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창문 바로 앞으로 보이는 설산에 나의 현실감각이 저 멀리 달아난다.
바로 앞의 도랑에서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산은 해를 받아 점점 황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원래 오늘은 아침 먹고 푹 쉬고 융프라우는 내일 갈 계획이었으나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보니 오늘 날씨가 보통이 아닐 거란 예감이 들었다. 여행을 계획하며 봤던 많은 여행선배들의 실패담, 곰탕뷰의 사진이 기억나며 내일 만약 날씨가 흐리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날씨 어플과 웹캠을 한번 보자. 여기 아래에서는 날이 맑아도 고도가 높은 융프라우는 날이 흐린 경우가 많아 웹캠으로 날씨를 확인하는 게 필수다.
오늘 가야겠다! 부랴부랴 마시던 커피를 원샷하고 선크림, 선글라스, 귀마개, 장갑, 모자, 패딩으로 중무장하고 숙소를 나섰다. 융프라우를 가는 곤돌라+기차 비용은 엄청나게 비싸다. 이 비싼 돈을 지불하고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온다면 얼마나 원통하겠는가. 융프라우를 가는 방법도 티켓도 매우 매우 매우 다양하다. 기차만 타고 갈 것인가, 곤돌라 + 기차로 갈 것인가, 융프라우 vip 패스를 사용할 것인가, 구간권을 사용할 것인가, 스위스 패스를 사용할 것인가, 하프페어 티켓을 사용할 것인가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는 각자의 여행 시기와 목적과 스타일이 다 다르기 때문에 스스로 공부하시길 바란다! (정보를 제공하는 여행기의 필자로서 무책임한 발언인 것 같지만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다 다르기 때문에 이것이 베스트다라고 콕 집어 얘기할 수가 없다.)
하지만 모두에게 적용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동신항운>이라는 회사의 할인 쿠폰이다. 대한민국 여권이 있는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할인쿠폰으로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할인쿠폰은 이메일로 오고 가이드북은 집 주소로 받아볼 수 있다. (현재는 2024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라 가이드북 배송은 안 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여 요약한 팁을 좀 드리자면 각종 액티비티를 하고 여러 산봉우리와 마을을 둘러볼 예정이라면 vip패스를 사용하는 게 맞고 우리처럼 오로지 융프라우만 다녀올 계획이라면 구간권을 사용하는 게 좋다. 여행시기에 모든 곤돌라와 푸니쿨라 및 산악열차가 운행하고 여행자의 체력이 넘치고 스릴도 즐기며 융프라우 오픈런도 가능하다면 vip패스를, 10세 이하의 아이를 동반한 가족 또는 70세 이상의 어르신을 동반한 가족 또는 우리처럼 많은 구간이 정비에 들어간 시즌이라면 구간권을 사용하여 느긋하게 융프라우만 돌아보고 오길 권한다. (융프라우는 시즌에 관계없이 365일 갈 수 있다.) 우리는 동신항운 쿠폰을 사용하여 어른 155프랑 X 2, 어린이 20프랑 X 2 총 350프랑(56만 원)의 구간권을 구입하였다. 솔직히 계획할 때부터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날씨가 좋지 않거나 올라가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가지 않으려고 했는데 웹캠으로 보이는 융프라우의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융프라우요흐 Jungfraujoch역은 해발고도 3454m,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기차역이다. 따라서 고산병을 예방하기 위한 멀미약과 달콤한 젤리, 쵸코렛을 꼭 챙기시길 바란다. 인천공항 약국이나 스위스 현지에서도 고산병 약을 구매할 수 있지만 어른은 먹을 수 있고 아이들은 먹을 수 없으니 아이 동반 여행의 경우 한국에서 일반적인 멀미약을 준비해 가시길. 인천공항에서 파는 약도 이부프로펜(진통제) + 혈행순환개선제(은행나무 추출액) + 고용량 비타민의 조합으로 진통제 외의 약은 영양제나 다름없다. 사실 고산병도 날씨만큼이나 미리 예측할 수 없는 요인으로 약을 안 먹고도 아무 증상이 없는 사람도 있고 약을 먹어도 심하게 급성 고산병이 오는 사람이 있다. 만약 두통, 메스꺼움, 어지러움과 같은 고산병 증세가 느껴진다면 바로 하산하여 고도를 낮추는 방법밖에 없다.
사실 융프라우는 한국 사람들이 워낙에 많이 가는 곳이라 조금만 검색해 봐도 엄청난 양의 정보가 쏟아져 나온다. 오죽하면 한국사람 전용 할인쿠폰과 신라면 제공 서비스가 있을까.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는데도 거의 모두 한국사람이었다. 자연스럽게 뒷사람이 앞사람의 사진을 찍어주는 상부상조의 문화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비수기인 데다 아침 일찍이라 조금 기다리고 사진도 찍고 많이 춥지 않아서 아이들은 정상에서 한참을 눈을 가지고 놀고 나는 풍경을 원 없이 눈에 담을 수 있었다.
1. 모두가 찍는 바로 그 포토존 2. 부끄럽지만 남겨본 키스신 ^//^ 딸이 찍어줌 ♡ 유럽의 지붕, Top of Europe. 아이거 익스프레스 곤돌라와 산악열차를 타고 누구나 단숨에 오를 수 있는 곳. 장엄한 산맥과 깨끗한 눈이 덮인 산봉우리를 만나는 곳. 그 웅장함과 용맹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가슴을 펴고 슈퍼맨 자세로 한껏 폐 끝까지 공기를 불어넣고 내쉬었다.
아이거 익스프레스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며 찍은 사진 1. 아이거 글렛쳐역(2320m)에서 2. 융프라우요흐역(3454m) 고원지대 3. 산 봉우리 위로 스핑크스 전망대(3571m)가 보인다. 한참을 고원지대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서 피칸투스 라운지에 가서 신라면을 먹었다. 아이들이 진라면 순한 맛까지는 먹는데 신라면을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추운데 있다가 들어와서 인지 습습하하 하며 열심히 먹었다.
출처 - 동신항운 가이드북 배부르게 라면을 먹고 가져온 간식거리도 좀 먹은 뒤 2번부터 돌아보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고원지대의 스위스 국기와 함께 사진 찍는 사람이 늘어나니 도착하면 9번으로 먼저 가서 사진부터 찍고 나머지 장소들을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약을 먹었지만 3000m 넘는 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둘째가 눈에 띄게 힘들어 하기 시작했다. 어서 내려가자. 얼음궁전을 쉭쉭 빠르게 지나 얼른 기차를 타고, 다시 곤돌라를 타고 그린델발트 터미널 역으로 내려왔다. 하이킹 코스도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아이들과 함께니 이 정도에서 만족하기로. 역에 있는 쿱마트에서 삼겹살과 상추, 과일, 케이크, 과자 잔뜩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와 모아둔 빨래도 하고 저녁으로 한국에서 곱게 싸 온 쌈장을 오픈하여 캔김치와 함께 맛있게 삼겹살을 먹었다. 가족 모두 쌈장의 위대함을 칭송하며 저녁을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