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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먼트 Oct 24. 2024

궁예인데, 부자를 곁들인

어린선증후군 (KID Syndrome) 아이와 함께 걷는 삶 (23)

하준이의 왼쪽 눈이 Vascularization(각막의 혈관화)으로 인해 시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비보,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진단을 받은 후, 나는 내 마음속에 새로운 목표를 세팅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화마에 쓸린 채로 그냥 둔다면 그 어떤 전진의 발걸음도 뻗지 못할 것 같았다. 억지로라도 앞으로 내딛게 해 줄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다.


원래 나란 사람은 나름 그 고집이 센 편이라 20대 초반에 정립해 둔 인생과 삶의 방향성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살아왔다. 곧 죽어도 한 번 정한 방향은 지키는 스타일이라서, 그 덕에 주변 사람들이 보면 답답할 정도로 단순한 생활을 해왔다. 때문에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사냐?’이다. 학교를 다닐 때면 학교-집-교회 루틴으로, 일을 하면 직장-집-교회 루틴으로 살아왔다. 음주가무를 즐기지도 않고, 흔한 취미 하나가 없다. 누군가가 취미가 무엇이냐고 굳이 집요하게 추적을 한다면, ‘독서와 공부’가 취미라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곤 했었다. 그렇게 말했을 때의 반응은 충분히 예상가능하니까.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자주 만나 왁자지껄하는 친구들 보다는, 거의 몇 달에 한 번 보며 안부를 묻는 조용한 친구들 서넛이 주변에 있다.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좋은 관계를 형성해 가지만, 그들의 영향으로 내 삶의 양식이나 색채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관계형성과 확장이 내 삶의 방향성에 기여하는 바가 크게 없다는 뜻이다. (네트워크로 살아남아야 하는 미국에서는 크게 이득 될 게 없는 성격이다) 좋게 말하면, 나는 나로서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별다른 침입과 또는 개방 없이 애당초의 건축 청사진 그대로 쌓아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적으로, 소박하게, 자족하면서.


그런데, 욕심이 생겨버렸다. 책 욕심? 아니다. 공부 욕심? 아니다. 그 외의 것이 생겨버렸다. 그것도 버젓이 여럿 생겨버렸다. 그래도 이왕 생긴 김에 그 욕심을 새로운 목표라고 포장을 좀 해보았다. 


먼저는,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돈 욕심이다. 혐오라고 말하니 갑자기 어감이 좀 세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성인군자 정도의 레벨이라서 그리 말하는 게 아님을 독자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실상인즉, 그렇게도 돈돈돈 하며 모으고 아끼고 불리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지만 오히려 돈을 남기지는 못한 채 자녀들과의 애꿎은 갈등으로 시간을 허비해야 했던 나의 어머니 덕에 생긴 반감에서 비롯된 혐오이다. 나의 어머니의 사랑과 애정은 늘 돈으로 환산되어 표현되곤 했다. 그렇게 수치화된 메마른 애정표현에 나와 누나는 제법 목마름을 느끼곤 했다. 무일푼으로 가정을 일구어 나가야 했던 우리네 부모님 시절 흔히 있을 법한 가정사의 한 단면이었다. 그러나 이제 독립된 어른이자 한 가장으로서 난, 그렇게 돈에 대한 집착으로 가정 내 부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느니 차라리 가족들과 주어진 것에 감사하며 화목하게 지내며 살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돈을 많이 벌고 싶어졌다. 지금 당장의 필요 이상으로, 그리고 이왕이면 차고 넘치게. 재벌까진 아니어도 진심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졌다.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 미래에 있을지 모를 하준이의 수술비를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저 녀석에게 각막이식 수술을 해주든, 피부나 귀와 관련된 수술을 해주든 반드시 미래에 수술을 통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 기회가 왔을 때, 금전적인 문제로 아들 녀석 수술 하나 못 시켜준다면 그 또한 통곡할 일일 것이다. 혹시 또 누가 아는가. 미래엔 더 발전된 의료기술의 혜택으로 하준이의 KID Syndrome을 근본적으로 고칠 수 있게 될지 말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미래시점의 의료비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부담스러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두 번째 욕심은 건강이다. 이 또한 내가 평소 공들여 생각해 오던 항목이 아니었다. ‘신으로부터 소명받은 자, 성실히 지혜롭게 그 소명대로 살다가 일찍 이 세상을 등진다 해도 무슨 후회가 있으랴. 사는 날동안 최선을 다하다가 갈 수 있다면 빨리 가자.’ 뭐, 이런 마인드로 살았다. 딱히 건강이 나빠져도 신경을 안 썼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살았다. 아프면 좀 견디다가 고통의 파도가 조금 세게 친다 싶으면 병원도 다녔다. 다만, 위에서 말한 대로 생활패턴 자체가 특별히 몸이 아프면 이상할 정도로 무미건조한 생활패턴이라 딱히 건강상의 큰 문제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건강관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별히 눈건강에 집중하리라 마음먹었다. 세월도 세월이거니와 해외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안과검진을 못 받은 채로 10여 년을 살아서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받았던 그 100%의 상태는 아니겠지만 이제라도 관리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언젠가 하준이에게 각막이식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가장 잘 맞는 각막이 내 것이 아니겠는가. 최대한 깨끗하게 사용해서, 하준이가 중고각막이라고 생각 못할 정도로 좋은 상태의 각막이 되도록 관리하고 싶어졌다. 그리되면 혹여 기증자가 없다고 의사가 난색을 표해도, 오른손을 번쩍 들어 제발 내 것 좀 써달라고 의사에게 청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각막이식이 안되면 안구 이식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2023년의 어떤 보도에 따르면, 미국 뉴욕대에서 세계 최초로 안구전체를 적출해서 이식하는 수술도 성공했다고 한다. 나는 남은 일생 궁예로 살던, 후크선장으로 살던 상관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후크선장은 애꾸가 아니었다) 내 아들의 빛나는 삶이 내가 겪게 될 어둠보다 클 테니까. 그리고 지금도 시시각각 하준이의 왼쪽눈은 어두워지고 있을 테니까.


한 때 20대 후반부터 급격하게 나빠진 시력으로 인해 라식이나 라섹을 고민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중고도 모자라서 깎아서 얇아진 각막을 아들 녀석에게 줄 수는 없으니까. 각막이식 수술이 가능해질 때까지 하준이가 지금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며 잘 클 수 있길 바랄 뿐이다.


미원이 잔뜩 들어간 냉면육수를 먹고 속이 더부룩하듯, 근 20년 가까이 구축해 둔 나만의 무욕의 세계에서 빠져나와 욕심을 가지려 하니 무언가 불편했다. 하지만 절실히 탐해보려 결심했다. 이런 욕심은 내가 믿는 신도 이해해 주시겠지 생각하며.


웃음이 배어 나왔다. 돈을 벌고 싶고, 눈 하나를 아이에게 주고. 자로 잰 듯 반듯하게 생겨먹은 건물에서 나와서 처음 가진 목표가 돈 많은 궁예가 되는 거라니. 단, 자칭미륵이 아닌 목사인 걸로 하자. 그리고 예배시간에 기침소리가 나도 괜찮은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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