다녀왔지만 여름에는 관광객이 많다고 하니 유료 주차장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기스바흐 폭포는 14단계에 걸쳐 떨어지는 길이가 500m인 폭포로 Faulhorn 지역의 높은 계곡에서 브리엔츠 호수까지 흘러내린다. 주차장에서 숲길을 따라 산을 조금만 올라가면 기스바흐 폭포를 만날 수 있다. 산은 가을로 가득 차 있었다. "얼마나 더 가야 해요?" 묻는 아이들의 말에 사실 나도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모르니 "어! 엄마는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얘들아, 폭포소리 들리지 않니?"라고 대답하며 뒤서거니 앞서거니 산을 오르다 보니 폭포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오! 길이 폭포 안으로 통하네. 시원한 물줄기가 떨어지는 폭포 안으로 들어가니 물소리가 점점 커진다. 손을 내밀어 물도 만져보고 떨어지는 물도 몸으로 맞아가며 폭포 안을 통과해 폭포 아래 방향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
폭포를 따라 내려오니 계단식으로 떨어지는 폭포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량이 작아 아래로 내려올수록 폭포의 규모는 작아졌지만 단풍이 가득한 산속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을 보고 있자니 마음도 같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뒤로는 브리엔츠 호수와 그랜드 호텔 기스바흐(https://maps.app.goo.gl/1QmiAcKFwRdpsyCM9)가 보였다. 동화 속 삽화에서나 볼 법한 호텔과 에메랄드 색의 브리엔츠 호수가 살짝 보이고 뒤로는 알프스 산맥이 둘러져 있는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폭포 아래에서 낙엽이 깔린 길을 따라 10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브리엔츠 호숫가에 위치한 그랜드 호텔 기스바흐에 도착한다. 가까이서 바라본 브리엔츠 호수의 색은 더 신비로웠다. 알프스 산의 돌에 석회성분이 많고 빙하가 녹은 물도 석회성분과 미네랄이 많아 이런 에메랄드 색을 띠게 된다고 하는데 이 호수와 둘러싼 알프스의 산을 보니 정말 스위스는 '산과 호수의 나라'라는 말이 딱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천욕 후에 하이킹까지 했더니 배가 고프다는 아이들 말에 혹시 몰라 챙겨 나왔던 빵과 우유를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사실 여기 더 앉아서 호수와 산을 바라보며 쉬고 싶었는데 오는 길에 다음 목적지인 출렁다리에 대해서 얘기해 줬더니 빨리 다리 보러 가자며 아이들이 성화여서 아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