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하 Jan 15. 2024

신혼이혼, 돈으로 나를 통제하려는 전남편

함박눈이 내린 그해 1월

그의 프로포즈에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고,


다음 해 1월

우리는 이혼을 준비했다.

그날도 함박눈이 내렸다.




친정집에서 며칠간 지내면서 많은 고민을 했고,

이혼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다행히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서

정리할게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가 얽혀 있어 골치가 아팠다.


그래서

'그냥 참고 넘어갈까'

'내가 질까'

이런 생각을 수없이 했지만

갑자기 깨달았다.

지금 끝내면 손해가 이 정도이지만

또 미루다가 나중에 끝나면

정신적인 상처와 금전적인 손해는 더 커져 있을 터였다.


그전에도 더 나아질 거란 생각이

날 여기까지 끌고 왔음을...

그때라도 그만둘걸...

그때라도 그만둘걸...

수없이 했던 생각이었다.


여기서 멈추면

다음 후회는 없을 거란 확신이

물밀듯 다가왔다.

적어도 이 사람과 '빨리 이혼을 안 한 후회'는 안 하겠지..


나는 결혼을 준비할 때도

결혼식 당일에도

이렇게 확신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고,

 생각이 내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을 막았지.




이혼 얘기가 나온 이유는 정말 사소하고도 단순했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 서로에게 쌓여온 게

이런 방식으로 터진 걸 지도..

다만 미성숙한 우리이기 때문에

미성숙한 방식으로 나온 걸 지도..


파혼 얘기는 서로 번갈아가며 했고,

이혼 얘기는 주로 전남편이 했다.


난 이미 결혼을 했으니

최선을 다해 책임감 있게

결혼생활을 끌고 싶었지만

전남편은 아직 그런 준비가 덜 된듯했다.


나 때문에 저러는 건가 라는 생각에

자책도 했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나도 그냥 포기했다.


싸우다가 자기 의견에 반박하면

'너 때문에 인생이 망했다'

'내 인생 앞길을 막지 마라.'

라고 시작하더니 점점 과격해졌다.


전남편은 우리가 정말 맞지 않다며

이번에도 이혼을 요구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친정집으로 다시 들어가기엔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이제 혼자 살 집도 구해야 하는데

내 전세대출도 현재 신혼집에 묶여있어서

신규 대출을 받을 수도 없고.. 막막했다.


(열외로,

전남편은 전세 대출 이자가 높아서

내가 80% 대출을 받고,

자신이 20%의 보증금을 해왔다는 이유로

자기가 집을 해왔다며

너는 해온 게 뭐 있냐며 나를 무시하곤 했다.)




경찰 사건 이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본격적으로 전남편과 이혼에 대해 의논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금전적으로도 많은 손해를 입어

막막해서 힘들어하니,

'그럼 내 노예로 살아'

'노예니까 내 말에 토 달지 마.'

라고 전남편이 말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아직도 정이 남아있어

어쩌다 보니 화해했고 다시 잘 살아보자 했다.


그는 내가 친정집에 가 있는 동안

'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경찰까지 불렀던 사이였어도,

제는 좀 나아질까 하고

조금은 기대를 했다.


하지만 기대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산산이 부서졌다.



다음날 아침.

전남편은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그러곤 출근 전 아침부터 돈 얘기를 꺼냈다.

나는 다녀와서 얘기하고 싶었지만

지금 얘기를 다 마쳐야 한다며

나에게 대답을 강요했다.


전남편은 나에게 요구 사항이 있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지 못하니

개인 용돈, 교통비, 통신비, ott, 직장에서의 식비, 보험료

심지어 생활비 중 식비까지

70만 원 내에서 사용하라고 했다.

자린고비에게도 이 돈으로 살라고 하면 살 수가 없다.

개인 용돈을 빼고도 70만 원이 넘기 때문이다.


나는 은행어플에 들어가

보험료를 하나하나 확인하고

카드사 어플에 들어가 통신비와 교통비도 하나하나 확인한 후

이미 70만 원이 넘어

생활이 힘들다고 했다.

용돈이 1만 원 조차 남지 않는다고,

난 화장품도 못 사고 친구들도 못 만난다고..


전남편은 나의 그 말은 싹 무시했다.

우선 생활하고 필요하면

카드 내역을 다 가져와서

전남편의 판단하에

그 달 생활비를 올려준다 했다.

오직 자신의 판단하에

쓸데없는 소비로 판단되면

다음 달 생활비에서 깎는다 했다.


전남편은 공과금을 제외하고

자기가 원하는 곳에 140만 원을 쓰겠다 했다.


참 이상했다.

나는 일을 하고 있고, 월급을 받았다.

다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려워

기존보다 월급이 줄었지만,

혼자 적금을 하며 살기엔 충분했다.


애초에 결혼을 안 했으면,

난 친정집에서 엄마와 아빠 밑에서

생활비는 거의 들지 않은 채 내 방에서 편하게 살 수가 있었다.

지난날의 내가 후회되었다.


나야, 왜 그랬니...?!


집을 합치고 초창기,

생활비를 달라고 했다가 거절을 당한 뒤에는

그냥 내가 충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활비 결정은 전남편이 한다고..?

내가 생활비를 단 한 푼이라도 받은 적이 있던가..?

아 딱 한번 있었다.

결혼식 직전

결혼식 네일은 해주기로 해

나에게 서울사랑상품권 10만 원을 보내줬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툭하면 서울사랑상품권 10만 원을 줬다며

거기서 식료품을 사라고 했다.

이미 그건 생활비로 다 쓴 지 오래였다.


나는 거기서 승낙을 할 수 없었다.

이 일을 빌미로

아마 몇 달, 아니 몇 년을

날 괴롭힐 거였다.

전남편은 그전에도 예전일들을 가져와 날 힘들게 했다.


여기서 나는 버텼다.

예전 같으면 그냥 알았다고 했겠지만

그로 인한 불행들을 겪었고

또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무리

'용돈이 1만 원 조차 없으니 다시 계산해 달라.'

부탁했지만

그것에 대한 대답은 피했다.


게다가 우리가 자꾸 싸우니

내가 먼저 상담을 받기로 했는데

그 돈은 어디서 충당하냐 물으니

그것조차 대답을 안 해주었다.

되려 거부하는 나에게 부정적이라며

가스라이팅을 했다.


전남편은 또

'너는 상상을 너무 많이 한다'

'대화가 안 통한다'며

이혼을 하자고 했고,


(도대체 무슨 상상을 했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갑자기 답답했던 가슴이 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응'이라고 답했다.


갑자기 너무 기분이 좋아져서

나 스스로도 놀랐다.

드디어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구나.

이제 퇴근한 뒤에 쉬는 날이라고 늘어져있던

전남편 밥 차려주지 않아도 되고 설거지를 안 해도 되는구나.

자신보다 돈을 적게 번단 이유로 멸시를 안 받아도 되는구나.


지금보다 안정감은 없어질 수 있다.

이혼녀란 타이틀로 괴로울 수 있다.

후회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우울증에 걸리거나

'죽음'을 생각하는 이유가 사라졌다.


나는 그 순간

이혼을 결심했다.

이전 03화 신혼이혼, 나를 경찰에 신고한 전남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